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음악도시, 바젤

글 입력 2014.05.03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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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과 혁신이 공존하는 음악도시, 바젤

글 - Columnist 김승열


    2009년 6월 21일 일요일 이른 아침, 나는 파리 리옹역에서 스위스 바젤로 향하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파리에서 테제베로 3시간 30분을 달려야 닿을 수 있는 바젤을 프랑스 사람들은 발(Bale)이라고 부른다. 20세기 초 오페라 연출사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아돌프 아피아(1862-1928)의 혁신적인 상징주의 이념을 받아들인 요람이 바젤 오페라극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부터 나에게 바젤은 꼭 한 번 들러보고 싶은 도시였다. 그러던 차에 마침 이 날 오후 바젤 오페라극장에서 프랑시스 풀랑(1899-1963)의 오페라 ‘카르멜파 수녀들의 대화’ 마지막 공연을 한다는 사실을 입수한 나는 지체 없이 바젤로 향했던 것이다. 처음 찾은 바젤은 한 편의 동화 같은 도시로 다가왔다. 도시 전체를 붉은색으로 물들인 빨간 지붕의 고풍스런 건물들과, 시내 중심부를 관류하는 라인강의 유유자적한 물결은 이방인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그리고 다른 스위스 도시들에 비해 비싸지 않은 착한 물가도 바젤에 호감을 갖게 만든 요인이었다.


-옛 것과 새 것이 공존하는 신구조화의 도시, 바젤

    바젤이란 도시를 한 마디로 요약한다면, 온고지신의 예술도시라 부를 수 있다. 그 곳은 바로크음악 연구의 최고기관으로 통하는 스콜라 칸토룸 바실리엔시스를 품고 있고, 1970년 시작해 세계 최고의 현대미술 시장으로 성장한 바젤 아트페어를 매년 6월 개최하는 등 신구의 모든 예술을 아우르고 있는 도시인 것이다. 채 20만이 되지 않는 작은 도시가 이만한 퍼스펙티브를 보유한 거대 예술도시로 성장한 근저에는 예술이라는 가치에 천문학적인 비용을 투자할 줄 아는 바젤 시민들의 남다른 심미안이 자리잡고 있다. 일례로, 1967년 피카소의 두 걸작, ‘두 형제’(Les deux freres)와 ‘앉아 있는 어릿광대’(Arlequin assis)를 구입할지를 두고 바젤시는 15만 바젤시민들에게 투표를 통해 의사를 물은 일이 있었다. 그 결과, 바젤시민들은 부족한 예산에도 모금운동을 벌여 이 두 작품을 구입하기로 의견을 모았고, 이에 감동한 피카소는 자신의 유화작품 세 점과 ‘아비뇽의 여인들’ 습작 한 점을 바젤시에 기증했다고 한다. 이 같은 에피소드는 오랜 옛날부터 바젤이란 도시가 예술이란 장르에 얼마만한 가치를 부여할 줄 아는지를 보여주는 부러운 사례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바젤이란 도시가 품고 있는 예술에 대한 남다른 혜안은 시내 곳곳을 둘러봐도 일상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산만하게 난립되어 있지 않고, 마치 동화 속 마을처럼 친근감 있고 깨끗하게 조성된 시가지와 청정한 바젤의 대기는 제네바와 취리히보다 나를 본능적으로 잡아끄는 매력을 품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지금도 바젤을 가장 찾고 싶은 스위스 도시로 그리워하고 있다.

    내가 이 날 바젤을 찾은 주된 이유는 상기한 대로 풀랑의 오페라 ‘카르멜파 수녀들의 대화’를 관극하기 위함이었다. 그 같은 관극을 통해 진실로 바젤이 혁신적 오페라연출의 요람인지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래서 시내 중심가의 레스토랑에서 점심을 들고 곧바로 바젤 오페라극장으로 향했다.


