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독도를 외롭지 않게 하는 수많음 마음, 라 메르 에 릴

글 입력 2017.05.02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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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를 외롭지 않게 하는
수많은 마음
라 메르 에 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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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라메르 에 릴

사실 음악, 그것도 클래식은 나의 주 관심분야는 아니었다. 아트인사이트를 하면서 여러 기회가 주어지니 조금씩 관심을 가져가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워낙 연극과 뮤지컬을 좋아하고, 아트인사이트를 하며 전시에도 빠져버린지라 연주회는 조금 뒷전인 감이 있었다. ‘연알못’인 내가 들어도 얼마나 알겠냐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주회 ‘라 메르 에 릴’을 신청하게 된 것은 이들이 독도를 노래하기 때문이었다.

 라 메르 에 릴은 독도와 동해를 주제로 문화예술 활동을 펼쳐온 문화예술인과 학자들의 모임이다. 연주회는 미술, 시 무용 등 라 메르 에 릴의 다양한 활동 범위 중 하나였다. 이들이 독도를 노래하기에 가보고 싶었다니. 엄청난 애국자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실상은 단순한 이유였다. 단지 라 메르 에 릴을 신청할 때 쯤 독도에 다녀오는 여정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가 보고 들은 것을 어떻게 음악으로 표현해낼까 하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사실 삼대가 공덕을 쌓아야 발을 들일 수 있다고 하는 독도기에 떠난다고 해도 실제 독도 땅을 밟아볼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정말 다행스럽게도 내가 떠난 날은 하늘이 길을 열어주고 바다도 거친 숨을 내뱉다 독도에 다다랐을 때는 숨을 죽여주어 독도 땅에 발을 디딜 수 있었다. 서울부터 독도까지 순수 이동시간만 따져도 9시간에 다다를 정도로 머나먼 여정이었지만 독도에 하·승선을 제외한 체류시간은 단 20분에 불과했다. 이동 가능한 범위도 선착장과 부두 정도. 엄청나게 고생을 하고도 운이 따라주어야만 들어갈 수 있는 것 치고는 야박하게까지 느껴지는 조건들이었지만 그래서 더 온전히, 소중히 독도를 느끼려 노력했었다.

그렇게 실제 독도 땅을 밟은 후 오게 된 ‘라 메르 에 릴’은 참 오묘한 기분에 빠지게 만들었다. 모든 여행이 그렇듯 일상으로 돌아오고서는 잠시 꿈을 꾼 듯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던 독도의 경험을 다시 현실로 끌어오게 만들었다고 할까 더 꿈처럼 만들었다고 할까.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었다.

연주회는 벤자민 브리튼의 현악사중주를 위한 세 개의 희유곡-신비의 섬-독도 오감도-달에게 부치는 노래-피아노 오중주 바단조로 이뤄져 있었다. 그 중 단연 최고는 독도로 떠나는 듯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박경훈의 신비의 섬과, 라 메르 에 릴이 주최한 독도 특별전시회에서 영감을 얻은 음악인 독도 오감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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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신비의 섬

곡 신비의 섬은 마치 독도를 향해 떠나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게 했는데, 거기엔 생황의 역할이 컸다. 악기 그 자체로도 하나의 섬과 같이 생긴 생황은 처음 들어보는 음색을 가지고 있었는데, 가녀린 듯하기도 하면서 세찬 느낌의 악기였다. 생황의 음색이 ‘신비’를 묘사하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었다. 특히나 실제 독도를 가기 위해 편도로만 배를 약 5시간여 탔어서 그런지. 더더욱 독도로 떠나는 느낌을 강렬하게 받았다. 처음 배에 올라탔을 때 기대감으로 설레면서 긴장됐던 순간부터, 너울파도에 배가 미친 듯이 흔들리기 시작했던 순간, 독도가 손톱만하게 보일 뿐인데도 연신 감탄사를 내뱉으며 창문에서 눈을 떼지 못하던 순간, 기도하는 마음으로 접안을 기다렸던 순간까지. 그 모든 순간들이 ‘신비의 섬’에 담겨있는 듯 했다.

