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는 다른 누구도 아닌, 그러나 그냥 중식이다 -나는 중식이다 (I Am Joongsik, 2014) [시각예술]

글 입력 2015.03.08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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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중식이다 (I Am Joongsik, 2014)
감독- 정중식
17분/ 다큐멘터리


“나는 중식이다.” 영화는 시작부터 대뜸, 그러니까 감독이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으로 시작한다. “나는 영화감독이다.” 으레 영화감독이라 함은, 카메라 뒤에 숨어 여기에 카메라가 있다는 사실과 자신이 있다는 사실을 감쪽같이 숨긴 채 어떤 ‘시선’으로 자리하기 마련인데 이 영화, 시작부터 범상치 않다. 감독은 스스럼없이 자신을 들어내고 그러니까 여기 ‘내가 있다’는 사실부터 알린다. 우리는 그러니까 먼저 알게 된다. 저 사람, 중식이구나.  


영화를 이끌고 가는 것은 줄거리가 아니라 감독 중식의 내레이션이다. 그는 참 꾸밈없어서 서툰 듯, 그러나 맞는 소리를 하기 시작한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성의 없는 사람의 말은 신뢰하지 않는다.” 이것은 ‘나’ 중식으로부터 파생되는 생각이다. 그의 말은 꼭 그냥 던져놓은 것만 같은 참 단순한 말인 것 같은데, 희한하게 자꾸 곱씹게 된다. 그러거나 말거나, 중식은 ‘성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도 막노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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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발붙이고 있는 이 사회에 대해 말하기를 멈추지 않는다. “이 시대는 빚이 없는 것이 가장 부자인 것이다.” 말은 또 다시 꼬리를 문다. “부자들도 빚을 낸다. 세금을 덜 내기위해.” 여기에는 또 독특한 판단이 붙는다. “그러니 우리는 다 같은 것이다. 조급하기는 서로 마찬가지다.” 모두 같아서, 모두 조급한 사회 속에 “사람들은 열심히 산다. 그래서 난 더 열심히 살아야한다.” 중식은 그렇게 읊조린다. 세상은 중식이 훌라후프에 소니 액션카메라를 달아놓고 훌라후프를 돌리며 찍은 영상처럼, 빙글빙글 참 어지럽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다. 현기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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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는 변주되는 음악처럼 처음으로 돌아간다. 그는 다시 ‘나’ 중식이 누구인가에 대해 말을 꺼내기 시작한다. “사실 나는 작곡가이다.” 그는 이번에는 이렇게 밝히면서 다시 자신이 속해있는, 우리가 속해있는 사회에 대해 말하기 시작한다. “좋은 회사에 가려면 좋은 이력을 가지고 있어야한다.” 이것은 진실이다. “사회는 성격이고, 개인의 능력이라고들 하지만 그거 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다.” 이것 또한 진실이다. 그래서 참 잔혹하다. 저것이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모두 알고 있는 이 사실이 참 잔혹하다. “나는 왜 이런 잔인한 시대에 태어난 걸까.” 중식은 알고 있어서 이렇게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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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이력서에 써넣을 수 없는 이력들은 우리로부터 떨어져나가 ‘무용한 것’이 된다. 중식의 말을 빌려오자면,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성의 없는 사람’이 되기 십상이다. 그것으로 어떤 눈에 보일 성과를 이뤄내지 못하면, ‘성의’가 없으면 우리는 돌아가 어떤 말에도 신뢰받을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다. 바야흐로, 다시 한 번 더 말하지만 참 잔인한 시대가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 앞에서 가지지 못하면 게으른 사람, 죄송한 사람, 죄인이 되고야만다. 기어코. 그래서 중식이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왜 죄송해야하는 거지?”


우리는 지금 이 시각에도 수많은 불안과 다툰다.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늦은 밤까지 노량진 학원가의 빛은 꺼지지 않는다. 우린 학생들은 쌓아놓으면 제 키보다 높을 참고서를 쌓아두고 공부에 매진한다. 안정된 미래를 위해, 안정될 미래를 보장해줄 회사에 입사하기위해. 그러나 그 안정된 미래가 보장받는다고 해서 불안이 끝나는 건 아니다. 언제 집을 가지고 언제 결혼을 하고 언제 노후준비를 할까. 못하고 혹시나 내가 큰일을 입기라도 한다면? 실체 없는 불안은 영원히 우리 곁을 가시지 않을 것만 같다.


그런 불안한 우리 앞에 떨어지는 모든 말들, ‘왜 우리가 불안한가.’를 정의하려는 목소리들에 중식은 그저 다 맞다고 이야기한다. 물론 맞다. 그러나 그것들은 진정 불안감을 떨쳐줄 수는 없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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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세탁기에 카메라를 넣는다. 액션캠은 방수가 되니 괜찮다. 세탁기 속 기포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러나 영상을 오래도록 보고 있으면 저 물에 빠지기라도 것처럼 그곳이 아득하다. 그럼에도 기포는 또 얼마나 아름다운 지. 상관없이 노래는 우리를 위로한다. “괜찮아, 괜찮아 잘 될 거야.” 왜냐하면 “오늘은 살아있네”라고 말할 수 있으니까. 그럼에도, 어쨌거나 우리가 여전히 살아있으니까.  


여전히 참 산다는 것이 명확히 무엇인가, 모르기도 모르겠고 가끔은 내가 살아가는 일이 누군가에게 이물질처럼 여겨지는 것은 아닌가, 두려울 때가 있다. 남의 시선에서 나를 보느라 정신이 없다. 여기에 더욱이 ‘잘’ 산다는 말이 무슨 말인 지. 도무지 모르겠어서 힘들다. 하지만 그게 뭐, 그게 그리 중요한가. 적어도 내 삶에 나의 기준을 세워가며 제 나름의 삶을 어떤 방식으로든 이끌어나가는 것 그럼에도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 아니겠는가. 물론 힘든 세상이다. 돈 없으면 견디기 힘든 세상이다. 이때 우린 도저히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거라, 무력감에 젖은 순간 게임오버다. 어짜피 “뭔가 대단한 걸 찍어내려면 돈을 내야”하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할 수 있는 한 할 수 있는 것 안에서 해야 한다.” 그의 소박한 말이, 그래 손에 짱돌은 못 들어도 펜 하나는 들 수 있는 힘을 준다.
 

뭐 그러니까 어쨌거나, 저 중식이라는 사람, 참 보면 볼수록 정가는 사람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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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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