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동의 클래식 메카, 도쿄 ①

글 입력 2014.01.01 17:0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나에게 일본의 수도 도쿄는 음악의 도시다. 그 곳에는 아시아 땅에서 상상할 수 없는 서양고전음악의 향연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세계적인 거장들이 주도하는 질펀한 명곡의 향연이 연중 쉴 새 없이 도쿄의 다양한 연주회장에서 매일 밤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 도쿄에서 음악의 세례를 처음 받은 것은 2006 10 13일 금요일 밤 산토리홀에서였다. 당시 73세의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무대를 나는 그날 밤 도쿄 산토리홀에서 목격했다. 소프라노 라헬 하르니쉬가 부른 모차르트의 콘서트 아리아 세 편과 말러의 교향곡 6비극적이 이 날의 프로그램이었다. 베를린 필을 이끌고 도쿄를 찾은 지 6년 만의 일본 방문이었으니 당시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는 대단했다. 그것도 위암 투병에서 불사신처럼 살아돌아온 이후의 첫 방일 공연이었기에 의미가 배가된 무대였다. 그 날 밤 아바도가 이끈 모차르트와 말러의 명연을 관람하면서 나는 문득 다음과 같은 생각을 했다. 아바도도 좋고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도 좋지만 그 이전에 빼어난 음향과 호화로운 설비를 갖춘 산토리홀 같은 클래식 전용 콘서트홀을 일본인들은 어떻게 1980년대에 내놓을 수 있었던 것일까 하고.
 
   


 
아시아를 대표하는 고전음악전당, 산토리홀


야스이 건설의 설계로 1970년대 후반부터 공사에 들어간 도쿄 산토리홀은 건립 당시부터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의 조언을 받아들여 포도밭 경사의 객석을 갖춘 일본 최초의 연주회장으로 지어졌다. 2006석의 객석수를 갖춘 메인홀과 384석에서 432석까지 가변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 스몰홀이 산토리홀이 품고 있는 두 공간이다. 산토리사가 자사의 위스키 생산 60주년과 맥주 생산 20주년을 자축하기 위해 1986 10 12일 개관한 산토리홀은 그 탁월한 음향만큼이나 무대 전면 상부에 건립한 파이프오르간의 장중함으로도 회자되고 있다. 그리고 산토리홀 앞의 드넓은 광장을 헤르베르트 폰 카라얀 플라자로 명명했을 만큼 태생적으로 카라얀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연주회장이 산토리홀인 것이다. 이 곳에서 카라얀은 1986년과 1988년 두 차례 베를린 필을 이끌고 명무대를 일구어냈다. 그리고 1989년 여름, 20세기 지휘계의 제왕은 눈을 감았으니 카라얀 최후의 무대 중 하이라이트로 산토리홀을 떠올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싶다. 카라얀 스스로도 산토리홀을 일컬어 음향의 보석상자라 극찬했다고 전해진다.
 


▲ 산토리홀 객석 내부 (사진출처-Suntory Hall)
▲ 산토리홀 외관 정면 (사진출처-Suntory Hall)
 

 
 
도쿄 롯본기 아크힐 컴플렉스에 우뚝 솟은 산토리홀을 처음 방문한 지 7년이 흐른 2013 10, 나는 두 번째로 산토리홀을 찾아 뭇 음악의 세례를 받았다. 도착 당일인 10 12일 토요일 저녁에는 현존 최고령 지휘자인 구순의 스타니수아프 스크로바체프스키(1923- )가 요미우리 니폰 심포니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스크로바체프스키 본인의 작품, ‘파사칼리아 이마지나리아와 브루크너의 교향곡 4낭만적을 들었다. 연주회 아흐레 전인 2013 10 3일로 만 90세를 넘긴 스크로바체프스키 옹은 구순의 고령에도 자유자재로 웅변하는 거침없는 지휘를 선보여 나를 감동시켰다. 다음 날인 13일 일요일 오후에는 도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차기 음악감독으로 내정된 영국의 명지휘자 조너선 노트가 동악단을 이끌고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네 개의 마지막 노래’(소프라노 크리스틴 브루어 협연)알프스 교향곡을 지휘한 무대를 관람했다. 왕년의 카라얀을 닮은 듯한 노트의 샤프한 외모와 명쾌하고도 묵직한 지휘는 옛 거장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특히 알프스 교향곡에서 뿜어져 나온 산토리홀 파이프오르간의 장중한 울림은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었다