평온하게 흘러가다가 급박해지고 어두워지는 부분은 ‘너희를 내가 들여다보내줄 것 같냐’고 말하는 듯 세찬게 몰아치던 파도를 떠올리게 했고, 그 앞에 그저 의자를 부여잡고 견디는 것 밖에는 할 수 없던 모습들이 기억났다. 들어가는 여정이 정말이지 힘겹고, 또 힘겹다는 점을 잘 묘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연은 결코 만만하지 않으며 독도로의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다는 것을 음악으로 잘 표현해낸 느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여정을 떠나는 이유는, 또 견디는 이유는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급박하게 흘러가는 부분 뒤에 눈물이라도 나올 만큼 신비롭고 부드러운 부분은 그 끝에 겨우 마주한 독도를, 그리고 그 섬의 아름다움을 묘사하는 듯했다.

원래 작곡가가 그렇게 의도한 것인지, 실제 다녀왔기 때문에 음악을 그 여정에 하나하나 대입시키게 된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여정’을 떠올리게 한 것만으로도 신비의 섬은 내게 충분히 감명 깊었다.



독도. 오감도

독도 오감도는 아무래도 꽤나 긴 곡이고, 3악장으로 이뤄져 있기에 신비의 섬만큼 이건 이거다! 라며 하나하나 대응시킬 수는 없었다. 하지만 가야금, 생황 등의 국악기와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등의 서양악기의 조화는 좋았다. 사실 피아노와 생황, 이 두 가지로만 이뤄졌던 신비의 섬만큼은 조화롭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지만. 워낙 어떤 악기와 갖다놔도 어울리는 피아노와 단 한 가지의 악기로만 이뤄졌던 이전의 조합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너무한 것이니.

신비의 섬이 독도를 향해서 떠나는 느낌이라면, 독도 오감도는 찬찬히 독도를 둘러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물론 내가 발을 디딜 수 있던 곳은 선착장과 부두뿐이었기에 그 위에서 찬찬히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만일 그 위로 올라가서 전경을 볼 수 있다면, 독도와 보다 더 함께 호흡할 수 있었다면 이런 느낌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3악장은 이규형의 시 ‘독도’를 소프라노로 불렀는데. 지금까지 내가 들어왔던 대부분의 성악들은 다 외국어였어서 한국어에 약간 이질감이 들었다. 그 이질감도 잠시, 곧 익숙해지긴 했지만. 성악을 들을 땐 어차피 몇 개 단어 빼고는 알아듣지 못할 거라 생각했었는데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로 성악을 하니 신기한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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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 독(獨)하지 않은

오랜 시간 머나먼 여정을 떠나서야 겨우 마주할 수 있던 독도를 연주회 장에 앉아 다시금 마주하니 느낌이 이상했다. 그러면서도, 이게 예술의 힘인가 싶었다. 직접 밟고 눈으로 보고 몸으로 느꼈던, 느껴야 했던 그 순간을 음악을 통해서는 ‘직접’ 마주한 것이 아님에도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독도를 다녀온 사람에겐 그에 대한 기억을, 감상을. 다녀오지 않은 사람에겐 독도에 대한 느낌을 선사하는 연주회였다.

‘독도는’이라고 하면 ‘우리땅’이란 말이 무조건 반사처럼 튀어나온다. 하지만 그렇게 수도 없이 외치면서도 독도가 왜 우리 땅인가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하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았었다. 독도가 왜 우리 땅인가에 대해서 답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관련 기사를 쓰면서였다. 역사적으로 수많은 근거들이 있었고 이를 기반으로 나는 당당하게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말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라 메르 에 릴을 보고 난 후, 나는 그 수많은 근거들을 굳이 꺼내 보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독도를 위해서 자발적으로 모여, 온 마음으로 이를 연주하는 이들의 마음. 독도를 최대한 생생하게 담아내 사람들에게 전하고자하는 이 마음. 독도는 우리 땅이라 자신 있게 외치며, 그 애정을 숨기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 수많은 사람들의 이 마음이야 말로 독도가 우리 땅인 이유였다. 독도를 홀로 두고 나오면서도 독도가 외로워 보이지 않던 그 이유를 이제서야 깨달은 기분이었다. 라 메르 에 릴이 있는 한 아니 독도를 생각하는 수많은 '우리'들의 마음이 있는 한 독도는, 결코 외롭지 않았다. 라 메르 에 릴을 통해 그 수많은 마음들을 깨달아서 일까. 연주회장을 나서는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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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희정 (2).jpg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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