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신의 컬쳐에세이 - 서촌

글 입력 2014.11.27 2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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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건축학개론의 첫 사랑 한옥                                                                          2014  11  12 

 

서촌 이야기

 

서촌은 내 고향이다
나의 원적 본적 현주소가 '종로구 필운동 90'으로 되어 있다
미국에 유학을 가 머문지 20여 년, 그리워 한 곳도 이 마을이다


경복궁 서쪽이어 서촌으로 부르기도 하지만 인왕산의 옛 이름이 서산西山이어서 그 산 아래 있는 이 동네를 서촌이라 부르게 되었고 세종대왕이 태어나신 곳이어 세종 마을로 부르기도 한다

 
예로부터 경복궁 곁에 있는 마을로 양반과 학자들, 문인, 예술가들이 많았고 우리가 60여 년 전 이 곳에 왔을 때에도 여유롭고 참 살기 좋은 주택가였다
옛 골목들이 미로처럼 있어 어디든 통하고 통인 시장과 금천교 시장의 두 전통 시장이 있으며 사직공원과 활터, 어린이 도서관, 종로도서관, 유서 깊은 경복고 경기상고 배화여고 배화여대가 있고 무엇보다 서편에 길다랗게 인왕산이 버티고 있다
시내 한복판이면서 살짝 들어와 있어 조용하고 고즈넉했다 

  
그러다 미국의 삶 후에 귀국해 보니 학교를 따라서든 올라가는 부동산 값을 따라서든 많은 이들이 그 사이 강남으로 가버렸다. 그들이 간 후 이 곳은 시내 한복판임에도 가격이 형편없이 떨어지고 서민 동네가 되어 버렸다.  300년이 넘는 유서 깊은 커다란 한옥에 혼자 남아 대책 없이 추위에 떨고 있는 어머니가 답답하기만 했었다

  
또 다시 수 많은 세월이 흘렀고 믿을 수 없는 일이 지금 벌어지고 있다
누상동 길을 따라 올라가면 나오는 수성동 계곡이 여러 해 공사 끝에 겸재 정선이 그린 본래의 수성 계곡으로 복원되어 물이 내려오고 강남 아파트가 좋다고 가버린 사람들이 수 십년이 지나 이제 오래된 이 마을이 좋다고 찾아들고 있다

  
문학, 예술, 건축 외 다양한 문화와 골목들, 다채로운 음식이 살아나고 서촌에 상점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떠났던 사람도 돌아오지만 출판사 영화사 갤러리 패션 레스토랑이 들어오고 통인시장이 사람들로 붐빈다 

  
詩의 대가로 일찌기 이웃나라의 인정을 받은 어머니가 틀렸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맞았다. 적어도 이조 시대와 함께 했을 이 마을과 사랑과 영혼이 깃든 집을 차마 버리고 떠날 수 없어 추워도 외로워도 홀로 참고 견디었던 어머니가 맞았다는 걸 깨달은 건 가시고도 한참 후의 일이다

  
손호연 시인 말고도 이 곳엔 이상, 윤동주, 어려서 본 노천명 같은 위대한 시인과 춘원 이광수의 흔적이 살아 있고, 조선시대 이름난 겸재 정선뿐 아니라 이상범 화백과 박노수 화백, 어머니가 그 집에서 금계라는 그림을 직접 사신 천경자 화백이 있고 평양에서 바이올린을 같이 한 이윤모 아버지를 보러 필운동 집에 오셨던 김동진 가고파 작곡가도 2009년 97세에 가시기까지 누상동에 계시어 매일 아침 우리 집 앞을 잰 걸음으로 산책하시는 걸 보았다

  
서울에 꼭꼭 숨어있던 보석 '서촌' 탐방이 시작되어 ‘손호연 이승신 모녀시인의 집’은 물론, 이상 시인의 집, 윤동주 시인의 하숙집, 박노수 미술관, 건축학개론 영화 속 서연과 승민의 첫 사랑 씬을 찍었던 누상동 한옥과 63년 역사로 중고 서적이 전혀 팔리지 않아도 버티어온 대오서점, 대만 사람이 대를 이어 50여 년 짜장면을 만들어 온 영화루, 대통령이 임기 중에 서민의 동정을 살피러 명절에 들리는 통인시장 그리고 수성동 계곡의 푸르른 자연과 역사를 돌아본다

 
고층 건물과 규격 아파트에 이제쯤 싫증이 났을 이들이 여기 와 남의 나라 관광하듯 겉으로만 훑을 것이 아니라 구석구석 숨겨져 있는 그 감동의 역사와 휴먼 스토리를 알려주어 어떠한 기운이라도 좀 얻어 갔으면 하고, 이 마을에 오래 살고있는 유일한 시인詩人인 나는 생각해 본다

  
덜 세련되고 시골스럽고 어리숙해 보이나 아직까진 정겨운 마을이다 
와싱톤, 뉴욕의 삶에서 조국을 그리는 말과 글을 많이 써왔으나 돌아와보니 정작 그리워 했던 건 어려서 자라난 이 마을이었다

 
이 곳이 북촌처럼 상업화만 될 것이 아니라 오밀조밀 골목길에 사람 사는 냄새가 나고 인왕산 정기에 옛 조상들의 혼과 문향, 예술향이 살아 넘치는 서울의 대표적 품격 있는 마을로 오래오래 보존되길 나는 소망한다. 세상이 여러번 바뀐다해도 그런 마을 하나쯤 나라의 자존심으로 있어야 한다

  
다 떠났어도, 수 백년 유서 깊은 자신의 고택이 도시개발 포크레인에 길로 뭉턱 잘려 나갔어도, 일찍이 바꿔타지 않아 큰 손해를 보았어도, 그 역사의 가치와 사랑의 혼을 묵묵히 지키며 한 집에서 한 줄의 시로 그것을 일생 표현해 온 어머니가, 함께 걸은 골목길을 걷다보면 몹시도 그립고 감사하다 



             젊을 때부터 정들여온 집 떠나기 망설여져 구석구석 그대 모습 생생해

                                                                                         손 호 연



2.png▲ 시인 이상의 집 - 2014 10 28

3.png▲ 63년 역사의 대오 서점 - 2014 10 28

4.png▲ 늘 길게 줄을 서는 동네 빵집 - 2014 10 31

5.png▲ 옛 게임방이 서촌소개소로 된 옥인상점

6.png▲ 통인 시장과 기름 떢볶이 - 2014 11 9

7.png▲ '손호연 이승신 모녀시인의 집' 필운동 90 - 2014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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