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신의 컬쳐에세이 - 큰 바위 얼굴

글 입력 2015.04.20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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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바위 얼굴


어려서부터 자라난 우리 집 바로 뒤로는 길다란 인왕산이 늘어서 있다
서울의 복판이면서 서편이다

 
산줄기 제일 왼편에 커다란 바위가 튀어나온 게 보기에 따라 사람의 옆 얼굴 모습으로 보이는데 어느 순간 어느 위치에선 그 모습이 완벽하다. 사직공원을 끼고 북악 스카이웨이 길로 들어서 초입에서 왼편으로 올라 가 얼마 전 새로 쌓은 돌성벽을 따라 오르는 길이 그 중 하나이다.

 
어려서 그 바위를 바라보며 나는 언젠가부터 그것을 '큰 바위 얼굴'로 생각하기 시작했다

 
이화여중 교과서에는 알퐁스 도테의 '마지막 수업'과 함께 나다니엘 호오손의 '큰 바위 얼굴' 단편이 실려 있었다. 두 작품 다 구성과 문장과 어휘, 문학성과  메세지가 탁월하다. 영상이 잘 없던 시절 절로 눈앞에 영상이 그려졌고 그 이미지는 어린 가슴에 그대로 새겨졌다

 
국어 선생님이 가끔 누구에게 낭독을 시키려고 '누가 낭독할까?' 하면 친구들이 '이승신요~' 하여 앞으로 나가 책을 들고 읽어 더 선명히 인상에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집에서나 밖에서 인왕산이 보이고 그 사람 얼굴 모양의 큰 바위를 보면 자연스레 어려서 본 그 작품이 떠올랐다  

 
미국의 작은 시골 마을에 내려 오는 한 전설이 있다
산위에 우뚝 솟아 있는 바위에 보이는 저 모습을 닮은 인물이 이 마을에서 태어나 큰 인물이 되어 고향으로 금의환향해 온다는 것이다. 한 어린 소년도 그것을 들었다. 누구일까 궁금해 하며 문학 소년으로 자라 그 바위를 우러르며 글을 쓰고 기다린다 

 
하루는 전쟁에서 승리한 장군이 고향으로 돌아와 모두 기대를 했으나 아니었고 크게 성공한 정치가가 돌아왔고 큰 도시에서 큰 돈을 번 거부 기업가가 마을에 돌아왔으나 아니었고 학자와 과학자 많은 성공한 인물들이 고향에 왔으나 하나같이 아니어서 실망을 했다

 
많은 세월이 흘렀고 어느 날 마을 사람들은 그간 고향 마을을 사랑하고 좋은 작품을 써 온 어른이 된 문학 소년을 가리키며 이 사람이야말로 우리가 이 마을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바로 그 인물이라고 했다 

 
처음 그 작품을 접했을 때는 기다리는 그 문학 소년을 따라 나도 누구일까 궁금해 하다 종반부에 그 소년이 바로 주인공이 되는 것에 전율하며 감격했다

 
인물이라는 것이 무슨 대단한 태어남이거나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이런 한 작고 평범한 사람이 진실되고 진지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자라나 가는 과정에서 마침내 자신이 기다려온 그 인물이 스스로 되어가는 것이로구나 하는 깨우침.
모든 것은 우리 하기에 따라 마음 먹기에 따라 큰 바위 얼굴이 되는 것이다 

 
위대한 작가의 문학 작품이란 이렇게 우리 삶에 큰 영향을 준다
작품을 통해 그것을 스스로 깨우치고 대견해 하며, 늘 나를 보고 있는 인왕산의 이름 없는 그 바위에 이름을 붙쳐주고는 꿈처럼 바라다 보았다

 
미국에서 알던 친구들이 서울에 오면 그런 마음을  받아들일만한 친구에게는 어린 날의 그 이야기를 들려주며 바위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러면 돌아가서 서울에 머무는동안 그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남았다고 하는 친구도 있다

 
한국에 사는 친구들에게도 가끔은 집 주위를 돌아보며 들려주곤 하는데 자신이 살고 있는 나라의 흔한 광경이어서인지 귀담아 들으려 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서촌 마을 사람들도 저것 좀 보시라 아무리 손가락으로 하늘에 우뚝 선 큰 바위 얼굴을 가리켜도 그리워한 적이 없어서인가 신기해 하지 않거나 흥미 없어 하는 경우들이 있다

 
오랜 해외 삶에서 그리워 했던 그 얼굴은 돌아와 보니 묵묵히 날 기다려주고 있었다 
많은 것이 변했음에도 여전히 정겨운 그 얼굴이 그 꿈이 거기에 있다는 것이 신기하고 더구나 앞으로도 그 자리에 늘상 있어 줄 생각을 하면 감격하고 감사하고 눈물겹다

 
우리에게 이제 필요한 것은 더 큰 성공과 더한 편안함이기 보다 그런 어린 날 가슴에 새기던 꿈을 잃지 않고 소중히 지켜 나아가는 것일지 모른다

 
오가며 그를 바라다보면 언제나 흐믓한 미소가 지어진다 



                       첫 눈길을 준 순간부터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 있는 너
 
                       너를 보고 있어도 
                       나는
                       여전히 네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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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jpg▲ 어려서부터 보아온 인왕산 정겨운 큰 바위 얼굴 - 2015 1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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