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단.소] 문화예술공간으로 또 하나의 문화, 그리고 예술을 가꾸다_보안여관

글 입력 2016.10.16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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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복궁 서쪽으로 난 한적한 길을 따라 걷다보면 마주치게 되는 보안여관. 요즘 서울에서 찾아보기 힘든 여관이라는 두 글자와 꽤 오래되 보이는 벽돌이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80여 년 전부터 대략 60년 간 실제 여관을 운영했으나 현재 문화예술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는 이곳은 공간의 재생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 장소라고 할 수 있는데요, 바로 보안여관만이 지니고 있는 특성과 스토리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가치를 추구하는 독특한 문화예술 공간으로 자리 잡았기 때문입니다. 

“될 수 있는 대로 우리는 햇볕이 바로 쪼이는 위치에 생생하고 젊은 한 개의 ‘시인부락’을 건설하기로 한다. 뒤에로 까마득한 과거에서 앞으로 먼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곳 ― 이미 병들은 벗들에게는 좋은 요양소, 오히려 건강한 벗들에게는 명일의 출발을 위한 충분한 자양이 될 수 있도록, 여기 이 미증유(未曾有)의 아름다운 공사가 하루 바삐 완성될 날을 기다리면서 우리 열네 사람은 준비 공작에 착수하였다.

벌써 여기다가 꼭 무슨 빛깔있는 기치(旗幟)를 달아야만 멋인가? ······ 우리는 우리 부락에 되도록이면 여러 가지의 과실과 꽃과 이를 즐기는 여러 가지의 식구들이 모여서 살기를 희망한다.” 

 이 구절은 문학동인지 ‘시인부락’ 제1집에 실린 서정주의 편집후기인데요, 1936년 서정주, 김동리, 오장환 시인 등이 모여 한국근대문학사에 한 획을 그었던 ‘시인부락’을 창간했을 때 서정주 시인이 하숙했던 곳이 바로 보안여관이라고 합니다. 뿐만 아니라 통의동은 진경산수화를 개척한 겸재 정선이 벗들과 시간을 보내고 추사 김정희가 무명의 화가 허련을 가르쳤으며 시인 이상이 오감도에서 묘사한 막다른 골목이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2004년까지 여관으로 운영되던 보안여관은 한창 재개발이 이루어지던 시기에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으나 (주)메타로그 아트서비스가 인수하면서 현재 artspace Boan이라는 이름으로 명맥을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이렇듯 갈 곳 없는 사람들이 머물던 보안여관이 오늘날 ‘문화 투숙객’을 위한 문화숙박업소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는 것은 보안여관이 그것이 거쳐 온 서사적 맥락을 바탕으로 문화예술공간으로서 꾸준히 자신만의 가치를 구축해왔기에 가능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화예술의 보금자리가 되다. 


 문화예술공간으로서 보안여관은 전시, 시장, 축제, 공연 등 다양한 문화예술 콘텐츠에 기꺼이 보금자리가 되어주고 있습니다.


▪ 『揮景: 휘경, 사라지는 풍경』(2009)
 서울 동대문구 휘경동에 거주하거나 작업실을 갖고 있는 강지호 외 6명의 작가들이 도시 재개발에 의해 철거되는 것들을 목격하고 이에 대한 그로테스크하고 판타스틱한 정서를 바탕으로 2009년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열었던 전시입니다. 주민들이 그려준 집, 참여 주민들의 인터뷰, 작가들 자체 인터뷰 영상 등 다양한 콘텐츠가 포함되었으며 과거의 것들이 사라져만 가는 세상에서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 가는 보안여관에서의 『揮景: 휘경, 사라지는 풍경』展은 한 세대만큼도 수명을 이어가지 못하는 건물과 도시의 기억에 대한 장송곡이며 시대의 모순에 대한 의심 가득한 질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jpg▲ -김주리, 휘경동124번지
 
3.jpg▲ -강지호, 안개의자


▪ 『돌아버리겠네(Going Nuts!)』(2010)
 “Going nuts!_돌아버리겠네!”라는 적나라한 제목을 통해 포장에 익숙한 우리에게 솔직함에서 오는 쾌감을 전해주는 박소영의 개인전 역시 보안여관의 공간적 특성과 결합해 깊이 있는 메시지를 전달했던 전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하얀 수석’ 시리즈는 실제 사용되었으나 지금은 버려진 것들에 대한 일종의 재발견 행위라고 할 수 있는데요, 개인의 익명성이 보장되지만 동시대를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머물며 시간을 소요하는 곳이라는 여관의 속성을 바탕으로 작가는 개인과 동시대인의 교집합이 되는 시대적 고민과 사유들을 작품에 담아내고 있습니다. 더불어 여관이라는 개별공간 속에서 이러한 사유는 버려진 것들에 대한 재발견으로 이어진다고 전시는 말합니다.


