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문학이란 무엇인가 2 [문학]

글 입력 2015.03.08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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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일상적인 언어가 문학을 규정한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문학 언어를 규범으로부터 일탈한 것들의 집합으로, 언어적 폭력으로 보았다. 문학은 우리가 보통 사용하는 ‘일상’ 언어와는 대조되는 ‘특별한’ 종류의 언어라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시적언어를 말한다. 
  그러나 단 하나의 ‘규범적’ 언어가 있다는 생각은 환상이다. 사회의 모든 성원이 똑같이 사용하는 하나의 공통용어는 없다. 실제 언어는 계급·지역·성·지위 등에 따라 차이가 나는 담론들로 아주 복합적으로 구성되어 있다. 결코 단일한 동질적 언어공동체로 통합될 수 없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골목길(alleyway)’을 ginnel이라 말하는 것은 브라이턴(Brighton: 영국 잉글랜드 남부해안의 도시)에서는 시적일 수도 있으나 반즐리(Barnsley: 잉글랜드 남요크셔주의 도시)에서는 일상언어이다.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이 이 모든 것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어떤 규범이나 규범으로부터의 일탈이 하나의 사회적·역사적 맥락에서 다른 사회적·역사적 맥락으로 옮겨간다는 의미에서, ‘시’라는 것은 사람들이 그 당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사실을 인식했다. 글의 한 토막이 ‘낯설게 한다’는 사실은 그것에 언제 어디서나 그렇다는 것을 보증하지 않는다. 즉, 형식주의자들에게 있어 ‘문학성’은 한 종류의 담론과 다른 종류의 담론의 ‘서로 구별이 되는 관계들(differential relations)’의 함수이지 영속적으로 주어진 속성은 아니었다. 
  그들은 그 외의 다른 많은 곳들에서도 발견될 수 있는 언어의 특별한 사용을 정의하려고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러시아 형식주의자들은 ‘낯설게 하기’가 문학적인 것의 본질이라고 생각했다. 


문학을 생각한다는 것은 실상 모든 문학을 로 생각하는 것이다


  ‘낯설게 하기’의 문제는 웬만큼 교묘하게 갖다 붙인다면 낯설게 읽히지 않는 글이 없다는 것이다. 런던 지하철에서 가끔 보이는 “에스컬레이터에서는 개를 안고 가셔야 합니다.(Dogs must be carried on the escalator)와 같은 산문적이고 뜻이 아주 분명한 진술을 생각해 보자. 이 문장은 어떻게 보면 정확힌 뜻이 있는 것은 아니다. 에스컬레이터에서는 반드시 개를 안고 가야 한다는 것인가? 만일 어떤 떠돌이 잡종개라도 찾아서 팔에 안고 올라가지 않는다면 에스컬레이터에 탑승금지를 당한다는 건가? 겉보기에 뜻이 명효나 많은 게시문들이 이러한 애매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Dogs must be carried on the escalator 라는 지하철 게시문이 문학으로 읽힐 수 있음은 분명하다. 처음의 묵직한 세 단음절어들의 ①돌연하고 위압적인 스타카토에 이끌릴 수 있고 ②‘안고 가셔야(carried)’의 풍부한 암시성을 접할 때쯤 절름발이 개들을 보살펴주는 일이 부지중에 연상되어 마음속이 울릴 수 있다. 그리고 ③‘에스컬레이터’란 단어의 음의 경쾌함과 굴곡인 억양 속에서 에스컬레이터 자체의 굴곡진 상하운동의 의태(擬態)를 찾아볼 수도 있다. 이러한 분석은 ‘문학’이 최소한 사람들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가의 문제에 못지않은, 사람들이 글에게 어떤 작용을 하는가의 문제일 수가 있다는 것을 시사하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때때로 문학은 마치-문제가 되는 것은 어떤 개별적인 실제 여인이 아니라 여자에 대해 ‘이야기하는 방식’임을 알리려는 듯-특별한 언어를 사용한다. 이야기되고 있는 대상이나 실재가 아니라 이야기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자기지시적인’ 언어 즉 자기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는 언어라고 이해될 수 있다. 
  그러나 문학을 위와 같이 정의하면 문제가 생긴다. 문학은 ‘객관적으로’ 정의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문학이란 씌어진 것의 성격에 의해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어떻게 읽기로 결정하는가에 맡겨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양육이 출생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질 수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대우하느냐에 따라 문학성의 취득을 얻을 수 있거나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들이 당신을 문학이라고 결정한다면 당신 스스로 무엇이라고 생각했든지 상관없이 당신은 문학이 되어버리는 꼴이 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특정 종류의 글들은 어떤 내재적인 성실 혹은 일단의 성질들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이 글에 ‘자신을 관련시키는’ 어떤 방식들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다양한 방식으로 ‘문학’이라고 일컬어졌던 모든 것으로부터 어떤 불변의 내재적 특징들을 떼어내기는 쉽지 않다. 그것은 모든 게임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단일한 특성을 밝히려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하다. 문학의 ‘본질’이라는 것은 결코 없다. 추상적이고 비어있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존 M. 엘리스(John M. Ellis)는 ‘문학’이라는 용어를 ‘잡초’와 비슷하다고 말했다. 잡초는 특정 종류의 식물이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정원사가 원하지 않는 식물이면 다 잡초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아마 ‘문학’은 이것의 정반대라고 볼 수 있다. 누군가가 이런저런 이유로 그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글의 종류 전부를 의미하는 것이 문학이 아닐까 한다. 나와 관련시키는 행위로써 무한 규정을 두고 있는 것이다. 

