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인문극장, "베키쇼"

글 입력 2014.06.03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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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명이 불가능한 우리의 삶의 단면

<베키쇼> 

 

<베키쇼>라는 제목의 연극을 관람하게 된 관객들 대부분은 막이 오르기 전 베키라는 인물이 이 작품에서 엄청난 중심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막이 오른 후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간 후에도 무대 위 베키의 흔적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으며, 다만 베키를 제외한 다른 인물들의 삶이 불필요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될 뿐이다. 그러던 중 베키는 극의 중반부가 다 되어서야 무대에 처음 등장한다. 하지만 더욱 충격적인 것은 베키가 이 작품에서 가지는 역할이 그다지 흡입력 있지 않다는 데에 있다. 베키는 단지 평범하고, 연약하고, 끊임없이 흔들리는 우리 주변의 젊은 여성이다. 그녀의 행동 중 무엇이 그녀가 의도한 것인지 조차도 관객은 알아차리기 어렵다. 사실 베키쇼 자신조차도 자기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주인공 역할을 하기에는 규정하기 힘든 모호한 인물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처럼 관객에게 결코 아무 확신도 주지 못하는 베키는 결과적으로는 무대 위 다른 등장 인물들의 삶을 뒤흔들어 버린다. 수잔은 베키쇼 때문에 남편 앤드류를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전전긍긍하며, 완벽하게 계획적인 삶을 살아내던 맥스는 향후 그의 인생을 전부 베키에게 내어주어야 할 위기에 처해 절망한다.

베키를 비롯한 작품 속 인물들은 모두 주변에 있을 법한 비교적 평범한 인물들이며 영웅적이거나 비장한 면모를 보이는 인물은 없다. 다만 그들은 어느 한 단어로 압축하기 어려운 성향을 보여주며 극 속에서 끊임없이 심경의 변화를 겪는다. 베키쇼 또한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이러한 인물들이야말로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병약하고 흔들리는 모습 보여주는 듯하다. 관객은 그들의 실제 삶에서 이와 같이 모호한 경우를 충분히 발견할 수 있다. 그 누가 의도치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많은 사람들의 삶이 뒤얽히고 혼란스러워 지는 상황 또한 꽤 종종 일어난다. 인간의 삶이란 원래 이처럼 끊임없이 상호작용하면서 의도치 않은 결과를 만들어 낸다. , 베키쇼라는 인물에 대한 모호하고 애매한 설정은 우리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연출가와 배우에 의해 의도된 것이며, 최대한으로 현실의 모습을 담아냄으로써 관객이 인생에 대해 주체적으로 되돌아보게 하는 효과를 낳게 된다.

먼저, 이와 같은 인물의 모호함은 관객들을 연극으로부터 분리시킨다. 고전주의 연극에서와 같이 관객이 연극 속에 깊이 몰입하려면, 치밀한 개연성과 필연성이 어우러져 관객을 단 한 방향으로만 끌고 가야 한다. 하지만 이 연극의 경우에는, 관객이 작품에 대해 물음을 던질 여지가 존재한다. 아무 것도 확정되어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주체적으로 깨어난 관객은 무대 바깥에서 무대 안의 상황을 비교적 객관적인 입장에서 관찰하기 시작한다.

겉으로 보기에는 진지해 보이는 <베키쇼>의 소재들, 인물 설정이나 에피소드들에는 사실 이른바 막장의 요소가 다분하다. 온 몸이 굳는 병에 걸렸음에도 젊은 남창과의 관계에 목매는 수잔의 엄마, 엄마의 이성관계도 모자라 죽은 아버지가 동성애자였음을 알게 된 수잔, 어딘가 부족한 여성에게만 일종의 연민을 느껴 사랑하게 되는 앤드류. 촌스럽고 유치한 기호를 가진 자신의 실상을 알지 못하는 눈치 없는 베키와, 그러한 베키 때문에 완벽했던 인생이 뒤엎어질 위기에 처한 맥스. 이 모든 인물들은 자신의 삶이 비장미 넘치는 일들의 연속이라고 여기며 그들이 처한 상황 때문에 크나큰 고뇌를 느끼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관객의 입장에서는 이 모든 것이 해학적일 뿐이다. 인물 자신은 그 누구보다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지만 이를 보는 관객은 웃지 않을 수 없다. 극 중 이러한 특징은 수잔과 맥스가 앤드류에 대해 평가하는 지점에서 매우 두드러진다. ‘포르노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사람’. 몇 번이고 반복되는 포르노눈물에 대한 진지한 논쟁은 관객을 폭소하게 만든다. 이는 관객을 작품 속 인물로부터 최대한 분리시키는 역할을 한다.

