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펼쳐진 책들, 펼쳐진 꿈들 < 펼쳐진 것들 >

글 입력 2016.08.11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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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선런던]
 

 
글 그림 전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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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펼쳐진 책들, 펼쳐진 꿈들 <펼쳐진 것들>
 
 
나의 책상을 보자면 항상 펼쳐진 책들이 한 가득이다. 아쉬워서 못 덮고 놓은 책들, 보고 있자면 미련 많은 나의 성격이 한 눈에 보인다. 자기 전까지 붙잡고 있어야 직성이 풀리고 아침에 일어나 펼쳐진 책들을 보고 안도의 한숨을 쉬는 그런 나의 성격, 한편으로는 해야 할 일을, 정리해 할 사람을 놓지 못하고 내가 덮지 않으면 마치 끝나지 않는 사랑인 마냥 그렇게 덮지 못한 책들이 항상 책상에 있다.
 
나에게 영국에서 삶은 항상 펼쳐진 책과 같았다. 하루가 조급했고 하루가 아쉬웠다. 공연장에서 일해보고 싶은 마음으로 온 영국, 펼쳐진 세상 앞에 어디서부터 읽어 내려가야 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아 무작정 이력서를 들고 웨스트엔드의 극장을 돌아다녔다. 어떤 이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이력서를 검토해 보겠다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부분 그냥 눈짓으로 거기 두고 가라는 식이었다. 어찌나 영어가 입 밖으로 나오는데 시간이 그렇게 많이 걸리는지. 그 한마디가 버거운 적이 많았다. 마음이 여러 번 무너져 내렸었다. 이렇게 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스스로 목차를 만들어 갔다. 나에게는 절실하게 계획이 필요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하자. 무너지지 말자. 그래서 공연장에서 돈을 받지 않는 일부터 찾아 다녔다. 객석안내원을 하거나 공연 쉬는 시간에 아이스크림을 파는 일 등을 할 수 있었다. 적어도 공연장에서 일하는 사람들하고 이야기 하면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발을 띄었다.
새로운 환경은 언제나 민망함 긴장감을 안겨준다. 영국에 있는 내내 그런 감정은 항상 나를 따라다닌다. 전적으로 다른 사람들과 상황들을 마주서야 하기 때문이다. 이런 감정을 무릎 쓰고 집과 어학원에서 가장 가까운 곳 Print room theatre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일하면서 알아낸 것은 공연장에는 영국인들밖에 없다는 것과 그들에게도 공연장에서 일자리를 구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는 사실이었다. 그래도 내 펼쳐진 책에 하나의 기회는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에 계속해서 이력서를 보냈고 면접을 봤고 많이 떨어졌다.
 
  여기가 끝인가 하는 순간에 Gate theatre에서 연락이 왔다. Gate theatre는 Notting hill에 위치한 소극장이고 영국에서 새로운 실험적인 극을 많이 올리는 곳이다. 그렇게 시작된 극장일, 돈을 받으면서 일 할 수 있음에 얼마나 기뻤는지 모른다. 하우스 멤버가 세 명밖에 없어 전적으로 박스오피스를 맡아서 일하지만 매니저를 도와 공연장 진행을 도울 때도 있다. 매회 다른 공연이 올라가는 공간속에서 많은 사람을 마주하고 이곳에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본다. 매번 저 작은 문을 통해 들어갔다 나오면 수많은 생각과 감정, 공기의 향기까지도 끌고 집으로 들어온다. 내가 이방인이라는 사실에 상처를 받았지만 일하면서 공연장에서 느꼈던, 자세히 말하면 이방인이어서 맡을 수밖에 없었던 향기를 맡았기 때문에 위로가 되었다. 공연이 끝나고 난 뒤 객석에서 나는 와인 향기가 너무 좋았고 연극을 하는 사람들의 진지함이 좋았다.
 
 그리고나서 언제나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펼쳐진 책과 매번 마주한다. 아직은 덮지 않은 책들이므로 다시금 내가 어디쯤 있는지 잘 가고 있는지, 내 미련 때문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에 잠긴다. 최근 펼쳐진 책 중에 열 번도 넘게 읽고도 다시 한 번 읽은 영화 대본 책을 덮었다. 대사 하나하나를 곱씹어서 마음에 새기니 미련 없이 책장이 덮어졌다. 한국에 있는 친구들과 연락을 할 때면 한국에 언제 돌아올 것인지 궁금해 한다. 항상 잘 모르겠다. 라고만 말했지만 이제 서야 내가 돌아갈 날짜를 알 것 같다. 보고 또 보고 내 펼쳐진 꿈들을 마음에 새길 때쯤 미련 없이 책장이 덮일 때 그때 한국에 도착할 것 같다. 나는 또 다른 책을 들고 공항에 도착해 마중 나와 있는 가족들을 생각하면서 오늘도 열심히 미련 없이 책을 읽어 내려가며 잠이 들고 아침에 다시 읽어 내려간다. 
 
 
[전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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