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르네상스 빠르게 훑어보기 [시각예술]

글 입력 2015.03.08 2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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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중세‘암흑시대’ 라 불릴 만큼 예술이 크게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했다. 중세는 신 중심의 사회였고, 이는 인본주의에 바탕을 둔 르네상스와 큰 차이가 있었다. 신은 영원불멸의 존재이나 인간은 유한한 존재이기 때문에 중세 시대는 사상적으로 모든 욕망, 특히 ‘이성’까지 억압하며 휴머니즘은 크게 퇴보했다. 하지만 르네상스고전주의의 부활로, 욕망과 인간성이 부활한 ‘빛의 시대’라 할 수 있다. 디드로는 이를 ‘인간의 이성이 환하게 비추기 시작’ 했다고 표현했다. 이러한 사회적 차이는 미술 분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 르네상스의 탄생  :  중세와 르네상스의 차이점을 바탕으로

        

      먼저, 중세시대 예술가의 사회적 위치가 ‘길드’에 속한 단순한 기술자로 낮았던 것에 비해 르네상스의 예술가는 비로소 개별화되며 지위가 크게 상승했다. 이들은 개성과 의견을 존중받으며 나름대로의 예술 세계를 펼쳐나갔다. 두 번째, 중세의 예술향유자는 고위 성직자, 봉건영주 등 1%의 극소수 상위계층이었으나 르네상스는 대 자본가 및 자유 시민 계급 출신 또한 경제권을 바탕으로 개인적인 작품을 요구할 수 있었다. 세 번째, 종교화가 대부분이었던 중세시대와 달리 르네상스에는 고대 그리스 로마 문화의 부흥으로 자본가의 초상화, 역사화, 신화 등 다양한 분야의 미술이 등장했다. 네 번째, 중세미술은 상징주의에 기반 했다. 하지만 르네상스는 기본적으로 고전주의를 따랐다. 건축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원주양식과 로마의 아치, 궁륭, 돔 등을 사용했고, 인체조각은 해부학적 지식에 근거해 이상화된 아름다움을 나타냈다. 그리고 회화는 원근법, 명암법을 사용해 3차원적인 사실적 표현을 할 수 있었다. 다섯 번째는, 앞서 말했듯 신성한 존재만을 그린 중세와 달리 르네상스는 민중적인 평범한 대상을 그렸다는 것이다. 마지막은 창작과정의 변화로, 획일적인 양식이 있는 중세에 반해 르네상스의 작가들은 고유한 양식을 가지고 그리거나 제작을 마음대로 중단할 수도 있었다. 종합적으로, 이러한 르네상스의 개별적인 경향으로 회화, 조각이 특히 발달했고, 원근법의 발명은 공간감의 면에서 미술사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왔다. 
     


2. 르네상스의 선구자들  :  지오토, 마사치오, 보티첼리


      우선, 중세에서 르네상스의 시작을 알린 화가들에 대해 말하겠다. 첫 번째는 지오토(Giotto di Bondone)이다. 13세기 말부터 14세기 초의 화가로, 르네상스의 첫 단계의 대표자이다. 그는 명암법, 원근법(단축법), 캐릭터 등으로 혁신을 이끌어냈다. 명암법과 원근법을 통해 그림에 3차원적 공간감을 부여하고, 인물이 감정을 느끼는 것으로 그림으로써 개성을 나타냈다. 15세기 전기 르네상스의 화가 마사치오와 보티첼리는 이를 더욱 발전시켰다. 마사치오(Masaccio)는 본격적으로 고대 그리스 로마의 미술을 연구하여 적용시키기 시작했다. 작품 <성 삼위일체>, <성전세> 등의 배경에는 고전주의 건축물이 등장했고, 골격과 근육 표현이 자연스러운 인물들과 그들의 콘트라포스토 자세를 통해 ‘이상화된 사실주의’ 를 담았다. 보티첼리(Sandro Botticelli)표현 양식, 내용 자체 모두 고전주의에 따르며 본격적인 르네상스의 포문을 열었다. <비너스의 탄생>에서 1점 투시 원근법에 따른 바다의 공간적인 표현과, 인체의 이상화된 유려함,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를 볼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곧 전성기의 다빈치에게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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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1] 명암법을 쓴 지오토의 작품. 슬픔에 울고있는 천사들의 감정표현이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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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2] 마사치오의 <성전세>. 고전적 배경과 인체비례는 이후 다 빈치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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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3] 보니첼리 작 <비너스의 탄생>. 고전주의적 특징이 극에 달한다.



