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한국의 인디음악, 그 발전의 역사를 보자 [문화전반]

independent music = 독립음악
글 입력 2016.02.21 2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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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resdefault.jpg▲ https://i.ytimg.com/vi/9MgSgvlVT2M/maxresdefault.jpg
 

인디음악은 인디펜던트 음악(independent music)의 줄임말로, 즉 독립음악이다. 인디음악은 특정 장르의 개념이 아니라 상업적인 주류 음악시스템으로부터 벗어난 음악을 뜻한다. 상업적인 거대 자본과 유통시스템으로부터 독립되었다는 것이다. 인디음악은 독립적으로 형성된 뮤지션, 인디 레이블(음반사)에서 창작, 발매된 음악이다. 인디 밴드는 기존의 상업적인 대중 음악과는 달리 독립된 자본으로 스스로 직접 음반을 만들거나, 자신들의 음악적 자유를 보장해주는 작은 레이블(음반사)에서 음반을 제작하고 대중들에게 홍보한다. 이 때 음반사에서는 뮤지션에게 음악적 제약을 두지 않고 음반 발매와 공연에만 도움을 준다. 간단히 말해 주류 가요가 공장이라면 인디 음악은 가내 수공업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turntable-926521_960_720.jpg▲ https://pixabay.com/static/uploads/photo/2015/09/06/00/10/turntable-926521_960_720.jpg
 

우리가 즐겨 듣는 대부분의 가요들은 기획사에서 체계적인 과정을 통해 제작해서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경우가 많다. 보통 주류 음반 제작사는 음반 발표후 3개월 이내에 모든 비용을 환수하고 수익창출이 목표라는 비지니스를 경영한다. 이들은 주로 댄스나 발라드로, 수익이 안전한 상업적 음악을 한다. 그래서 수익기대치가 높은 콘텐츠만을 주로를 생산하기에 획일화, 상업화가 이루어저 장르가 한정적이게 되는 문제가 생긴다. 

인디 뮤지션들은 그런 제작 환경이 '자기가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음악'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들은 독립적인 자본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그래야 음악의 내용, 장르, 스타일이 획일화되지 않고 주류에서 벗어나 보다 다양한 장르의 음악들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디음악이라는 방법론을 택할 수밖에 없게 되었고 이것이 인디음악이 다양한 장르를 갖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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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대

인디 신(다양한 창작이 가능한 독자적, 독립적 문화가 이루어지고 활동되는 곳)의 시작은 1995년 첫 번째 라이브 클럽이었던 ‘드럭’이었다. 드럭은 처음에 라이브 클럽이 아닌 카페 같은 장소였는데 밴드가 연주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그러다가 해외 록밴드 너바나의 영향으로 국내에서도 록과 펑크 밴드들이 생겼고, 밴드 연주가 가능했던 드럭은 아마추어 밴드들도 연주가 가능한 라이브 클럽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 결과로 한국에서 인디 신이 탄생했고, 1995년 4월에 너바나의 리더인 커트 코베인의 1주기 추모 공연이 열릴 즈음 드럭 밴드라는 이름으로 정기 공연 체제가 갖추어졌다. 이 해부터 크라잉넛, 언니네 이발관, 델리 스파이스 등이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특히 크라잉넛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드럭은 점차 펑크 록 중심의 클럽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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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에는 최초의 국내 인디 음반이 발매되었다. 홍대 주차장 거리와 명동에서 열렸던 스트리트 펑크쇼에서는 밴드들의 연주가 있었고, 관중들의 폭발적인 열기가 따랐다. 이 호응을 얻어서 드럭에서는 국내 최초의 인디 음반인 「Our nation」을 만든다. 

드럭 개장 이후로 홍대, 신촌 일대에 많은 라이브 클럽이 생겨났고 이로써 본격적으로 한국 인디 음악 신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인디 신을 조명하는 기사와 동영상이 본격적으로 양산되었다. 언론의 관심은 초기에 퍼포먼스에 관심이 집중되었는데, 그 중 황신혜밴드의 <짬뽕>, 어어부 프로젝트의 <아름다운 ‘세상에’ 어느 가족 줄거리>라는 노래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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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에는 다양한 컴필레이션 앨범들의 발표가 있었다. 이때 자우림은「purple heart」로 데뷔했고, 델리 스파이스 역시 「Deli Spice」로 데뷔했다. 이 앨범은 단절된 1980년대 언더그라운드로부터 1990년대 인디 신을 일궈낸 대표 뮤지션이라는 평가를 받도록 만들었다. 한국적인 어법의 모던 록 스타일을 보여주는 델리 스파이스는 개성적인 기타 톤 감각과 작곡 실력으로 ‘델리 스파이스 류’라는 또 하나의 트랜드를 만들었다.