 
그리고 10 16일 수요일에 다시 찾아간 산토리홀에서 나는 도쿄도 주정부가 1964년 도쿄올림픽 유치를 자축하기 위해 창단한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를 크리스티안 예르비의 지휘로 들었다. 라흐마니노프와 프로코피예프, 스트라빈스키를 뜨겁게 연소시킨 예르비의 비팅만큼이나 도쿄 메트로폴리탄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기민한 연주력은 걸출했다. 그리고 이틀이 지난 10 18일 금요일 저녁, 이번에는 알렉산데르 라자레프의 지휘로 재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회를 또한 산토리홀에서 들었다. 2008년부터 동악단의 수석지휘자로 있는 라자레프의 지휘는 매우 진폭이 크고 격렬한 스태미너로 일관한 폭발적인 것이었다. 다만 재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대응력은 앞선 세 악단의 그것에 조금 못 미치는 것 같아 아까울 따름이었다. 이렇듯 내가 산토리홀의 객석에서 들은 연주회들은 하나같이 명연 일색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감탄스러웠던 것은 이들 연주회의 객석 모두를 가득 메운 일본인들의 풍경이었다. 흡사 일사불란한 도열을 방불케 할 만큼의 깍듯한 매무새로 연주회를 경청하던 일본인들의 풍경은 혀를 내두르게 할 만큼 알뜰한 것이었다.


 

 
아시아 최고의 오페라전당, 신국립극장 오페라하우스


▲ 도쿄 신국립극장 객석 (사진출처-Chikashi Saegusa)
▲ 도쿄 신국립극장 무대 (사진출처-Chikashi Saegusa)
▲ 도쿄 신국립극장 외관 (사진출처-Chikashi Saegusa)



산토리홀로의 이 같은 잦은 발걸음 끝무렵에 나는 그 유명한 일본의 오페라전당인 신국립극장 오페라하우스를 10 20일 일요일 오후에 방문했다. 미리 끊어놓은 피가로의 결혼표를 찾고 막상 들어가본 신국립극장 오페라하우스의 객석내부는 너스레를 일소한 정갈함의 첫인상으로 다가왔다. 야나기사와 다카히코의 설계로 건립되어 1997 2월 준공한 도쿄 신국립극장은 같은 해 10월 개관무대를 가졌다. 1814석의 오페라극장과 1038석의 연극 전용극장, 468석의 소극장으로 이루어진 도쿄 신국립극장은 일본 굴지의 오페라하우스를 품고 있는 아시아 공연예술의 허브다. 그런 도쿄 신국립극장 오페라하우스에는 매 시즌 각각 열 편 남짓한 오페라와 발레작품이 무대에 오른다. 세계적인 지휘자와 연출가, 무대미술가, 성악가들을 초빙해 펼쳐지는 오페라와 발레무대들은 유럽 유수의 오페라하우스 부럽지 않은 높은 퀄리티를 유지해 오고 있다. 당장 내가 이 날 관극한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무대에서 지휘는 독일의 명조련사 울프 쉬르머가 맡았고, 미니멀한 미장센의 대가로 불리는 안드레아스 호모키가 연출을 담당했다. 도쿄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신국립극장 합창단이 가세한 앙상블 또한 쉬르머의 경제적인 지휘 아래 탄탄한 매무새를 뽐냈다. 이래저래 흠잡을 데 없는 농밀한 완성도의 피가로의 결혼을 이들은 도쿄 신주쿠에 위치한 신국립극장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선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 도쿄 신국립극장의 '피가로의 결혼' 공연사진 (사진출처-Chikashi Saegusa)