-시대를 앞서가는 오페라하우스, 바젤 오페라극장

jpg 바젤 오페라극장 무대와 객석.jpg▲ 바젤 오페라극장 무대와 객석


    바젤 오페라극장은 1200석이 채 되지 않는 크지 않은 규모였다. 애초에 바젤에 오페라극장이 처음 건립된 것은 1834년의 일이다. 바젤 국립극장이라는 이름으로 들어선 최초의 바젤 오페라극장은 오페라와 발레 전용극장으로 기능해 왔다. 최근에는 연극과 뮤지컬, 오페레타 같은 부속장르들도 부수적으로 무대에 올라가고 있다. 스위스 건축가 멜키오르 베리에 의해 건립된 최초의 오페라극장은 그러나 1873년 요한 야콥 슈테를린 데 융게레에 의해 설계된 새로운 오페라극장으로 대체되었다. 1875년 정식개관한 두 번째 바젤 오페라극장은 1904년 10월 7일에 있은 대화재로 전소될 때까지 29년의 수명을 누린다. 세 번재 오페라극장이 지어진 것은 1909년의 일이고, 1975년 현재의 바젤 오페라극장이 들어설 때까지 66년의 부침을 겪는다.


jpg 바젤 오페라극장 외관1.jpg▲ 바젤 오페라극장 외관

jpg 바젤 오페라극장 외관3.jpg▲ 바젤 오페라극장 외관


   내가 이 날 바젤 오페라극장을 처음 찾아 들은 풀랑의 ‘카르멜파 수녀들의 대화’는 한 마디로 기상천외한 열연이었다. 3층 철골구조물의 1층에는 타악기군을, 2층에는 현악기군을, 3층에는 관악기군을 배치한 연출가 베네딕트 폰 페터의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창의적인 공간배치와, 당시 29세의 신예 코르넬리우스 마이스터가 이끈 바젤 교향악단의 뜨거운 연주력은 매우 도발적이고도 충격적인 것이었다. 2층 중앙의 구조물 앞 열에 주인공 마리 수녀의 침실을 마련함으로써 관객들의 시선은 분산되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철골구조물로 모아졌다. 지휘자 마이스터는 처음에는 객석 1열 바로 앞의 가변형 철골구조물 위에서 지휘했고, 본론에 들어가서는 오케스트라 피트가 아닌, 객석 1열 앞의 맨바닥에서 지휘했다. 주인공 마리 수녀를 부른 명메조소프라노 한나 슈바르츠와 블랑쉬의 소프라노 스베틀라나 이그나토비치, 콩스탕스 자매의 소프라노 아가타 빌레프스카 모두 열연을 펼쳤다. 나타샤 폰 슈타이거의 도발적인 무대 속에서 모든 출연진은 혼신의 힘을 다한 역연을 시위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미 1920년대에 아돌프 아피아의 혁신적인 바그너 무대를 받아들인 선구적인 극장답게 바젤 오페라극장은 21세기에도 시대를 앞서가는 무대연출을 받아들이는데 인색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같은 바젤 오페라극장만의 혁신적인 무대를 목격했으니 나의 바젤행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이대로 파리로 돌아가도 여한이 없을 바젤행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내친 김에 나는 이 날 빼어난 연주력을 과시한 바젤 교향악단의 본거지인 바젤 슈타트 카지노 무지크잘을 추가로 둘러보았다.


jpg 바젤 슈타트 카지노 무지크잘 외부모습.jpg▲ 바젤 슈타트 카지노 무지크잘 외부모습


-바젤 관현악의 요람을 찾아서

    루체른 교향악단 다음으로 스위스에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바젤 교향악단(Sinfonieorchester Basel)은 1876년 창단된 유서깊은 악단이다. 2009년부터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가 음악감독으로 있는 이 고색창연한 악단은 과소평가되는 유럽의 대표적 오케스트라다. 내가 바젤을 찾은 이 날의 바젤 시내 곳곳에는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슈타트 카지노 무지크잘에서 며칠 후 바젤 교향악단 정기연주회의 지휘봉을 든다는 사실을 알리는 포스터가 거리 곳곳에 나붙어 있었다. 이 악단은 창단 당시부터 지금까지의 140년 동안 요하네스 브람스와 구스타프 말러, 펠릭스 바인가르트너, 오토 클렘페러, 빌헬름 푸르트벵글러, 안탈 도라티, 피에르 불레즈, 가리 베르티니, 호르스트 슈타인, 넬로 산티, 아르맹 조르당, 발터 벨러, 발레리 게르기예프 같은 특급 지휘자들의 조련을 받아온 유럽 악단의 숨은 보석이다. 이들의 높은 연주력은 이미 이 날 오후 바젤 오페라극장에서 목격했기에 두 번 이야기하지 않겠다. 반가운 것은 바이올리니스트 악셀 샤허와 더불어 한국의 윤소영이 바젤 교향악단의 악장으로 재직한다는 사실이다.


