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암보암] 앨리스를 잃었는데 남는 건 앨리스였다

글 입력 2017.04.10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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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식한 소리일지도 모르지만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도 어떤 배우가 연기를 얼마나 잘하는지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외국 배우가 아주 대단한 사람이라 해도, 혹은 그 배우가 흔하디흔한 사랑을 표현한다 해도 가슴 깊이 와 닿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다른 언어, 다른 문화, 다른 환경을 가진 이들과 감정적 교류를 나누는 것보다 2차원의 한국 만화주인공에 이입하는 경우가 훨씬 많다. 때문에 아는 외국 배우가 많지 않다. 자주 보이는 배우들이 기억에 남고 인상 깊었던 영화에 출연한 배우들 이름 정도는 하나둘 외우게 됐을 뿐. 물론 그렇다고 해서 감명을 받았던 배우가 한 명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비포 시리즈’의 주인공인 에단 호크와 줄리 델피, 영국 드라마 <셜록 홈즈>와 영화 <이미테이션게임>의 베네딕트 컴버배치, 그리고 <스틸 앨리스>의 줄리안 무어가 그렇다. 오늘 나는 줄리안 무어가 <스틸 앨리스>에서 연기한 상실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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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리스는 다양한 매력을 지닌 든든한 세 명의 자녀와 사랑하는 남편을 가진 능력 있는 대학 교수다. 일적으로도, 가정적으로도 그녀는 누가 봐도 성공했다. 그녀를 두고 남편은 이렇게 찬양한다.


 “내가 아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지적인 여성”


 그녀의 남편이 아니라도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표현에 동의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영화 속 앨리스는 말 한마디, 손동작 하나까지도 매력적이고 이지적이며 가족들로부터 받은 사랑으로 볼엔 생기가 피어올라있다. 저렇게 라면 늙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 그녀는 아름답다. 하지만 이토록 사랑스러운 앨리스를 영화는 야금야금 좀먹어간다. 앨리스는 치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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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틸 앨리스>는 앨리스가 스스로를 잃어가는 과정을 치밀하고 꼼꼼하게 그리고 있다. 그녀는 아들의 여자 친구에게 이름을 물었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자신의 삶의 터전인 대학에서 조깅을 하다 길을 잃는다. 화장실을 찾지 못한다. 딸의 이름을 잊지 않기 위해 쓰고 또 쓴다. 영화는 환자로써의 앨리스보다도 앨리스에게서 떨어져 나가는 상실의 파편들에 집중한다. 치매는 일상적인 것, 기본적인 것, 직업에 관한 것, 가족에 대한 것을 가리지 않고 먹어치운다.

 앨리스는 기억을 잃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부인하려 발버둥 쳤지만 결국 자신이 치매라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고 만다. ‘똑똑했던’ 과거의 앨리스는 그 순간 죽음을 택하기 위해 자살을 유도하는 동영상을 미리 찍어두었지만 그 조차 실행하기가 쉽지 않다. 앨리스는 자신이 무엇을 왜 들고 있었는지 조차 알지 못할 거란 예측은 하지 못했다.

 그녀의 직업은 상실의 잔인함을 더욱 부각시킨다. 교수만큼 자신의 인지 능력과 지식, 그리고 지적인 쾌감으로 똘똘 뭉친 존재 자체가 재산인 직업이 있을까. 때문에 치매는 물질적인 상실을 넘어 정신과 영혼의 상실이라고 그녀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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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지적 능력, 언어, 발화를 통해 정의하고 내 존재를 확인했는데 
요즘은 앞에 단어가 걸려는 있는데 잡을 수가 없는 것 같아. 
그래서 내가 누군지 조차 모르고 다음에 무엇을 잊을지 조차 알 수가 없어.” 
   

 가족들의 사랑과 앨리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앨리스의 증상은 나빠지기만 한다. 아마 여기서 영화가 끝이 났다면 <스틸 앨리스>는 찝찝함과 치매에 대한 두려움만을 남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영화가 앨리스를 조각조각으로 떼 내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지막엔 남는 건 아이러니하게도 앨리스다.



 그리고 남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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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앨리스를 돌보는 막내딸이자 배우지망생인 리디아가 엄마에게 자신이 하게 될 대사를 들려준다. 어려운 내용이다. 우주와 권계면이 어쩌고, 영혼이 떠오르고, 면직물이 찢어지고 헤졌다가 다시 붙고. 알아듣는 건지 못 알아듣는 건지 앨리스는 영화의 초반부와는 전혀 다른 순진무구하고 생각 없는 표정으로 그 말을 듣고 있다. 막내딸 역시 그 모습이 안타까웠는지 엄마 옆으로 다가가 무슨 이야긴지 알겠냐고 슬프지만 다정한 목소리로 묻는다. 그러자 앨리스는 대답한다.


“Love”

 
 나는 그녀가 모든 걸 잃었고 또 잊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도 앨리스는 이해하기 힘든 막내딸의 대사에서 의미를 찾는다. 심지어 그건 사랑이었다. 오리 사진을 보고 ‘duck’이라고 말하는데 한참 걸렸고 'water‘의 철자를 거꾸로 말하는데 긴 시간이 필요할 정도로 치매의 지우개가 그녀의 뇌를 지우는 동안에도 사랑은 심장에 꼭 달라붙어 살아남은 모양이었다. 내내 울지 않았는데, 코끝이 찡해지고 말았다. 서정주 시인을 키운 건 팔할이 바람이었던 것처럼, 그녀의 삶은 사랑에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미디어는 있는 병 없는 병을 찾아내어 설정값으로써 그것들을 여러 가상인물들에 삽입했다. 가상이라고 저래도 되는 건가 싶을 만큼. 치매는 설정값 질환의 범주에 속하는 여러 질환들 중에서도 가장 평범하게 사용되곤 한다. 하지만 이 영화는 질병이 아닌 상실, 그리고 남는 것에 관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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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실은 우리 모두에게서 일어난다. 굳이 치매와 같은 병이 아니어도 자연스러운 기억의 편집과 더불어 우리는 외부의 시선에 의해, 다 우릴 위해서라고 말하는 사회의 눈속임에 의해 스스로를 잃곤 한다. 앨리스는 자신의 지적 능력과 언어, 발화로 존재를 확인한다고 이야기했다. 그래서 치매로 인해 그것들을 잃었을 때 더 이상 앨리스는 이 세상에서 사라진 것처럼 보였으나 사랑은 마지막까지 그녀의 존재를 지켰다. 그녀는 모르는 사이에 평생에 걸쳐 어떤 존재로 남을 것인지를 차곡차곡 쌓았던 것이다. 그럼 우린 무엇으로 존재를 확인하고 자신의 실체를 더듬는가? 모든 것을 다 잃었을 때 마지막에 남는건? 아마 산다는 일은 끊임없는 침식 속에서도 부서지지 않는 단단한 뿌리를 찾아내고 또 갈고 닦는 일인지도 모른다. 앨리스가 내뱉은 “Love"처럼.



보암보암?     
: 이모저모 살펴보아 짐작할 수 있는 겉모양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

감정과 느낌의 응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문화예술로부터
감정과 느낌이 가진 모습들을 평범하게, 동시에 독특하게 풀어내어
보암보암이란 이름처럼 따듯하고 몽글몽글한 글을 써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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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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