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신의 컬쳐에세이 - 수성계곡의 늦가을

글 입력 2014.12.11 0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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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11  20 
 


수성계곡의  늦가을



어려서부터 자라온 집 뒤로는 인왕산이 길게 병풍처럼 서 있다
사직공원 쪽으로 걸어가 배화여고 골목으로 들어가면 학교 대문이 보이고 그 속에 발을 디디면 이미 산이 시작되는데 언덕진 교내를 좀 오르면 금도 없이 인왕산의 속살이 나온다

 
종로 도서관을 끼고 오르다 오랜 역사의 활터를 통과해도 산이요, 공원 속으로 올라가도 나오고 공원 뒷울타리 담을 끼고 있는 북악 스카이웨이 찻길을 따라가도 같은 산길이 된다

 
그것이 초등학교부터 내가 인왕산을 종종 오르는 길들인데 이제는 바로 옆인데도 그간 가보지 않았던 누상동 길을 택해 가고 있다 

 
오세훈 시장이 큰 야망을 가지고 서울을 혁신해 가며 심혈을 기울인 것 중의 하나가 수성동 계곡 복원이었다. 이조시대 유명 화가인 겸재 정선이 그린 인왕제색도, 수성동 계곡을 복원해 계곡 물을 광화문으로 흐르게 할 것이라는 프로젝트를 들었을 때 청계천 프로젝트를 성공하고 대선에 승리한 MB를 나는 떠올렸다

 
지난한 과정이었다. 누상동의 한옥들이 지난 몇 십년 소리 없이 헐리고 집장사들이 4, 5층 작은 빌라들을 지어 팔았고 무엇보다 그 계곡 한복판에 있는 1960년대 박정희 대통령 시대에 서민을 위해 지은 초기 고층 아파트를 없애는게 문제였다 

 
외국은 흔히 언덕위 전망 좋은 곳이 값비싼 동네로 되어 있다. 비벌리 힐즈가 그렇고 샌프란시스코 꼬불꼬불 오르는 언덕과 시애틀, 하와이의 언덕받이 부유한 동네가 그렇다


강남의 오르는 땅값을 따라간 면이 많으나 시내 가까이 계곡 제일 좋은 곳에 아파트가 들어서고는 고급 동네가 서민 동네로 돌아서 버렸다. 이스라엘의 부유하고 완만한 언덕 위 마을을 바라다 보면서 이상하게도 나는 동아시아 끝, 우리 마을 제일 좋은 위치의 그 아파트를 떠올렸었다

 
그들을 다른 곳으로 이사보내는 일은 많은 시간과 엄청난 돈과 공이 들었다 
2012년 완공이 되기 전 오세훈 시장이 자신의 자리를 박원순 시장에게 내주었고 새 시장은 거의 완성되어가는 수성계곡을 물이 광화문 아래로 흐르는 것만은 막았다 
비용 절약이 이유인지, 완성 후 청계천 같은 극적인 효과로 시민들이 몰려와 전 시장의 인기가 오르게 되는 걸 막으려는 것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렇게 겸재의 위대한 작품을 실물로 볼 수 있는 인왕산 수성동 계곡을 서울 시민은 가지게 되었고 그러면서 서촌이라는 마을 이름이 뜨기 시작을 한다

 
바로 옆 누상동 골목으로 해 수성계곡을 나도 가기 시작했고 이제는 그 경관을 보러오는 사람들 구경도 할겸 자주 그 방향으로 산책을 한다. 오래 살아 온 미국의 친구들이 와도, 내 책을 들고 오는 일본 팬이 찾아와도 이제는 그리로 안내를 한다 

 
계곡을 향해 걷는 좁은 골목에 늘어선 고만고만한 연립 주택들은 산을 가리고 빛을 가리고 아름답다고 할 수도 없지만 그 아래층이 개성있는 가게와 밥집 찻집으로 치장을 하루가 다르게 하고 있다

 
인내심 있게 언덕을 오르면 드디어 탁 트인 인왕산의 치마바위 시원한 정상이 드러나고 겸재 그림에 보이는 돌다리 기린교가 이조시대 상고시대 그대로 거기에 있다. 여기저기 새로 지은 정자들과 소나무, 계곡물이 보이고, 늦가을 억새가 햇빛에 찬란히 빛나는 서정적인 전경이 거짓말 같이 벌어진다


대도시 한복판에 이런 풍경이 스케일 있게 펼쳐진다는 것은 실로 믿기 어려운 일이다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말을 자주 하셨던 외할머니 모습이 떠오르고, 같은 자리를 계속 지켜온 계곡과 산이지만 새로운 산을 걷는 기분으로 걷다보면, 매일 저녁 활터로 사직공원으로 산책하시던 아버지 생각이 간절하다 

 
아버지는 그때 걸으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내 앞에 꿈인듯 펼쳐지는 
                     익숙하고도 새로운 전경
                     봄 볕에 쌈을 싸먹던 
                     집안 뒷산이 행길로 잘려 나가고
                     삶이 그렇게 잘려 나가고
                     어머니 하염없이 울었었지


                     세월이 가고 
                     삶이 속절없이 가고
                     이제 돌아온 그 자리
                     훨씬 더 큰 산이 두 팔을 
                     벌리며 간절한 
                     마음에 들어오는데
                     억새 찬란히 빛을 발하며
                     거기에 화안히 웃어보이는
                     젊은 날의 아버지 - 어머니-



2.png▲ 겸재 정선이 그림으로 재현한 수성동 계곡 - 2014 10 31

3.png▲ 겸재 그림에 있는 기린교 돌다리와 계곡의 실물

4.png▲ 한여름 비가 오면 폭포와 계곡물이 불어난다

5.png▲ 수성 계곡 늦가을, 역광에 빛나는 억새 ~ 2014 11 11

6.png▲ 수성 계곡에 가을이 오면 - 2014 10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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