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제주문화여행: (4)'여행'의 의미 [여행]

글 입력 2016.01.19 0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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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주의 <철학이 필요한 시간>이라는 책 마지막에는 이러한 구절이 등장한다. 

“진정한 여행을 떠난 사람은 자신이 도착한 낯선 곳에서 익숙해질 때까지 그곳에 머물러야 한다. (......) 그래서 여행은 차이의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낯선 여행지와 익숙한 일상 사이의 차이, 혹은 이제는 익숙해진 여행지와 낯설게 느껴지는 일상 사이의 차이, 이 두 가지를 동시에 겪어내야만, 여행을 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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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이 ‘차이’라는 것을 느끼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이 차이를 느낄 수 있을만한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숨 쉴 틈도 없이 빡빡한 계획으로 채워진 여행일정 속에서 과연 ‘차이’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는가. 너무나 열심히 보고 열심히 듣고 열심히 사진으로 남기기에만 바쁘진 않았을까.

점점 많은 사람들이 이와 비슷한 생각을 한 듯싶다. 요즘은 여행을 ‘깊게’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이 ‘깊이’는 앞서 말한 낯선 곳을 익숙하게 만들어 가는 과정 속에서 생기는 것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차이를 느낄 수 있는 이 깊은 여행에는 빈 시간, 즉 ‘여유’라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여행에서는 꼭 하고 싶었던 것 한두 가지만 미리 생각해두고 나머지는 하얀 빈칸으로 두었다. 시간과 순서와 같은 것들에 대해서는 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았다. 우린 때때로 스스로 세운 계획에 갇혀버릴 때가 있다. 짜 놓은 계획에서 벗어나는 것을 유쾌하게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다. 미리 세워둔 계획에 너무 집착하다 보면 종종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하곤 한다. 그러나 계획은 어디까지나 계획일 뿐이다. 완벽한 계획이란 존재할 수가 없다. 우리가 이미 완벽한 인간이 아니지 않은가.


“처음부터 끝까지 즐거움으로 가득 찬 계획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어.”
-제인오스틴, <오만과 편견>


계획을 세우지 않은 채 일단 떠나본다. 그리고 그곳에서 즉석 뽑기를 하듯이, 그때그때 상황에 맞춰가면서 내 기분과 상태를 살펴가면서 하루를 채워가는 것이다. 흔히 생각하는 것과 같은 알찬 하루는 아닐지라도, 스스로에게 꼭 맞는 맞춤정장 같은 ‘맞춤형’ 하루는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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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것도 배울 수 없는 수박 겉핥기와 같은 여행도 있을 수 있고,
타자와 자신에 대해 깊게 성찰할 수 있는 여행도 가능하다.”
-강신주, <철학이 필요한 시간>


계획이 없다보니 별로 한 것도 없었다. 다른 여행에서보다 한 것은 지극히 적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느꼈던 것 그리고 기록해두고 싶었던 것들은 두 배(혹은 그 이상)로 많았다. 기대가 높으면 그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때 실망도 큰 법이다. 기대가 없기 때문에 더 큰 즐거움과 만족을 얻을 수도 있다. 기대가 없기 때문에 사소한 것들이 더 크게 다가오기도 한다. 아마 나에게 이 법칙이 완벽하게 통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번 여행으로 제주도에 큰 애정을 갖게 된 것은 물론, 여행의 또 다른 매력을 느낀 나는 또 다시 어디론가 계획 없이 가 볼 생각이다. 물론 언제가 될지 어디가 될지 이것 역시 계획은 없다. 계획 없이 나도 모르는 사이 비행기에 몸을 싣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계획 없이 떠나는 충동적 여행에 대해서 열심히 말하긴 했지만, 계획이 있는 여행이건 그렇지 않은 여행이건 변하지 않는 사실은 ‘여행’이라는 그 자체는 언제나 우리를 설레게 만드는 일이라는 것이다.


“여행은 시간을 들이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내게 있어 여행은 시간을 벌어오는 일이었다. (......)
일상에서는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는 게 시간이지만 여행을 떠나서의 시간은 순순히 내 말을 따라준다.
사실 여행을 떠나 있을 때 우리가 더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은 돈이 아니라 시간 쪽이질 않은가."
-이병률, <바람이 분다 당신이 좋다>


[박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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