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낯선런던 Oneday

글 입력 2016.07.25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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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선 런던
 
 
 
그림 글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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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One day.
 
그날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런던 가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4시에 집을 나썼다. 엄마가 만든 김밥을 마지막으로 먹으면서 들어갔던 공항 게이트 앞, 한 손은 가족을 향해 걱정 말라고 손을 흔들면서 비행기 티켓을 든 다른 한 손은 무척이나 떨고 있었던 그 순간이 떠올랐다. 애써 괜찮은 척은 했지만 당장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앞서 있었다. 내 스스로 내린 결정이었기 때문에 내 두려움을 들키기가 부끄러웠다. 마음속으로 연금술사의 한 구절을 주문처럼 외우면서 13시간에 걸쳐 런던 히스로 공항에 도착했다. “결정이란 단지 시작에 불과하다. 내가 결정한 일이긴 하지만 앞으로의 여정은 아무도 알 수 없다.” 먼저 예상하여 먼저 두려워하지 말자. 라고 하면서 수백 번 외치면서 런던에 예약해둔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서울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에게 무사히 도착했다고 문자를 하고 나서 방을 둘러보니 짐들과 그리고 내가 덩그러니 있었다. 몇 시간이 지나고 가족들에게 답이 없어 시간을 보니 서울은 한 밤중이었고 런던에 있는 나는 한 낮이었다. 거리에서부터 오는 혼자가 되었다, 라는 생각 그리고 외로움이 조금씩 밀려왔다. 하루사이에 내가 한국에서 영국으로 왔구나. 실감했다. 그러고 나서 오늘 단 하루에 얼마나 많은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경우의 수를 따져 보았다. 서울의 반대편 영국 런던에서 본 하루들은 신비했다. 큰언니의 하루, 작은언니의 하루, 동생의 하루 고향에 살아가는 엄마의 하루가 나와 다 달리 시작하고 다 달리 끝나기 때문이었다. 낮과 밤이 다르고 운전하는 방향도 다르고 음식도 언어도 다른 이곳에 온, 세상이라는 곳에 처음 나온 내가, 책에서만 알던 세계는 넓다. 라는 것을 몸소 느낀 하루였고 내 생애 긴 하루를 그렇게 맞이했다.

어느덧 오늘이 런던에서 생활을 시작한지 일 년이 되는 날이다. 익숙해질 만한 런던 생활은 항상 새롭고 치솟았던 파운드 환율에서부터 바닥을 보이는 파운드 환율처럼 파란만장했던 일 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 누구보다 긴 런던의 겨울을 보냈다. 한 달을 아파서 집 밖으로 못나왔고 집주인에게 내쫓겨서 불안한 마음을 붙잡으면서 방을 알아보러 다녔고 좁디좁은 친구 방에 바닥신세를 져보기도 했고 월급에 삼분의 일을 세금으로 가지가는 영국정부에 화가 나기도 했다. 하지만 우중충한 날씨에 갑자기 난 해처럼 문득 문득 찾아오는 행복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수 없이 떨어진 면접에서 드디어 공연장에서 일자리를 구했을 때, 좋아하는 공연을 보러갈 때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영국에서 사귄 친구들을 만났을 때 혼자 베를린으로 여행을 떠났을 때 성당에 들려 기도 하고 나왔을 때 순간에 위로를 받았고 행복했다. 그때야 행복은 순간 찾아오는 구나 알았다. 런던생활은 힘들지만 낯선 것들에서 오는 설렘은 언제나 나를 기쁘게 했다. 그렇게 하루가 모여서 지금까지 왔다. 런던의 하루는 밤하늘의 별처럼 많은 감정과 사람들이 스쳐지나간다. 사과 한쪽에도 기뻤다가 문득 가족이 보고 싶어서 슬프고 길거리에 마주치는 아기 때문에 웃었다가 여기저기에서 해결해야할 문제들이 생길 때면 좌절하여 울고 다시 기운을 차린다.

아침에 일어나 제일먼저 하는 일은 오늘 하루에 내가 해결해야 할 것 들의 리스트를 적는 일이다. 여기서는 철저히 혼자가 되어서 모든 일에 부딪혀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오늘 하루가 끝나지 않음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었기 만들어진 습관이다. 나에게서 여기의 나날들은 배움의 연속이다. 그동안 일을 돌아보면 여기가 아니었으면 몰랐을 삶의 지혜들과 스스로 감당해야할 슬픔과 자유와 기쁨이 존재한다는 것을 런던하늘에서 배웠다. 지금도 나는 배워가고 있다. 감당해야할 슬픔과 자유와 기쁨을. 그리고 단 하루에 일어날 수 있는 신비를 온 몸으로 온 마음으로 받아들이면서 런던의 하루를 보내고 있다. 
 
 
[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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