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수상음악의 도시, 베네치아

글 - 김승열
글 입력 2016.02.28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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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음악의 도시, 베네치아


글 - 김승열


 지난 2015년 8월 28일 금요일 나는 밤기차를 타고 잘츠부르크에서 베네치아로 넘어 왔다. 오랜만에 다시 찾은 베네치아는 왠지 초췌하고 야위어 보였다. 이로부터 14년 전인 2001년 4월 부활절 바캉스를 맞아 처음 베네치아를 찾았을 당시의 감흥을 잊을 수 없다. 당시의 베네치아는 말 그대로 신천지였다. 당시 베네치아의 메스트레 지구에 거주하던 죽마고우집에 투숙하면서 나는 유리세공으로 유명한 무라노섬을 방문하고 스트라빈스키와 디아길레프의 묘가 있는 산 미켈레 섬을 방문했었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20세기의 명감독 루키노 비스콘티(1906-1976)의 걸작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속 1970년대의 베네치아를 내가 목격한 베네치아 속에 포개려 했던 기억이 새롭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나는 이로부터 5년 전 화마에 휩싸인 라 페니체 오페라극장이 막 재건공사를 시작한 관계로 오페라를 관람할 수는 없었다. 명장 엘리아후 인발이 라 페니체 오페라 오케스트라를 이끌고 브루크너의 교향곡 8번을 지휘함을 알리는 포스터가 베네치아 시가지 곳곳에 나붙어 있던 기억도 새롭다. 라 페니체 오페라극장의 대체극장으로 기능하던 말리브란 극장에서의 공연이었던 걸로 기억되는데, 이 또한 내가 베네치아를 떠난 이후의 일정이라 관람할 수 없었다. 산 마르코 광장에 흩어져 있던 수많은 비둘기떼와 대성당, 두칼레 궁전의 위용과 마주한 나는 1966년 전설적인 테너 마리오 델 모나코가 두칼레 궁전에서 베르디 ‘오텔로’를 불러 빼어난 실황음반을 남겼음을 떠올렸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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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페니체 오페라극장 외관 (Michele Crosera/Teatro La Fenice)


 그로부터 14년이 흐른 지난 베네치아 방문에서 나는 기어이 라 페니체에서 오페라를 관람하고야 말았다. 그것도 2003년 11월 12일 리카르도 무티 지휘의 관현악 연주회로 라 페니체 오페라극장이 재개관하고 첫 오페라시즌에 올려진 로버트 카슨 연출의 ‘라 트라비아타’를. 1987년생의 신성 프란체스카 도토가 비올레타를 부르고 청명한 목청의 테너 프란체스코 데무로가 알프레도를, 바리톤 디미트리 플라타니아스가 제르몽을 부른 명불허전의 무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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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 페니체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 (Michele Crosera/Teatro La Fenice)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라 페니체 오페라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인물은 1971년생의 이탈리아 명장 리카르도 프리차였다. 이래 저래 젊은 피가 들끓는 오소독스한 정통 이탈리아판 ‘라 트라비아타’였다. 더구나 베르디의 이 걸작이 1853년 3월 6일 초연된 극장 또한 라 페니체가 아니었던가. 160여 년 전 라 페니체가 탄생시킨 ‘라 트라비아타’를 정통 이탈리아 캐스팅으로 라 페니체에서 제대로 감상했으니 뿌듯한 마음 이루 말할 수 없었다.



- 화려하기보다는 수수했던 라 페니체

 1996년 화재로 전소되기 이전에도 라 페니체 오페라극장의 아픈 역사는 이미 1836년에 선수를 치고 있었다. 1836년 12월 13일 처음으로 화마에 휩싸인 라 페니체는 불사조란 이름 그대로 이듬해 12월 26일 오뚝이처럼 재건된다. 잠바티스타 메두나와 토마조 메두나라는 형제건축가에 의해 신속하게 복구된 라 페니체는 이후 160년을 무사히 관통했다. 그러나 1996년 1월 29일, 라 페니체 오페라극장의 관리회사 소속 전기기술자 두 명에 의해 고의로 자행된 두 번째 화재는 라 페니체에 치명적인 상처를 안기고 말았다. 이 날로부터 재개관까지 8년 가까운 세월이 소요됐던 것이다. 라 페니체 이전 베네치아에는 산 마르코 광장에 위치한 산 베네데토 극장이 베네치아의 대표 오페라극장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그러나 1773년에 있은 대화재로 산 베네데토 극장은 소실되고 말았다. 이를 계기로 베네치아의 귀족들은 건축가 잔 안토니오 셀바에게 새로운 오페라극장 건축을 위임한다. 그 결과 지금의 라 페니체 오페라극장이 1792년 5월 16일 파이지엘로의 발레극 ‘아그리젠토의 승부’를 올리며 성대하게 개관하게 되는 것이다.

