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에서 사용된 영화장치 ‘환상’의 의미 분석 [영화]

글 입력 2016.06.19 15:1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movie_image.jpg


영화 <오아시스(Oasis, 2002)> 이창동 감독


종두와 공주의 사랑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가슴 아픈 사랑이다. <오아시스>는 이미 극찬을 받은 명작이고 영화를 공부하는 이들에겐 공부할 점이 많은 영화로, 시청자들에게는 생각해볼 점이 많은 영화로서 ‘영화’ 이상의 역할을 오래 전부터 해오고 있다. 이야기의 구성력이나 배우들의 연기력, 카메라 기법의 활용, 인상 깊었던 부분과 결말에 대한 생각까지 본 영화를 본 후 기록할 것이 무수히 많지만 단순히 감상문에 지나지 않는 글이 되고 싶지 않아, 본 영화의 작의를 극대화 시킨 장치 중 하나인 ‘환상’을 꼽아 나름대로 분석, 해석해보았다.
 
개인적으로 극에서 환상이 이루어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 나이지만 <오아시스>에서는 환상성이 필수라고 느껴졌을 정도로 적절하게 사용됐다고 생각한다. 처음 영화를 관람할 때는 미처 놓쳤지만 사실 공주에게 활용된 환상은 극의 도입부터 나온다.
극의 가장 도입부분에서 종두가 피해자 가족을 찾아가는 장면이 나온다.(CD1 18분 51초) 종두가 공주에게 가까워질수록 공주의 집에 흰 비둘기 한 마리가 공주 위를 날아다니는 장면이, 공주의 오빠에게 쫓겨난 종두가 다시 공주를 찾아갈 때는 흰 나비들이 공주의 주위를 맴도는 장면이 나온다. 비둘기와 흰 나비들은 종두와 공주가 만나면 공주가 가지고 있던 거울에 반사된 빛들로 변한다. 이 두 씬에서 공주의 목소리로 어떠한 멜로디가 흘러나오는데, 정확하게 말을 구사하지 못하고 짐승소리를 내는 현실의 공주는 낼 수 없는 목소리이다. 즉 장애를 가지지 않은 공주의 목소리가 나온 것과 공주가 가진 거울에서 ‘반사’되어 생긴 투영체인 것을 고려해보면 해당 씬들은 종두와의 운명적 만남과 공주가 가진 온전한 진심을 담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공주를 찾아온 종두임과 동시에 자유롭게 날고 싶은 공주의 바람인 것이다. 몽환적인 분위기도 효과적으로 이끌어내었다.


그림1.jpg
 

앞의 씬들을 제외하고도 장애를 갖지 않은 환상 속의 공주가 4번 정도 나오는데 첫 번째, 두 번째의 환상 속 공주는 종두와의 사랑이 깊어질수록 ‘너무나도’ 몸이 자유로워졌으면 좋겠는 공주의 마음이 절실하게 담겼다. 공주는 종두와 함께 가는 지하철 안에서 맞은 편 평범한 커플 한 쌍을 본다. 나란히 앉아 이야기하다가 여자는 남자의 머리를 빈 생수병으로 톡 치는 장난을 한다. 그 장면을 앞에서 보면서 공주는 자신도 휠체어에서 벌떡 일어나 종두에게 평범한 장난을 치는 장면을 상상한다. 상상만으로도 공주를 행복하게 만든다.(CD2 4분 18초)
공주는 종두와 사소한 일로 다투는 장면도 상상해본다. 종두의 전화를 방해하다가 살짝 다투고, 공주가 서운함을 비쳐 다시 화해한다. 지극히 평범한 일인데도 공주는 부럽다. 이러한 장면들은 공주가 몸이 불편하지 않았다면, 하고 가정하게 한다. 가정할수록 여느 여자들과 다르지 않은, 연인과의 행복한 상상을 하고, 감정적이고, 때론 서운함을 표하고 싶은 공주의 모습이 안타까울 뿐이다.(CD2 9분 46초)


그림2.jpg


세 번째 환상은 무척이나 의미 있다. 종두와 공주가 서로 마주하는 환상이기 때문이다. 종두는 공주에게 공주 너와, 방에 붙어있는 오아시스 그림 속 인물들과 함께 춤을 추었다고 지난 밤 꿈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그 꿈은 공주의 환상으로 이어진다. 둘은 그 안에서 만났고 춤을 췄고 키스를 했다. 혼자만 상상해오던 공주의 환상에 종두가 개입하였다. 공주를 시작으로만 이어지던 환상이 종두와 연결되었다는 점에서 나는 세 번째 환상이 아주 인상 깊었다. 하지만 이 행복도 잠시 네 번째 환상은 그들의 사랑의 방향을 비극으로 바꿔놓는다.(CD2 15분 13초)


그림3.jpg

 
종두에게 업혔다가 털썩 내린 공주는 종두를 휠체어에 태우고 그의 머리를 쓰다듬고 팔뚝을 만지며 안치환의 ‘내가 만일’이라는 노래를 부른다. 이 역시 가정이 담긴 노래인 것에서 다시한번 환상이 가져다주는 가정(if)의 의미와 효과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사랑의 노래를 종두에게 속삭이지만 결국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더 확고하게 말하는 것과 같다. 많은 글들과 평론을 읽어보니 행복한 둘의 모습이나 관계를 나누는 자극적인 장면들보다 해당 장면에 더 많은 감정을 느꼈다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무엇보다 멜로디가 슬프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환상성의 비중이 크지 않지만, 꽤 충격적이고 적나라하게 그들의 감정을 드러냈다는 점에서 손꼽을 수 있는 영화 속 장치인 것 같다.(CD2 32분 10초)


그림5.jpg


환상이 참 매력적으로 쓰였다. 감명 깊은 이야기들을 넘어서서 우리가 직접 상상하고 지어내게 만드는 장치로서 <오아시스>속 환상은 성공하였다. 혼자만의 행복한 상상으로 시작해 사랑하는 이, 종두를 마주하고, 또 그를 다시 정리하는 이 과정이 잘 활용됐기 때문에 우리가 그들에게서 느낄 수 있는 감정을 극대화시키지 않았나 생각된다. 뛰어난 인물 설정, 주변인물을 활용한 스토리 전개, 섬세한 대사와 몸짓의 표현, 마음이 아픈 결말까지 어느 것 하나 설명하고 싶지 않은 게 없지만 그 중에서도 어쩌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 토대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기에 이에 대해서 소개/분석하고 싶었다. 결코 부담스럽지 않은 다음 영화장치는 내가 환상에 대한 선입견을 깨는 데 도와주었다.
무척 재미있었고 가슴이 먹먹했다. 스토리부터 음악, 대사, 배우들의 연기력까지 어느 것 하나 나무랄 데 없는 영화였던 것 같다. 다루고 싶은 영화 속 장치들이 많지만 그러지 못해 아쉽다. 가히 명작이라 말할 수 있을 만큼 느낄 점이 많은 영화였다.


[김지선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