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오페라의 메가 차이나, 베이징

글 입력 2016.12.04 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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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의 메가 차이나, 베이징


글 -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클래식/오페라/발레 같은 순수고전음악예술과 중국은 별 관계가 없는 나라였다. 그랬던 것이 10여 년 전부터 상황은 180도 바뀌었다. 2001년 7월 모스크바 IOC총회에서 베이징이 2008년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확정됨과 동시에 중국정부는 베이징 국가대극원 건립을 신속히 공표했다. 그 결과, 프랑스의 저명 건축가 폴 앙드뢰(1938- )의 공룡알을 연상시키는 매머드 설계안이 낙점되었다. 당초 26억 위안에서 대폭 오른 32억 위안, 우리 돈으로 5500억원을 투입해 지은 베이징 국가대극원(National Centre for the Performing Arts, 약칭 NCPA)은 베이징의 심장인 톈안먼 광장 서쪽 끝에 위치한 초현대식 아트센터다. 지근거리에 인민대회당과 자금성 같은 고풍스런 유적이 자리해 있다. 이런 연유로 초현대식 자이언트 건물인 폴 앙드뢰의 설계안을 반대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중국정부는 베이징 올림픽까지 시한이 촉박했던 데다, 아방가르디스트로서의 앙드뢰의 명성을 신뢰한 초심을 잃지 않고 대사업을 밀어 부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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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국가대극원 외관
/ © National Centre for the Performing Arts, Beijing


2001년 12월 13일 첫 삽을 뜬 이래 2007년 9월 완공되기까지 근 6년의 공사기간이 소요된 국가대극원은 총 세 개의 극장으로 나뉘어 있다. 2416석의 오페라하우스와 2017석의 콘서트홀, 1040석의 드라마센터가 그것이다. 이후 469석 규모의 다목적 극장과 제 5의 공간이라는 이름의 열린 무대가 추가되면서 현재의 구색을 갖췄다.



- 신흥 오페라강국의 전초기지, 베이징 국가대극원 오페라하우스

지난 5월 21일 이른 오후, 내가 탄 런던발 에어 차이나가 베이징국제공항에 착륙했다. 난생 처음 찾은 베이징에서 나는 공항 인근의 호텔에 짐을 풀고 바로 톈안먼 광장으로 향했다. 이유는 단 하나, 그 날 저녁 7시에 국가대극원 오페라하우스에서 공연될 드보르자크의 오페라 ‘루살카’를 감상하기 위함이었다. 공연 시작 2시간 전에 톈안먼 광장에 도착한 나는 광대무변한 광장의 스케일에 놀랐고, 마오쩌둥의 대형초상화가 내걸린 인민대회당의 요란굉장한 규모에 놀랐다. 그러나 베이징 시민들의 풍경은 이와는 대조적으로 꾀죄죄한 행색 일색이었다.

인민대회당 서쪽 한 켠에 위치해 있는 국가대극원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지만 문제는 입구를 찾는 일이었다. 초행길이다 보니 국가대극원을 거대하게 둘러싸고 있는 3만 5천 평방미터 넓이의 인공호수를 한 바퀴 휘돌고 나서야 공안경찰에게 물어 입구에 당도할 수 있었다. 막상 입구를 통해 들어간 국가대극원의 1층 로비는 열주들이 길게 늘어서 있는 것이 흡사 대궐에 입회하는 기분이었다. 오페라하우스 로비에 도착한 나는 매표소에 물어본 결과 그 날 저녁 ‘루살카’ 공연이 매진이라는 대답에 망연자실했다. 그러나 암표상이 몇 명 보였다. 나는 망설일 것 없이 그 중 한 명에게 다가가 흥정을 시작했다. 380위안짜리 표를 760위안에 매도하려는 한 중국인 암표상에게 나는 눈 딱 감고 600위안에 흥정을 완료했다. 2층 앞자리의 상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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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국가대극원 오페라하우스
/ © National Centre for the Performing Arts, Beijing


