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해가 지지 않는 음악낙원, 런던1

글 입력 2016.06.07 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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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가 지지 않는 음악낙원, 런던1


글 -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내가 런던을 처음 찾은 것은 2009년 8월의 여름날이었다. 당시 ‘2009 BBC 프롬스 음악축제’를 구경하기 위해 파리 북역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런던으로 내달린 기억이 선명하다. 그 날은 정확히 8월 11일 화요일이었다. 그 날 저녁 런던 남서쪽 켄싱턴에 위치한 로열 앨버트홀에서 찰스 매커라스 경이 지휘하는 BBC 콘서트 오케스트라와 영국 국립 오페라 합창단이 길버트 앤 설리번의 오페레타 ‘페이션스’를 선보일 예정이었다. 나는 런던의 싸구려 여인숙에 여장을 풀고 곧바로 로열 앨버트홀로 향했다.



- 로열 앨버트홀과의 7년 만의 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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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앨버트홀 외관 / © Royal Albert Hall


온통 붉은색으로 채색된 로열 앨버트홀의 외관은 대단히 웅장했다. 객석수가 5500여석에 이른다 하니 그 정도 웅장함이야 이해 못할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로열 앨버트홀의 1층 프롬나드 에어리어 바로 뒷편의 객석에 착석하고 등장한 84세 매커라스 경의 지휘봉이 허공을 가르자 불만은 신음소리로 흘러나왔다. 어쿠스틱이 열악했던 것이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두 배 가까운 객석수를 품고 있는 매머드 극장이다 보니 그 정도 음향은 감안했어야 했지만 막상 체감한 로열 앨버트홀의 음향은 조악함 그 자체였다. 그래도 별세 11개월 전의 명장 찰스 매커라스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대면한 것은 수확이었다.

다음날과 다다음날 연거푸 나는 로열 앨버트홀에서 해리 크리스토퍼스 지휘 더 식스틴의 헨델 콘서트와 일란 볼코프 지휘 BBC 스코티쉬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진은숙 첼로 협주곡 세계초연을 목도했다. 이 중 전자는 DVD로도 출시되어 당시의 감흥을 생생하게 만끽할 수 있다. 영상으로 되씹어본 당일의 풍경은 웅장하고 화려한 사운드로 충만해 있지만 내가 이 날 목격한 연주회 분위기는 그리 훌륭한 편은 못 되었다. 거듭 말하지만 조악한 어쿠스틱에 그 원인이 있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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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열 앨버트홀 내부 / © Royal Albert Hall


그럼에도 로열 앨버트홀은 해가 지지 않는 대영제국, 빅토리아 여왕 집권기를 상징하는 런던의 랜드마크다. 빅토리아 여왕의 부군인 앨버트 공의 이름을 따서 명명된 로열 앨버트홀은 1867년 3월에 첫 삽을 뜬 이래 1871년 3월 29일 개관하기까지 4년의 공사기간을 거쳤다. 1877년 리하르트 바그너가 이 곳에서 지휘봉을 들기도 했고, 1895년부터는 헨리 우드의 주창으로 매년 여름 BBC 프롬스 음악축제가 열리는 장소로도 유명하다. 로열 앨버트홀 무대 정면 상부에 박혀 있는 웅장한 파이프오르간은 영국에서 리버풀 대성당 파이프오르간 다음 가는 규모를 자랑한다. 애초에는 9천명까지 수용했던 객석수를 새로운 안전기준법의 공표로 인해 지금의 5544석으로 줄인 내막도 기억해 두면 좋을 것이다.

지금도 로열 앨버트홀에서는 장르에 상관없이 연중 끊이지 않고 모종의 무대가 펼쳐진다. BBC 프롬스가 열리지 않는 봄,가을,겨울에 로열 앨버트홀을 방문한다 하더라도 당신은 분명 무언가를 목격할 수 있을 것이다. 지난 5월 14일 토요일 오후, 7년 만에 다시 찾은 로열 앨버트홀에서 나는 닉 데이비스가 지휘하는 로열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영화음악 갈라무대를 마주할 수 있었다. 스피커를 동원한 인위적 무대였으나 5500여석은 만석이었다. 막간휴식 때 원형복도를 배회하다 1938년 12세의 현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롤스로이스에서 내려 로열 앨버트홀로 들어서는 오래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무언지 모를 감흥이 일었다. 80년 전이나 지금이나 로열 앨버트홀은 시대의 변화와는 상관없이 제자리를 굳건히 지켜왔다는 일말의 감흥!



- 바비칸홀에서 만끽한 런던 심포니의 오리지낼러티


이로부터 이틀 전인 5월 12일 목요일 저녁 나는 바비칸센터 내의 바비칸홀에서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의 콘서트를 관람했다. 지휘를 맡은 이는 이 악단의 수석객원지휘자로 있는 명장 마이클 틸슨 토머스! 그는 아바도 후임으로 1987년부터 1995년까지 동악단의 수석지휘자로 재임한 것으로 유명하다. 프로그램은 레이프 오베 안스네스 협연의 슈만 피아노 협주곡과 런던 심포니 코러스가 가세한 베토벤 교향곡 9번 ‘합창’!
인상적이었던 것은 ‘합창’ 4악장을 지배한 런던 심포니 코러스 단원들의 대단히 자발적이고도 공격적인 가창풍경과 틸슨 토머스의 유연한 지휘매무새였다. 인상적이지 못했던 것은 세계 최고악단 중 하나인 런던 심포니에 걸맞지 않은 바비칸홀의 노후한 2층짜리 객석!