1998년은 한국 인디 음악 신의 진정한 시작의 해이다. 인디 음악 신은 비록 1996년에 매체로부터 주목을 받았지만 곧 하나의 트렌드로만 평가되고 만다. 게다가 1992년 서태지의 등장으로 한국의 언더그라운드 신은 무너지기 시작하면서 더 이상 제 기능을 못하고 있었다. 이 때 허클베리핀은 1집 「18일의 수요일」을 내며 한국 인디 신의 진정한 시작이자 한국 대중음악 신의 희망을 알린다. 기존 대중음악계에서 볼 수 없던 감수성과 가사를 담은 <첫 번째 곡>, <불을 지르는 아이>, <죽이다> 같은 노래들은 1990년대 대중음악 창작의 한 전환점을 이루는 곡이었고 한국 인디 음악이 나아갈 한 방향을 제시한 노래들이었다. 


* 2000년대

2000년은 많은 인디 밴드들의 노력이 결실을 본 해이다. 2000년에는 어느 해보다 좋은 앨범들이 많이 쏟아져 나온다. 그만큼 많은 시행착오를 겪은 뮤지션들의 시도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고 결실을 맺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해당하는 밴드들에는 노브레인, 코코어, 스위트피 등이 있는데, 이 중 노브레인은 노브레인의 성낼 노(怒)자 답게, 「청년폭도맹진가」라는 앨범으로 거칠고 강력한 노래들을 만들어낸다. 밴드의 브레인이었던 차승우는 군 입대 후 20대 초반의 젊은이가 겪어야 하는 참담한 심정과 분노를 가사에 담아 강렬하게, 때로는 서글프게 노래로 만들어냈고, 이성우는 자신만이 낼 수 있는 위악적인 목소리로 목청껏 소리 지르고 분노했다.


myccol1004_340904_1[574561].jpg▲ http://image.ohmynews.com/down/images/1/myccol1004_340904_1[574561].jpg
 

2003년에는 인디 신의 각 장르에서 좋은 앨범들이 경주하듯 발표되면서 갈수록 침체에 빠져가던 음반 시장과 인디 신에 활기를 불어넣었다. 그리고 2004년에 이르자 크게 네 흐름이 교차하며 흐르는데, 하나는 인디 신에서 성장하여 어느 새 관록이 붙은 뮤지션들이 수준 이상의 작품들을 다량으로 토해낸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한때의 인디 스타들이 노쇠하거나 영햡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 예로 허클베리핀과 3호선 버터플라이 등이 시대와 주류에 구애받지 않은 음악세계를 보여주었지만 언니네 이발관은 주춤거렸고, 나름대로 지명도가 있었던 피터팬 콤플렉스와 넬 등은 지탄을 받거나 인지도와 충성도를 맞바꾸고 만다. 많은 부분에서 ‘문화적 너그러움’과 ‘일관된 관점’에 대한 고민을 안긴 해였다고 할 수 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많은 신인 밴드들이 스스로 EP 음반을 제작해서 데뷔하고 있다. EP는 정규 음반과 싱글의 중간 형태인데, 상대적으로 저렴해진 녹음 비용으로 많은 밴드들이 스스로 음반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이 되었다. 수억원씩 제작비를 들여서 음반을 만들어도 장사가 잘 안 되는 현재의 불황에서, 인디 뮤지션들은 상대적으로 경제적으로 음악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저렴해진 제작비용 때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음악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고 두 번째로 눈에 띄는 점은 다양한 장르 실험 속에서도 록과 힙합이 강세를 이루고 있다는 것이다.
  

ART150724121813.jpg▲ http://www.insight.co.kr/upload/2015/07/24/ART150724121813.jpg


그리고 2006년부터 언더와 오버의 경계는 점차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0년도 훌쩍 넘은 지금, 인디 뮤지션이나 밴드들이 공중파 TV에 출연해도 그리 어색하지 않은 시절이 되었다. 현재 10cm나 제이래빗, 옥상달빛과 장미여관, 그리고 혁오밴드 등 이미 많은 인디출신 뮤지션들이 잘 알려져 있다. 인디 밴드의 음악이 가요 상위차트에 올라서는가 하면 인디밴드들을 TV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주류 가요계의 노래들보다 솔직 담백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는 재미있는 가사로 점점 대중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호응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출처 : 박준흠, 『한국 인디 음악 10년사 대한인디만세』, 세미콜론, 2006, 4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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