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난한 휴머니즘 [문학]

글 입력 2017.03.15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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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머니즘은 본래 15~16세기 교회의 권위 아래 사라져가는 인간성을 회복하고자 일어난 고대 문예 부흥 운동에서 나온 말이다. 즉, 개인의 자유, 종교적 금욕주의에 대한 인간의 욕구 충족의 권리, 인간 생활의 쾌락에의 권리를 말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 말하고자 하는 ‘휴머니즘’은 인간의 존중, 복지, 전면적인 발전, 사회생활에 적합한 인간의 존재방식을 만들어 내는 것에 더 가깝다. 고로 가난한 휴머니즘이라는 제목은 저자가 책 속에서 자주 언급하는 ‘존엄한 가난’이다.
 
 이 책에는 존엄한 가난을 위한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Jean Bertrand Aristide)의 노력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는 이 책의 저자이자 신부이며, 아이티 대통령에 네 번이나 당선된 인물이다. 비록 네 번 모두 군사 쿠데타에 인해 물러나야 했지만, 그는 집권하는 동안 군대를 해산하고 교육과 보건의 질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는 등 아이티의 전반적인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힘썼다. 국가의 비참한 상황 속에서도 아이티 국민들의 모습 속에서 힘을 얻고, 존엄한 가난을 외치는 그의 모습에서 아이티의 한 줄기 희망을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총 아홉 개의 편지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편지는 아이티가 처한 상황과 현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국제 금융 기구의 주도하에 아이티는 쌀 수입 관세를 올려야 했다. 이후 미국의 값싼 쌀들이 아이티로 유입되었고, 결국 아이티의 쌀 생산량은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자 수입쌀 가격이 올라, 아이티는 자국의 농업을 포기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국은 ‘자유무역’을 내세웠지만 사실상 아이티에게 ‘자유’란 존재하지 않았다. 저자는 도움을 자청한 외부의 개입이 오히려 아이티에 가난과 고통의 악순환을 만들어내고 있고, 이에 외부의 힘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는 점을 편지를 통해 분명하게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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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또한 아이티의 어린 소녀들이 말한 민주주의의 의미를 이야기의 발판으로 삼기도 했다. 그들에게는 배불리 먹고 건강한 몸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이 민주주의다. “뱃속에 평화가 없다면, 머릿속에도 평화는 없다.”는 것이 이와 같은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아리스티드 재단의 슬로건이다. 저자는 우리가 이념적인 관점에서 보는 민주주의와 아이티가 생각하는 민주주의간의 차이를 줄이려면 '민주주의를 민주화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를 위해 아리스티드 재단에서는 민주적 참여를 위한 공간을 마련하고, 조합원들에게 경제적 도움을 주며, 여성들의 존재 가치를 이끌어 내는 등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아리스티드라는 인물이 가진 가치관이 재단에 미치는 영향력을 통해, 좋은 리더가 있는 집단이 얼마나 긍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는가를 다시금 일깨워 줄 수 있는 부분이었다.
 
 아이티 내에 존재하는 사회적 차별을 시작으로 아이티의 실상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있다. 이는 법률에는 존재하지 않지만 공공연히 행해지고 있는 ‘사실상의 아파르트헤이트(Apartheid)’이다. 이 편지가 가치있게 느껴졌던 이유는 외부 세력의 부정적 영향뿐만 아니라, 아이티 내에서 행해지는 차별과 소수 특권층의 이기적인 모습에 대해 고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티 사람들을 고통스럽게 만드는 것은 경제적으로 가난하다는 사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행해지는 차별을 포함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부분에서 아리스티드가 아이티가 직면한 문제와 어려움을 이해하고, 진정으로 이를 해결하고자 함을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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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지막 편지에는 아리스티드가 아이티를 바꾸기 위해 지금껏 해온 노력, 앞으로 해야 할 노력과 각오에 대한 내용이 담겨있었다.


" 이 책을 읽는 당신께 우리가 바라는 점이 있다면 바로 지금도 우리는 아이티의 새로운 도전을 위해 땀 흘려 일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셨으면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념 덕에 도전이 이루어지는 그 날이 올 것이라 확신합니다. 이 신념, 이 확신이야말로 우리가 전 세계에 드릴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수출품이 아닐까 합니다. 이 신념을 나눠 가지도록 당신께도 초대장을 보냅니다.’

 
 아이티는 오랫동안 외세의 지배를 받았고, 독립한 후에도 미국의 간섭과 군부 쿠데타로 고통 받았다. 국민들은 아직도 가난에 허덕이고 있고, 지진으로 인해 더욱더 비참한 현실을 겪어야 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런 절망적인 땅에서 작은 희망을 안고 지금의 상황을 헤쳐 나가려 고군분투하는, 존엄한 가난을 위해 나아가는 아리스티드의 모습이 그려진다. 아이티를 통해 부당한 이익을 얻고 있던 미국의 입장에서는 이런 그가 마음에 들지 않았을 것이다. 아리스티드가 쿠데타로 망명을 가게 된 것도 군부를 뒤에서 조종하는 미국의 입김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남아프리카공화국으로 망명한 뒤 뉴욕타임스의 기사를 보면, 그에 대해 ‘부패와 실정으로 국외로 쫓겨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망명생활 중인 전 대통령’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을 읽고 아이티의 상황을 알지 못했다면 미국이 아이티를 열심히 돕고 있고, 아리스티드라는 사람에 대해 독재자라는 인식을 가졌을지도 모른다.
 
 부르키나파소의 5대 대통령으로서 개혁을 이끌어갔던 토마스 상카라가 아프리카에서의 권익 상실을 우려한 프랑스에 의해 죽임을 당했던 사실이 담긴 장 지글러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가 떠오른다. 진정한 국제사회의 구호에 앞선 각국의 정치적 이익 추구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도움조차 받지 못하고 죽어가고 있는 현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책과 일맥상통하다. 결국 장 베르트랑 아리스티드와 장 지글러 같은 많은 작가들이 책을 통해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었던 것,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것이 아닐까 싶다. ‘지구화’ 또는 ‘세계화’라는 명목 아래 그들만의 삶의 방식을 무너뜨리고 자유를 빼앗는 것이 오히려 그들과의 격차를 더 벌어지게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송송이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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