내년 9월 런던 심포니 역사상 최초의 음악감독이라는 직함으로 동악단에 입성하는 사이먼 래틀의 언급처럼 런던 심포니는 새로운 콘서트홀을 신축함이 마땅해 보였다. 반갑게도 런던시는 이 같은 래틀의 요구를 받아들여 새로운 연주회장 건립을 확정했다는 뉴스가 최근 들려왔다.


바비칸홀에서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 Igor Emmerich.jpg
- 바비칸홀에서의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 © Igor Emmerich


막간휴식 때 둘러본 바비칸홀 무대는 세월의 마모를 못 이겨 여기저기 뜯겨나간 자국이 선명했고, 고작 2층까지 올라가 있는 초라한 객석풍경은 런던 심포니의 위상에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이에는 아랑곳 없이 자유로운 복장에다 자유로운 매무새로 연주회를 관람하던 런더너들의 천태만상은 그 나름대로 유쾌하게 느껴졌다. 막간에 찾아간 화장실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전기면도기로 목덜미를 밀던 어느 런더너의 풍경은 이 도시에서만 목격할 수 있는 진풍경이기도 했다.

1982년에 개관한 바비칸센터는 1943석의 바비칸홀과 1156석의 바비칸극장, 200석의 소극장인 더 피트, 바비칸영화관, 갤러리 등을 품고 있는 아트센터다. 이 중 바비칸홀은 런던 심포니와 BBC 심포니의 보금자리로 기능하는 런던의 대표 연주회장이다. 회색빛 콘크리트로 도배된 장중하고 광활한 느낌의 바비칸센터 외관과 시원하게 뻗은 바비칸센터 로비와는 달리 바비칸홀의 내부는 다소 답답한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새로운 런던 심포니의 연주회장이 지어지면 이 같은 넌센스도 해소될 것이다. 그렇게 됨과 동시에 바비칸홀의 쓰임새도 전면개편될 것은 불 보듯 자명하다.



-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하우스만의 품격


그리고 5월 14일 저녁과 15일 오후 이틀 연속으로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오페라 두 편을 내리 관람했다. 도니체티의 ‘람메르무어의 루치아’와 바그너 ‘탄호이저’가 그것. 각각의 타이틀롤로 폴란드의 대형 소프라노 알렉산드라 쿠르차크와 독일의 헬덴 테너 페터 자이페르트가 출연했다. 지휘는 명장 다니엘 오렌과 하르트무트 한헨! 이 두 무대가 시위한 로열 오페라하우스의 무대폭은 한때 나의 아지트였던 파리 오페라 바스티유의 그것에 훨씬 못 미치는 협소한 것이어서 실망스러웠다. 어쿠스틱 또한 호방하지도 않고 시원시원하지도 않은 정갈하고 소박한 느낌 일변도여서 기대치를 밑돌았다. 일부러 데코레이션을 가하지 않은 듯한 극장 곳곳의 단정한 매무새 또한 영국인들만의 금욕주의를 반영하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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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 정면 / © Royal Opera House


상아빛 감도는 로열 오페라하우스에는 그러나 경묘하고도 은근한 매력이 살아 숨쉬고 있었다. 우선 4층까지 올라가 있는 2268석의 객석 구석구석을 잡티 하나 없는 청결함이 지배하고 있어 프랑스와 이탈리아의 온갖 장식으로 치장된 객석 풍경과는 확연히 차별되는 듯 느껴졌다. 1858년에 개관한 이후 파사드와 푸아이예를 제외한 극장의 다른 모든 부위를 1990년대에 대대적으로 재건축했음에도 세월의 추이와는 상관없이 초심을 유지하고자 하는 이들의 심중이 읽히는 것도 같았다. 즉, 현재의 로열 오페라하우스는 여전히 1858년 개관 당시의 로열 오페라하우스 그대로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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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런던 로열 오페라하우스 무대와 객석 / © Royal Opera House


2002년부터 이 고명한 오페라하우스의 음악감독으로 활약해온 인물은 안토니오 파파노다. 그는 전임자였던 베르나르트 하이팅크 시대 말기의 침체기로부터 극장을 재건시킨 것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다. 아직 57세에 불과한 파파노와 로열 오페라의 밀월관계가 수십 년은 더 지속될 것으로 관측하는 런더너들이 적지 않다. 그렇게만 된다면 파파노는 과거 이 극장의 수장으로 있었던 게오르크 솔티와 콜린 데이비스, 베르나르트 하이팅크와는 비교할 수 없는 골든 에러를 견인한 인물로 남게 될 것이다. 상황이 어떻게 흘러가든 나는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하우스가 전례없는 영화를 구축하기를 소망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베르디 오페라 ‘돈 카를로’의 최고 명반은 모두 로열 오페라의 것이다. 1970년 카를로 마리아 줄리니가 지휘한 EMI반과 1997년 베르나르트 하이팅크가 지휘한 Philips반 모두 로열 오페라가 일군 빛나는 성취인 것이다. 음반 속에서 수도 없이 확인했던 코벤트 가든 로열 오페라하우스의 전성기를 미래에도 꿈꾸어 본다. 10년, 20년 후에 다시 찾은 로열 오페라하우스에서 노장이 되어버린 파파노가 그 때에도 빛나는 명연을 들려주기를 고대한다면 치기 어린 나만의 욕심에 불과할는지.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고전음악칼럼니스트.

월간 클래식음악잡지 <코다>,<안단테>,<프리뷰+>,<아이무지카>,<월간 음악세계> 및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계간지 <아트인천>,
무크지 <아르스비테> 등에 기고했다.

파리에 5년 남짓 유학하면서 클래식/오페라 거장들의 무대를 수백편 관람한 고전음악 마니아다.

저서로는 <거장들의 유럽 클래식 무대>(2013/투티)가 있다.
현재 공공기관과 음악관련기관, 백화점 등지에서 클래식/오페라 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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