특기할 것은 2416석의 국가대극원 오페라하우스 객석을 가득 메운 중국어린이들의 풍경이었다. 그 나이 때에 보통 뮤지컬이나 아이돌스타 공연을 보러 가는 우리의 현실과 대비되며 우러러볼 수 밖에 없는 중국어린이들의 앞서가는 선진적 문화체험 풍경이었다. 우리도 더 늦기 전에 어린이들의 순수고전음악예술 체험을 확산시켜야 한다는 생각이다. 그래야 대국 중국은 물론이고, 아시아의 유럽을 표방하는 일본에도 뒤지지 않는 선진적인 문화수준을 획득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곧 문화예술의 부국으로 나아가기 위한 초석이 될 것이다. 단순히 졸부근성으로 똘똘 뭉쳐 돈 많이 벌고 외제차를 끌고 다니며 성형미인으로 각광받는 시대는 끝났다. 바야흐로 마음의 내실을 기할 때다. 그러기 위해서는 클래식/오페라/발레라는 순수고전음악예술의 3형제를 수준 높게 습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작금의 국정농단사태의 핵심도 CF광고 감독 출신의 어느 한 인사가 문화융성의 기치 아래 이름도 생소한 융복합 뮤지컬 ‘원데이’라는 것을 만들어 놓고 마치 국격이 신장되기라도 한 것처럼 전횡을 일삼았다는 데에 있다. 유럽이나 미국, 일본, 중국 같은 선진 열강의 수뇌부들이 보면 코웃음을 칠 싸구려 문화융성정책이 아닐 수 없다. 문화융성이라는 슬로건 아래 제대로 국격을 신장시키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순수고전음악예술부터 수준을 끌어올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연후에 이를 전국민이 평등하게 향유하도록 하는 시스템 또한 구비해 놓아야 한다. 세계 어느 나라의 통수권자가 전면에 나서서 뮤지컬과 대중가요 같은 대중예술을 그 나라의 대표 문화상품이라고 떠벌리고 다닌다는 말인가. 저급한 문화인식이 불러온 창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어떻든 순수고전음악예술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던 중국도 베이징 국가대극원 개관을 시발로 해서 상하이와 충칭, 칭다오, 난징, 하얼빈 같은 수십 개의 주력도시들에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이라는 순수고전음악예술 인프라를 세계적인 건축가들에게 의뢰해 건립해 놓았다. 단순히 건물만 지어놓은 것이 아니라, 이를 채우는 콘텐츠 또한 세계 일류의 것으로 구비해 놓고 있다. 인근의 싱가포르와 홍콩, 태국 또한 순수고전음악예술의 중요성을 정부 차원에서 환기시킨 결과, 싱가포르 에스플러네이드와 홍콩아트페스티벌을 책임지는 홍콩아트센터 등을 이미 십 수년 전에 개관했다. 태국 역시 2001년에 개관한 방콕오페하우스에서 우리도 자체기술로 올리지 못한 바그너의 ‘니벨룽의 반지’ 4부작을 자체제작으로 무대에 올리고 있다. 중동에 건립붐이 일고 있는 오페라하우스들 또한 순수고전음악예술의 중요성을 그들 아라비아의 수뇌부들이 깨닫고 있다는 방증에 다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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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국가대극원 콘서트홀
/ © National Centre for the Performing Arts, Beijing


