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공.감.대] 감각01. 2017년, 평범하게 위대하게

글 입력 2017.01.08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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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평범하게 위대하게  


  일기에 날짜를 기입할 때마다 자주 멈칫한다. 아직 실수한 적은 없지만 ‘2017’을 적는 속도가 매번 느리다. 그래 참, 2017년이었지. 20대가 되면서부터 새해를 받아들이는 것에 유독 게을러졌다. 12월 31일 저녁부터 가족들과 주변 지인들에게 새해의 복을 기원하는 인사를 돌리면서도 정작 내 자신에게는 ‘복 많이 받자’라는 식이나 ‘올해는 나잇값하고 제대로 살아보자’라는 식의 어떠한 미래 기원적인 말도 걸지 않았다. ‘조금은 더 나아질 거야’하고 암시하는 희망도 내비치지 않았다. 올해도 어김없이 나는 그랬다. 전날과 다름없이 일어나서 밥을 먹고 할 일을 하고 신년맞이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밖을 돌아다니면서도 전혀 ‘해피’하지도 ‘뉴’하지도 않은 나날들을 흘려보냈다.
  무언가 새롭게 시작되고 올해의 날들이 360여일이나 가득가득 남아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부풀어 이런저런 목표를 수립해 보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 나는 ‘불행한 것이어도 좋으니 아주 사소한 것이어도 좋으니 내 인생의 단 한 가지라도 운명이 정해진다면’ 따위의 어리석은 생각들을 늘여놓았다. 그런 상태에서 생일을 맞이했다. 1995년 1월 8일. 내가 태어난 날. 8일은 새해가 시작되고 첫 일주일이 지난 날이다. 나는 매해 그 일주일을 마음껏 방황하고 배회하고 겉돌아도 되는 기간으로 썼던 것 같다. 생일이 되고 여차저차 나를 축복해주는 사람들 속에 둘러싸여 케이크 위에서 타오르는 촛불들을 훅 불어 끄고 나서야 나는 쑥스럽게 웃으며 남들보다 늦게 한 살을 먹는다. 

  미숙하다. 조급하다. 가난하다. 배회하다. 서성이다. 실패하다. 포기하다. 불안하다. 이런 단어들에 대해 이제 더 이상이 굳이 상처받지 않는 청춘들이 많을 것이다. 우리는 이 충격적인 단어들을 바통터치로 이제 막 이어 받은 세대가 아니라 이미 레이스에서 전력질주를 하고 있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새삼 상처 받을 것도 없다. 다만 이제 우리를 설명하는 것은 ‘무기력’. 그러나 젊은이들의 무기력을 양산해 내는 한국 사회의 병적인 사건들과 사회구조를 비판하고자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나는 오늘 ‘나’를 위한 글을 쓰고 있다. 나는 오늘 무수히 넘어져 널브러진 ‘나’들을 일으켜 세워 동원하여 글을 쓰고 있는 사람이다. 생일이니까. 나의 미숙함, 나의 조급함, 나의 가난, 나의 방황, 나의 실패, 나의 불안을 위로하며 다시 어떻게든 새해에 스며들어 평범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기 위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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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래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빙자한 각자의 하소연을 나눌 때면 어김없이 항상 나오는 주제들이 있다. 불안정한 현실과 미래에 대한 푸념, 공부와 연애문제, 외모 등에 대한 것들이다. 모두가 불안감이다. 이대로 낙오되지는 않을까, 내가 안주할 수 있는 일과 사랑을 찾을 수 있을까, 젊음만으로 충분하지 않다면 아름다워야 하는데 아름다움을 어떻게 이룰 수 있을까. 마치 내일이라도 모든 것들이 끝장날 수 있을 것처럼 호들갑스럽게 불평하고 하소연하고 침울해지고 냉소 지으며 웃어버린다. 우리는 어쩌면 다 알고 있는 것이다. 영원한 것은 없다는 거. 기쁨과 절망이 잠시이듯 불타는 열정도 마찬가지이고 숨기고 싶어도 누추한 본성은 가릴 수 없다는 걸 말이다. 
  공교롭게도 어제 서점에서 스스로에게 주는 생일선물로 구매한 시집 이름도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이다. 그래, 우리가 울다가 웃을 수 있고 웃다가 다시 찢어지게 고통스러워질 수 있다는 것은, 사랑이 다 타버리고 끝난 후에도 그 자리에 또 다시 불덩이 같은 사랑이 드리워질 수 있다는 것은, 매순간 일초 일분 한시간 한달 일년 나이를 먹게 된다는 것은 우리라는 존재가 ‘영원’이 아니라서 가능한 일들이겠지. 그 사실을 직시하며 아직 무궁하다면 무궁하다고 할 수 있는 긴 시간이 멀리 펼쳐져 있는 젊은 나는 어떤 표정을 짓고 살아야 하는 것일까 생각해 본다. 영원이 아닌 존재끼리의 대화를, 싸움을, 키스를, 이별을 무엇으로 받아들여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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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그것을 생의 화학작용이라고 부른다. 나와 타자는, 나와 세계는, 그 순간의 시간과 공간과 사유와 숨을 부딪치며 혼합된다. 서로가 서로에게 불순물이라 끝내 완전히 용해되지 못하더라도 내밀한 접촉을 공유했다는 사실은 변치 않는다. 완전한 모습, 영원한 모습이 아니더라도 그렇게 삶과 세상은 뒤섞이며 이어진다고. 8일. 생일이 밝아오는 새벽에 다섯 페이지나 되는 기나긴 일기를 적었다. 2017년 1월 8일자 마지막 줄에 나는 지난 일주일을 정리하며 문장마다 강하게 느낌표들을 찍었다. 그래, 조금은 가벼워져보자! 영원할 것도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다 괜찮지 않은가! 조금의 실수, 조금의 무능, 조금의 애정결핍 정도는!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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