나 : 문학 = 정원사 : 잡초         
                            ‘나’는 독자, 비평가, 학자 등

  그래서 이 추상적인 관념을 실체화한다. 이데올로기화, 하나의 규범을 규정짓기 시작한 것이다. 하나의 모범을 틀로 만들고 타 문학이 따라야할 지시사항을 만든다. 만약 따르지 않으면 가치 없는 것으로 판단한다. 글은 문학적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훌륭하여야’ 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훌륭하다고 평가되는 ‘종류’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우리는 ‘문학’이 ‘객관적’이라는 환상을 단호하게 떨쳐버려야 한다. 어떤 것도 문학이 될 수 있으며 변함없고 의문의 여지없이 문학으로 여겨지는 것도-예를 들어 셰익스피어도-더 이상 문학이 아닐 수 있다. 가치판단은 가변적이기 때문이다. 

  본래적으로 가치 있는 문학작품이나 전통은 없다. ‘가치’는 타동사적인 용어이다. 그래서 모든 문학작품들은 그것들을 읽는 사회에 의해 ‘다시 쓰여진다’
  내가 누군가의 특정 시를 싫어해도 나를 심하게 처벌할 사람은 없다. 그러나 만일 내가 그 사람의 작품이 문학이 아니라고 주장한다면 나는 어떤 상황에서는 직업을 잃을 위험이 생긴다. 좀 더 쉬운 예를 들면, 내가 바나나를 좋아하는 것은 단지 개인적인 문제일 수 있다. 하지만 음식에 대한 나의 기호를 철저히 분석해보면 그 기호가 어린 시절에 나를 형성시킨 어떤 경험들이나 부모형제들과의 관계 그리고 사회적이고 ‘비주관적인’ 다른 많은 문화적 요인들과 얼마나 깊은 관련을 갖고 있는지가 드러날 것이다. 이것은 특수한 사회의 일원으로 태어나서 갖게 되는 신념들과 이해관계들의 근본적 구조에 더욱 해당된다. 이러한 의미에서 문학은 사회에 의해 다시 씌여질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전반적으로 은폐된 가치구조는 ‘이데올로기’로 볼 수 있다. 여기서의 ‘이데올로기’는 우리가 말하고 믿는 것이 우리가 사는 사회의 권력구조, 권력관계들과 연관되는 방식들을 대략적으로 뜻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깊이 뿌리박혀 있고 많은 경우 무의식적인 신념들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회 권력의 유지와 재생산에 어떤 종류의 관계를 가지는, 느끼고 평가하고 인식하고 믿는 방식들을 뜻하고 있는 것이다.

  문학을 ‘객관적이고’ 기술적인 범주로 인식해서는 안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제멋대로 문학이라고 부르기로 정하는 것도 안 된다. 이러한 종류의 가치판단들은 개인적 변덕과는 무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치판단은 흔들리지 않는 더욱 심층적인 신념의 구조들 속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즉, 가치판단들은 궁극적으로 단지 개인적인 취향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회집단들이 다른 사회집단들에 대해 힘을 행사하고 또 그 힘을 유지하는데 있어서 의거하는 전제들을 가리킨다.
  따라서 문학은 곤충들이 존재한다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 문학을 구성하는 가치판단들이 역사적으로 가변적이라는 것, 이 가치판단 자체도 사회의 이데올로기들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학이란 문학으로 규정되는 것
사람들이 호명하고 문학·비문학으로 구분 지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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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수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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