4.jpg▲ -박소영, 하얀수석 시리즈


이처럼 과거의 여관, 그리고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공간이라는 보안여관의 특성은 다양한 문화예술로 하여금 이곳에 ‘투숙하게’ 만드는 요인이 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의 기억, 맥락 혹은 뜻을 함께하는 문화예술에 방 한 칸을 내어주는 일을 통해 보안여관은 자신만의 이미지를 하나하나 쌓아올림으로써 유일무이한 독특한 문화예술공간으로 거듭났습니다.



문화예술의 치열한 발상지에서 다시 한 번 문화예술을 꿈꾸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보안여관, 그리고 보안여관이 위치한 통의동은 서정주, 추사 김정희를 비롯한 여러 문화예술인들의 치열함, 열정이 녹아있는 장소입니다. 보안여관은 이러한 스토리, 정체성을 버리고 완전한 새로움을 모색하기 보다는 이 공간을 다시 한 번 문화예술을 향한 뜨거움으로 채우고자 합니다. 
 

▪ 보안두럭BoanDoLu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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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글로 ‘놀이나 노름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의 무리’
영어로 ‘행운을 예술가 스스로 찾아나가다’


 이렇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닌 보안두럭은 청년예술가인큐베이팅 프로그램으로 대안적 삶을 모색하는 청년예술가들을 대상으로 하여 관계 지향적 예술, 커뮤니티아트의 발굴을 위한 이론적, 기술적 내공을 연마하고 공유하고자 하는 프로젝트입니다. 2013년에 시작해 올해 3회째에 접어든 보안두럭은 소수의 청년예술가들을 모아 약 10회에 걸쳐 지역 예술 현장 방문, 기업과 협업, 미번역 아티클, 인포메틱스 등 다양한 활동들을 진행해왔습니다. 이를 통해 보안여관은 예술과 비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사회 내부의 요구를 비판적으로 반영하고 사회적 실천을 강조하는 예술인 커뮤니티 아트의 발전을 지향합니다.

 
6.jpg▲ -보안두럭03 활동사진

 
▪ 보안토크_방바닥토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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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술(가)을 직업으로 하고 예술이 삶의 기반인 이들은 어떻게 살아가야하는가. 우리들의 지대한 관심이면서도 공적인 논의에서 자주 빠져 있곤 하는 이 질문을 다루기 위해 보안여관은 예술(가)인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방바닥 토크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정기적으로 진행되고 있진 않지만 이를 통해 예술가로서의 삶뿐만 아니라 문화예술 담론에 관한 대화의 장을 구축하고자 했습니다. 


 예술과 사회, 그 둘의 관계, 그리고 문화예술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으며 우리가 원하는 세상으로 나아가는데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관한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답변을 찾아가는 통의동 보안여관. 보안두럭과 보안토크 외에도 그것이 추구하는 가치에 다가가기 위한 여러 프로그램 및 프로젝트를 실행에 옮김으로써 보안여관은 과거 문화예술인들의 치열함을 계승하면서 문화예술을 향한 열정으로 뜨겁게 달궈지고 있습니다. 
 




‘부락(部落)’ 시골에서 여러 민가가 모여 이룬 마을이라는 뜻입니다. 병든 벗들에게는 좋은 요양소, 건강한 벗들에게는 명일의 출발을 위한 충분한 자양분, 그리고 되도록이면 여러 가지의 과실과 꽃과 이를 즐기는 여러 가지의 식구들이 모여서 살기를 희망한다는 1930년을 살았던 서정주 시인의 편집후기처럼 오늘날 보안여관은 문화예술을 위한 또 하나의 부락이자 문화예술을 향한 치열한 발상지가 되어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앞으로 보안여관이 어떠한 문화 투숙객들과 함께 어떠한 기억들을 쌓아갈지, 어떠한 문화예술을 지향할지, 그리고 문화예술공간으로서 어떻게 서촌을 빛낼지 그 미래가 기대됩니다. 



반채은.jpg



**참고문헌 및 이미지 출처
보안여관 홈페이지




[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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