바젤 슈타트 카지노 무지크잘에서 공연하는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 지휘 바젤 교향악단2.jpg▲ 바젤 슈타트 카지노 무지크잘에서 공연하는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 지휘 바젤 교향악단


    이들을 품고 있는 바젤 슈타트 카지노 무지크잘은 1876년 바젤 교향악단의 창단과 동시에 개관한 바젤 관현악의 요람이다. 1512석의 중대형 객석수를 보유한 이 고풍스런 연주회장은 제네바의 빅토리아홀과 같은 타원형의 형태로 1층과 2층에 걸쳐 촘촘한 좌석배치가 인상적이다. 무대정면 상부에 특수제작된 파이프오르간을 웅장하게 심어놓고 있는 것이 특기할 만하다.

    시내 중심가 바르퓌서 광장에 위치해 있는 슈타트 카지노는 1826년에 건립된 유서깊은 명소다. 건립 이후 50년이 지난 1876년, 슈타트 카지노는 두 번째 바젤 오페라극장을 건축한 요한 야콥 슈테를린 데 융게레에게 설계를 맡겨 무지크잘의 완성을 보았다. 지금도 유럽에서 손꼽히는 걸출한 어쿠스틱 덕에 바젤 교향악단과 슈타트 카지노 무지크잘은 불가분의 한 몸으로 기능하고 있다.


바젤 슈타트 카지노 무지크잘에서 공연하는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 지휘 바젤 교향악단1.jpg▲ 바젤 슈타트 카지노 무지크잘에서 공연하는 데니스 러셀 데이비스 지휘 바젤 교향악단


    2014년 들어 스위스의 유력악단 셋이 몇 달 터울로 내한공연을 갖고 있다. 4월 21일, 첫 내한무대를 감격적으로 치른 취리히 톤할레 오케스트라와 올 7월 중순 내한예정인 제네바의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 그리고 9월말 인천과 서울에서 첫 내한공연이 예정된 루가노의 스위스-이탈리아 오케스트라가 그것이다. 이 중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는 1976년과 1991년에 이어 세 번째 내한공연을 기록하게 된다. 이 같은 스위스 유력악단들의 내한러시 속에서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된 바젤 교향악단의 내한무대마저 성사된다면, 스위스를 대표하는 주요악단들의 실체는 국내에 모두 소개되는 셈이 될 것이다. 물론 로잔 실내 관현악단과 바젤 실내 관현악단, 미셸 코르보가 이끄는 로잔 보컬/기악 앙상블 같은 스위스의 진주와도 같은 소편성 앙상블까지 내한한다면 금상첨화겠지만 말이다.

    어떻든 유럽의 중립지대 스위스가 품고 있는 음악지형도는 같은 유럽의 중립국인 오스트리아 못지 않은 다채롭고 높은 퀄리티를 과시하고 있다. 청정무구한 자연만을 찾아 스위스를 찾을 것이 아니라, 청정한 음악의 비경을 또한 찾으러 스위스를 찾는다면 당신은 분명 기대치 않은 예술의 희열을 만끽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스위스는 분명 청정무구한 자연의 대기 뿐 아니라, 순정한 음악의 아우라 또한 품고 있는 힐링의 도시국가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나라면 루체른, 취리히, 제네바, 베른, 루가노, 융프라우를 잇는 스위스 여행의 최초 기착지로 바젤을 선택할 것이다. 그 곳은 가기 전까지 미처 몰랐던 자연과 예술의 온갖 비경이 나를 맞아주었던 곳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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