3. 르네상스의 3대 거장  :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르네상스 전성기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부터로, 본격적인 발전을 맞는다. 다 빈치는 1470년대부터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는 기하학, 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철저하게 고전주의적인 화면 구성을 시도했다. <최후의 만찬>, <성 안나와 성모자>에서 이를 증명한다. 먼저, 안정적인 구도 속에 인체는 역시 이상화된 사실주의로 표현됐고, 선 원근법, 색 원근법, 대기 원근법 등 세 가지 원근법이 보인다. 또한, 자체개발한 키아로스큐로 명암법을 사용했다. 거의 동시대에, 미켈란젤로(Michelangelo Buonarroti)도 등장했다. 그는 초기 걸작 <피에타>와 <다비드>를 통해 네오플라토니즘과 인체의 근육, 자세, 사실성을 통해 이상적인 고전미를 보여주었다. 중기의 회화 시스티나 천정화 또한 인체의 부피감과 역동적인 자세를 나타낸다. 그는 후기, 말년에 <최후의 심판>, <론다니니의 피에타>에서 탈고전주의적 표현을 하는 등 시대를 앞서간 면모를 드러내기도 했다. 마지막 거장 라파엘로(Raffaello Sanzio)는 앞선 둘의 장점을 흡수하고 개성적인 표현을 더했다. 그는 마돈나를 즐겨 그렸으며, 서정미, 통일미, 우아미, 청순한 색감 등 확연한 구별점을 지녔다. <대공의 성모>는 다 빈치의 세 원근법에 따라 철저한 고전주의 원칙 아래 제작했고, <그리스도의 매장>은 미켈란젤로의 영향으로 근육의 표현이 강조됐다. <아테네 학당>, <성체논쟁>에서는 네오플라토니즘을 보여주었다. 또한 1520년 작 <그리스도의 변모>에서는 명암대비와 불안정한 구도의 다이나미즘으로 바로크를 예고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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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4] <최후의 만찬>, 다 빈치. 안정적인 원근감과 예수의 머리를 소실점으로 한 삼각형 구도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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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5] <피에타> 완벽한 옷 주름 묘사와 이분법적 구도(삶과 죽음, 종과 횡 등)가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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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6] 라파엘로의 색감과 고전주의 이상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배경, 인물 묘사.



4. 르네상스의 이동  :  베네치아 화파, 북유럽 르네상스 등


       16세기 중후반, 전성기를 거쳐 르네상스의 중심지가 상업도시인 베네치아로 옮겨갔다. 지중해 무역과 금융업을 통해 막대한 부를 축적한 베네치아는 피렌체와 다른 문화를 창조했다. 명확한 윤곽선, 명암법, 고전주의적 구도를 따른 피렌체와 달리 베네치아 화파는 풍부한 색채와 밝은 빛, 감수성이 그 특징이다. 이 차이점은 베네치아가 1년 내내 화창한 항구 도시라는 지리적인 요인에서 비롯됐다. 대표적인 화가 지오반니 벨리니는 <성인들과 성모자>에서, 시각적인 그림에 청각적인 요소를 집어넣어 공감각적 효과를 주었다. 또한 조르조네는 자연 자체를 배경이 아닌 주제로 삼는 등 이전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점이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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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7] <정원의 합주>, 조르조네. 자연을 배경과 소재 모두 삼는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비슷한 시기 알프스 산맥 북부에서도 북유럽 르네상스가 발생했다. 소수의 최상류층이 주도한 이탈리아 르네상스와 달리 북유럽 르네상스의 예술 향유자들은 다수의 부유시민 계층이었다. 그들은 상업과 금융업에 근거하였으므로 자연스레 미술은 세속적인 취향을 띄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프로테스탄트였기 때문에, 대부분 현실적이었다. 표현 방식은, 중세의 고딕 전통을 계승하되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기법들을 흡수한 것이었다. 또한, 북부 프랑스의 로베르 캉팽은 친밀함을, 플랑드르의 얀 반 에이크는 휴머니즘에 근거한 치밀한 사실주의를, 네덜란드의 히에로니무스 보쉬와 피터 브뢰겔은 각각 종교화와 풍속화를 그렸으며, 독일의 그뤼네발트는 중세의 전통을 지속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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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8] 브뢰겔 작품으로, 사냥꾼과 얼음 위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는 풍속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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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9] 그뤼네발트의 <십자가형>.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이상미와 달리 뒤틀리고 사실적이다.



      이러한 중세부터 이탈리아 남부 르네상스, 베네치아 화파, 북유럽 르네상스, 즉 근대에 이르기까지 유럽의 미술은 많은 변화를 겪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각각의 지역마다 표현방법의 개성을 지니고 있으며, 르네상스 라는 이름 하나로 묶기에 아까울 정도이다.

[최한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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