여기서 메이어홀드(Meyerhold)의 연기론과 <베키쇼>가 상통하는 측면을 발견할 수 있다. 메이어홀드에 따르면 인물설정이나 배우의 연기는 절대적인 환영을 만들어 관객을 포섭할 위험에 대해 언급하며, 이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배우는 인물에 완벽히 몰입되기 보다는, 연기하고 있는 순간에도 이것이 연기임을 자각하여 의도적으로 관객들을 인물로부터 이화(異化)시켜야 한다. 이를 위해서 배우는 배우로서의 인간, 그리고 극중인물로서의 인간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해야 한다. 이와 같은 이화작용을 통해 관객은 메이어 홀드가 의도한 바와 같이 극에 대해 객관적인 견지를 유지하며 주체적으로 작품을 수용하고 해석할 수 있게 된다. 비로소 관객의 능동적인 참여가 일어나는 것이다.

관객을 극으로부터 분리시키는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극의 진행 상 가장 중요한 부분은 바로 베키가 등장하는 시점이다. 인물들은 베키의 등장을 기점으로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된다. 앞서 언급한 막장적 요소로부터는 어떠한 극의 서사도 진행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러한 선정적인 요소에 비해 너무나도 평범할 뿐인 베키쇼라는 인물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구조적 상황은 그 자체로도 해학적이다. 심지어 베키가 이 모든 것을 의도했는지 조차 확언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관객들은 헛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 전혀 완결되지 않은 극의 구조 또한 관객이 극에 몰입하는 것을 막는 역할을 한다. <베키쇼>라는 제목을 가진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베키는 극의 중반부나 되어서야 등장한다. 또한 베키가 맥스의 삶에 드디어 완벽히 두 발을 들인 순간 극이 끝남으로써, 베키와 맥스가 향후 어떠한 관계를 형성해 나갈지 아무런 언지도 주지 않는다. , 주인공 인물의 영웅적 면모나 의미심장한 결말과 같은 것은 이 작품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 작품은 단지 인간들이 살아가는 그 과정을 보여주고자 한다. 서로가 만들어 내는 관계, 그 총체적인 다이내믹스 자체가 중요한 것이다.

이처럼 작품을 보는 관객이 극으로부터 분리되는 것은 우리 삶에 대입하여 생각해 봤을 때 사실 가장 실제를 잘 담아내고 있는 부분에서이다. 관객들은 우리의 실제 삶과 다를 것 없는 상황이 무대 위에서 펼쳐지고 있음에 일종의 위화감을 느낀다. 이러한 위화감을 통해 자각(自覺)한 관찰자로 변모한 관객은 결국엔 극 속에서 의미를 찾고 공감하는 데에 이르게 된다. 이 작품은 우리의 인생에 대해 말하고 있다. 우리의 삶 속에서는 이렇다 할 주인공이 없다. 자기 자신조차도 자신의 인생을 의도한대로 이끌어 나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자신이나 주변 사람들을 정의하기조차 힘들 때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어떤 중심인물이 존재하고, 그 인물의 행동이 다른 인물들 모두를 휘어 잡아 진행방향이 급격하게 전환되는 것, 이는 실제의 삶과는 동떨어진 연극적 요소일 뿐이다. 실제 우리의 삶은 모호함과 평범한 사건들의 연속이다. 삶 속에서 수많은 개인들은 아무런 규칙 없이 뒤섞인다. 그 과정에서 어떤 개인은 상처를 입을 수도 있지만, 이것이 누구의 의도인지 밝혀내기란 불가능하며, 사실 그 누구의 의도도 아닐지 모른다. 이와 같은 <베키쇼>의 측면은 앞서 언급한 메이어 홀드의 문제의식에 부합하는 측면이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작품의 절정이라고 부를 수 있는 부분에서 맥스의 파토스적인 연기는 이러한 측면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맥스는 자신에 삶에 조금씩 손을 뻗어 오는 베키의 존재를 애써 부정한다. “베키 따위는 내 삶에 어떤 일부분도 차지하지 못 해!” 절규에 가까운 맥스의 대사와 허공에서 베키를 밀어내는 듯한 그의 움직임, 그리고 무대의 양쪽 뒤편에서 매우 갑작스럽게 엄청난 속도로 맞부딪힐 듯이 서로를 향해 가운데로 돌진하는 벽의 움직임은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역설적으로 최대한 부각시킨다. 규정할 수 있는 주체들이 계획적으로 만들어간다기 보다, 오히려 우발적이고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이다. 지극히 연약하고 보잘것없는 베키가 결과적으로는 극 전체를 뒤흔들어 버린 것과 마찬가지이다.


[최다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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