한마디로 이럴 때가 아닌 것이다. 나는 베이징 국가대극원 오페라하우스에서 이날 ‘루살카’를 관람하며 줄곧 이런 생각을 했다. 더블캐스팅으로 총 6회 공연하는 ‘루살카’를 포함해 2016년 한해 베이징 국가대극원 오페라하우스 무대에 오르는 오페라 편수는 정확히 14작품이었다. 우리의 국립오페라단이 한 시즌 올리는 오페라가 모두 6편임을 감안하면 2배를 넘는 수치다. 작년 늦여름, 마에스트로 정명훈이 베이징 국가대극원 초청으로 그 곳 오페라하우스에서 베르디의 ‘시몬 보카네그라’를 지휘한 적이 있다. 바리톤으로 전향한 플라시도 도밍고를 타이틀롤로 내세운 뻑적지근한 무대였다. 당시 베이징에 머물던 정명훈을 찾아온 중국의 어느 오페라 매니지먼트사 대표는 돈은 얼마든지 끌어 모을 수 있으니 정통 오페라를 정통적으로 무대화하는 방안에 관해 조언을 구했다고 한다. 시작은 늦었지만 중국이 물량공세로 오페라시장에 뛰어들고 있는 형국인 것이다. 일본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도쿄 신국립극장 오페라하우스와 오사카의 간사이 니키가이 오페라단 같은 중앙/지방의 오페라거점들을 중심으로 동시다발적으로 수준 높은 오페라무대를 구현해 오고 있다. 그들은 뮤지컬과 대중예술을 예술 이하의 유흥/오락물로 폄하하고 있다. 이런 세계적 흐름을 이제는 우리도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세계의 예술수용트렌드에 뒤지지 않는 진정한 문화예술강국으로 거듭날 수 있음은 자명하다.



- 에필로그

내가 이날 관람한 ‘루살카’의 캐스팅은 이탈리아의 저명한 오페라연출가 후고 데 아나가 연출과 무대/의상디자인을 총괄하고, 브라티슬라바에 소재한 슬로바크 국립극장의 수석지휘자인 라스티슬라프 스투르가 지휘봉을 잡은 명무대였다. 이보다 2주 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한국초연된 국립오페라단의 ‘루살카’에 비해 화려함의 농도가 짙었다. 가수진 또한 소프라노 디나라 알리예바가 루살카를 부르고, 테너 페터 베르거가 왕자를, 베이스 나탄 베르그가 보드니크를 소화한 특급 일색이었다. 마티아 메탈리의 3D그래픽을 활용한 무대는 ‘루살카’의 환상성을 증폭시킨 환상적인 장치였다. 오케스트라 피트에서 능수능란한 연주력을 과시한 국가대극원 오케스트라의 비르투오시티 또한 특기할 가치가 있다. 이들은 작년 11월 대구콘서트하우스에서 열린 ‘아시아 오케스트라 심포지움’의 폐막연주회를 담당하며 첫 내한무대를 가진 바 있다. 당시도 손열음 협연의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3번과 브루크너 교향곡 6번에서 환상적인 연주를 들려준 기억이 선명하다.


베이징 국가대극원 오페라하우스의 루살카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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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 국가대극원 오페라하우스의 루살카3.JPG
베이징 국가대극원 오페라하우스의 루살카
/ © National Centre for the Performing Arts, Beijing


중국은 이제 세계 클래식/오페라계의 중심에 있다. 나는 이번 첫 베이징 방문에서 그 같은 진리를 인정 안 할래야 안 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도 K팝과 뮤지컬에 치중된 천박한 문화융성 기치 대신 클래식/오페라/발레라는 순수고전음악예술에 막대한 정부투자를 감행해야 할 때다. 그것이 21세기 문화예술의 시대에 살아남고 국격을 신장시키는 진정한 대한민국 문화융성의 첩경이다.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고전음악칼럼니스트.

월간 클래식음악잡지 <코다>,<안단테>,<프리뷰+>,<아이무지카>,<월간 음악세계> 및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계간지 <아트인천>,
무크지 <아르스비테> 등에 기고했다.

파리에 5년 남짓 유학하면서 클래식/오페라 거장들의 무대를 수백편 관람한 고전음악 마니아다.

저서로는 <거장들의 유럽 클래식 무대>(2013/투티)가 있다.
현재 공공기관과 음악관련기관, 백화점 등지에서 클래식/오페라 강사로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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