 신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당대 유럽 최고의 오페라하우스였다. 2016년 올해로 224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라 페니체 오페라극장의 위상은 같은 이탈리아의 밀라노 라 스칼라와 나폴리 산 카를로 오페라극장과 더불어 ‘전설’로 각인되어 있다. 지금껏 라 페니체 오페라극장에서 초연된 걸작오페라들만 해도 여럿 언급할 수 있다. 1813년 로시니의 ‘탄크레디’를 시작으로 1823년 같은 작곡가의 ‘세미라미데’, 1830년 벨리니의 ‘카풀렛가와 몬테규가’, 1833년 같은 작곡가의 ‘텐다의 베아트리체’, 1843년 베르디의 ‘에르나니’, 1846년의 ‘아틸라’, 1851년과 1853년, 1857년 연거푸 초연된 베르디의 ‘리골레토’와 ‘라 트라비아타’, ‘시몬 보카네그라’, 1949년 브리튼 ‘빌리 버드’, 1951년 스트라빈스키 ‘탕아의 편력’, 1954년 브리튼 ‘나사의 회전’, 1955년 프로코피예프 ‘불의 천사’, 1964년 마데르나의 ‘하이페리온’에 이르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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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라 페니체 오페라극장 객석과 샹들리에 (Michele Crosera/Teatro La Fen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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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라 페니체 오페라극장 불사조 문양 (Michele Crosera/Teatro La Fenice)

 
 ‘라 트라비아타’를 관람하러 라 페니체에 처음 입회했던 이 날 내가 목격한 극장의 내부는 결코 화려하다고는 할 수 없었다. 셀바의 최초 설계대로 충실한 고증을 거쳐 재건했음에도 극장 내부는 수수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물론 극장 천정의 샹들리에와 5층까지 올라가 있는 객석의 데코레이션은 미세한 세공의 손길을 느끼게 했다. 그럼에도 극장이 발현하는 아우라는 검박한 화려함에 가까웠다. 전체 1100석의 크지 않은 극장 재건에 퍼부은 돈이 9천만 유로, 우리 돈으로 대략 1400억 정도였다는데, 천정의 샹들리에 제작에만 30만 유로가 소요됐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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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베네치아 라 페니체 오페라극장 시즌 개막을 알리는 휘장  (Michele Crosera/Teatro La Fenice)


 그럼에도 나는 라 페니체를 수수한 오페라극장으로 내 마음 속에 간직하고자 한다. 극장 정면의 아담한 현관에서부터 극장 내부의 아기자기한 카펫계단, 그리고 객석과 무대의 거창하지 않은 담백함은 오페라하우스라면 무조건 크고 화려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깨는 좋은 선례로도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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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라 페니체 오페라극장 객석 (Michele Crosera/Teatro La Fenice)



-라 페니체의 분신, 말리브란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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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말리브란 극장 외관  (Michele Crosera/Teatro La Fenice)


 1996년 연초, 라 페니체 오페라극장이 흔적도 없이 사라지자 900석 규모의 말리브란 극장이 오페라극장으로 대신 기능했다. 1678년 개관한 말리브란 극장은 애초 산 조반니 그리소스토모 극장으로 불렸다. 그러나 1835년 극장을 파산위기로부터 구해낸 당대의 명소프라노 마리아 말리브란의 이름을 빌려 말리브란 극장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베네치아에서 라 페니체 오페라극장 다음 가는 오페라/오페레타/영화상영관으로 기능하던 말리브란 극장은 1992년 베네치아 시당국이 인수하면서 라 페니체 오페라극장의 부수극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지금도 라 페니체 오페라극장과 말리브란 극장은 파리 국립 오페라 소속의 오페라 바스티유와 팔레 갸르니에가 공존하는 것과 같은 이상적인 동반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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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말리브란 극장 무대와 객석 (Michele Crosera/Teatro La Feni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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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말리브란 극장의 관객들 (Michele Crosera/Teatro La Fenice)


 사실 베네치아라는 광대하면서도 오밀조밀한 지상 유일의 수상도시에서 라 페니체 오페라극장은 그리 큰 존재감으로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다. 실제로 라 페니체 오페라극장은 베네치아 시가지 한가운데 어딘지 모를 은밀한 곳에 숨어 있다. 처음 맞닥뜨린 인상 또한 작은 체구의 아담한 스케일에 가까우며 막상 들어가본 극장 내부 또한 웅장함과는 거리가 있다. 오페라하우스로는 그리 새로울 것 없는 평범함으로 다가오는 극장이 라 페니체다. 그럼에도 라 페니체에는 형용할 길 없는 특별함이 묻어난다. 이탈리아 정통 오페라들을 고도(古都) 베네치아의 유서 깊은 정통 오페라극장에서, 정통의 이탈리아 캐스팅으로 들을 수 있다는 특별함. 나는 그 특별함을 찾아 라 페니체를 그 언젠가 다시 찾을 생각이다.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고전음악칼럼니스트.

월간 클래식음악잡지 <코다>,<안단테>,<프리뷰+>,<아이무지카>,<월간 음악세계> 및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계간지 <아트인천>,
무크지 <아르스비테> 등에 기고했다.

파리에 5년 남짓 유학하면서 클래식/오페라 거장들의 무대를 수백편 관람한 고전음악 마니아다.

저서로는 <거장들의 유럽 클래식 무대>(2013/투티)가 있다.
현재 공공기관과 음악관련기관, 백화점 등지에서 클래식/오페라 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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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우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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