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세상에 대한 저항과 굴복, 영화 '들개' [시각예술]

글 입력 2015.02.21 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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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개Tinker Ticker

 

 

어두운 분위기를 풍기는 흑백의 두 주인공과 강렬한 핏빛의 제목이 대비를 이루는 영화 <들개>의 포스터는 이 영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드라마 <미생>으로 이름을 알린 왼쪽의 배우 변요한은 이 영화에서 취업 준비를 하는 한편 사제폭탄을 만드는 정구역을 맡았다. 순수해보이는 둥근 눈은 어쩐지 섬뜩한 느낌을 준다. 정구에 비해 날카로운 눈매를 가진 오른쪽 배우 박정민이 연기한 효민은 세상에 대한 불만이 가득한 대학생이다. 영화 <들개>는 사제폭탄을 만들고 터뜨리지 못하는 정구와 그것을 터뜨릴 수 있는 효민이 만나 온통 회색빛인 심심한 세상에 핏빛 폭탄을 터뜨리려 하는 이야기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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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정구의 시점에서 진행된다. 정구는 고등학생 때 선생님의 차에 폭탄을 터뜨린 사건으로 소년원에 다녀왔고, 이후로 친구 집에서 살지만 그마저도 쫓겨나 차에서 잠을 자며 살아간다. 대학교 조교 일을 하면서 취업을 위해 노력하지만 면접은 잘 되지 않고, 교수와 다른 조교들은 그를 무시한다. 세상에 대한 답답함으로 숨이 콱 막힐 것 같은 일상이 계속된다. 정구는 이러한 답답함을 풀기 위해 남들 몰래 사제폭탄을 만들어 불특정 다수에게 폭탄을 보내지만 사람들은 대부분 폭탄을 무시해버린다. 표면적으로는 사회의 애완견을 연기하지만 이면에는 누군가가 폭탄을 터뜨려주기를 바라는 들개의 모습을 감춘 채 아슬아슬한 삶을 살아가던 정구는 어느 날 들개 효민을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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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운 곳에서만 들개의 모습을 드러내는 정구와 달리 효민은 밝은 곳에서도 들개의 모습을 숨기지 않는다. 그는 정구의 교수를 수업 시간에 비판하고, 정구가 교수를 죽여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보낸 폭탄을 엉뚱한 곳에서 터뜨린다. 폭탄의 생산자정구에게 드디어 집행자효민이 나타난 것이다. 생산자와 집행자는 한동안 최고의 파트너처럼 지낸다. 생산자와 집행자로서 둘은 답답한 세상에 대한 불만을 공유하고 그러한 세상을 처단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들개와 세상의 싸움이었던 이러한 갈등구조가 어느 순간 정구와 효민의 갈등으로 바뀌면서 긴장감의 양태도 바뀌게 된다.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노력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사회의 진리처럼, 정구의 인생에도 세상에 적응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이 순간부터 정구는 들개의 모습을 버리고 세상의 애완견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기회를 잡으려 한다. 교수의 양말이 들어간 술을 후배에게 권하는 정구의 모습은 들개와 애완견의 양면적 모습을 보였던 정구가 애완견으로서 사회에 길들여지고자 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효민은 이러한 정구의 모습을 용납하지 않고 계속해서 폭탄을 터뜨리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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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구와 효민의 갈등은 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갈등이라기보다는 애완견과 들개의 갈등이며,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의 갈등이다. 누구나 내면에는 애완견과 들개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사회에 적응해서 살아가기 위해서는 애완견이 들개를 이겨야 한다. 들개는 세상에 속하는 것을 거부하며, 세상에 대한 불만을 폭탄처럼 터뜨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효민은 정구에게 자신의 꿈이 세상에서 자신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라고 말한다. 지문을 모두 지운 효민의 손가락은 세상에 속하는 인간이기를 거부하는 처절한 몸짓이다. 그러나 세상에 속하고자 하는 애완견의 본성은 이처럼 강렬한 들개의 본성보다 강하다. 거부할 수 없는 유혹의 손길은 애완견이 들개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조금만 참으면, 세상이 나에게 보상해 줄 것이라는 기대는 쉽게 포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구는 들개의 본성을 도려내고 세상의 애완견이 되는 것을 선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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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들개가 죽어도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과연 정구가 진정 세상의 애완견이 되는 데 성공할까? 세상은 과연 그동안 잘 참았다.”라며 정구에게 보상해 줄 것인가? 효민은 정구에게 말한다. “, 변하는 건 없어.” 들개의 본성이 거세된 정구의 얼굴은 오히려 영화의 초반보다 더욱 황량하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정구는 환멸에 찬 표정으로 세상으로 들어가는 열차인 지하철을 타고 이동한다. 들개를 죽인 우리 대부분의 모습이 이와 같지 않을까. 들개의 야성을 죽이면서까지 세상의 애완견이 되고자 했으나, 결국엔 이도 저도 아닌 떠돌이 개가 되어 끝없이 이동하는 모습. 들개의 본성을 거세당한 채 살아가는 회색 세상의 모습을 볼 수 있는 영화였다.

 

 

 

[유윤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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