부러운 일이었다. 아직 오페라하우스 전속 앙상블조차 보유하고 있지 못한 국내 현실을 생각하면 더더욱 부러운 일이었다. 이들은 벌써 2005년부터 명지휘자 와가스기 히로시를 예술고문으로 모셔와 신국립극장 오페라단를 출범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마키 아사미를 예술감독으로 둔 신국립극장 발레단 또한 출범시킨 지 오래다. 여기에 2010년부터는 버밍엄 로열 발레단의 예술감독인 데이비드 빈틀리가 가세해 마키 아사미와 공동예술감독 자격으로 신국립극장 발레단을 이끌고 있다. 그야말로 유럽 유수 오페라하우스의 선진적인 시스템을 그대로 흉내내 그들 원조 이상 가는 레벨로 다듬고 키워내는 일본인들의 세공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것이라면 무조건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자세에서 벗어나 서구의 선진문물을 선구적이고 높은 수준으로 수용하는 일본인들의 정통적인 마인드를 눈여겨 볼 일이다. 아직 대한민국에는 오페라하우스 소속의 전속 오페라단과 발레단이 없다. 국립, 민간의 여러 오페라단들이 산재할 뿐이다. 이래서는 십년 앞을 내다본 완성도 높은 오페라, 발레무대를 기획할 수 없다. 오페라하우스라는 설비와 오페라단, 발레단 같은 인력이 일심동체로 화하는 일사불란한 시스템으로 정비되어야 대한민국의 오페라/발레예술은 비로소 세계화로의 내실을 다질 수 있게 될 것이다. 지금은 그저 간판만 요란한 허울 뿐인 오페라/발레예술의 세계화일 뿐이다. 어떻게든 개선되어야 할 대한민국의 오페라하우스 풍경이다.
 


 
아시아 최고 악단의 연주회장, NHK홀


지난 도쿄 체류에서 필자가 찾아간 또 다른 극장으로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상주연주회장인 NHK홀을 언급해야겠다. 일본 최고의 오케스트라일 뿐 아니라, 아시아 최고 악단의 위상을 자랑하는 NHK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정기연주회를 나는 지난 10 19일 토요일 저녁에 이 곳에서 들었다. 1934년생의 영국지휘자 로저 노링턴이 지휘봉을 든 이 날의 무대에서 NHK홀은 빼어난 어쿠스틱을 뽐내고 있었다. 1973년 새로운 NHK 본사가 도쿄 시부야에 지어지면서 들어선 NHK 홀은 이전의 우치사이와이초 구역에 있었던 구NHK홀보다 현대적이고 탁월한 음향설비로 건립된 음악명소다. 무려 3800석의 매머드급 객석수를 보유한 음악당임에도 음이 허투루 흩어지지 않고 한줄기의 농밀한 덩어리로 집약되어 울리는 탁월한 어쿠스틱은 연주회 내내 감탄사를 연발시켰다. 3층 앞자리에서 관람했음에도 바로 눈 앞에서 펼쳐지는 무대를 지켜보는 양 오케스트라 음향이 직설적으로 육박해와 후련했다. 월트 디즈니 콘서트홀과 마린스키 콘서트홀, 헬싱키 뮤직센터, 파리 필하모니 같은 저명한 연주회장의 음향을 담당한 나가타 음향회사가 어쿠스틱을 총괄했고, TOA 코퍼레이션이 음향기기 일체를 제공한 것으로도 NHK홀은 유명하다
 

 
이 외에도 도쿄를 대표하는 클래식 연주회장은 많이 있다. 그 모두를 한 번에 담아낼 수 없으니 다음을 기약해야겠다. 장담할 수 있는 것은 도쿄의 연주회장 모두가 그 미끈한 외관만큼이나 빼어난 음향의 내관을 자랑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봐서 아름다운 외양과 들어서 감동적인 경험을 나 같은 이방인에게도 도쿄의 클래식 명소들은 선물해주었던 것이다. 앞으로는 세계 최고의 거장들이 선사하는 최고의 음악을 들으러 굳이 서양고전음악의 본고장인 유럽에까지 날아갈 필요가 없을 듯하다. 우리와 바로 이웃해 있는 도쿄가 그 같은 본고장 음악에의 목마름을 해갈해줄 도시로 든든히 버텨주고 있으니 말이다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