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암보암] 환상을 걷어내도, 영원하지 않아도 아름다운 것
글 입력 2017.05.0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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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서야 영화 <라라랜드>를 봤다. 최근 가장 큰 인기를 얻었던 영화이니만큼 꽤 많은 글들이 이곳 아트인사이트에도 올라왔다 그래서 피하고 싶었지만 <라라랜드>는 나에게도 흥미로운 감상을 선사했기에 이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대단하지는 않으나, 그런 것들을 쓰는 게 ‘보암보암’의 목적이니 이유는 충분하다.처음엔 <라라랜드>가 ‘두 사람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로 끝나는 줄 알았다. 될 수 있으면 스포일러가 될 만한 글을 보지 않으려 노력했고 다들 ‘환상적’이었다고 하기에 막연히 그렇게 생각했던 것 같다. 제목이 주는 느낌도 그렇지 않은가. 라라랜드. 로스앤젤레스의 별명이라고도 하는 이 단어는 '현실과 동떨어진 상태'를 의미한다고 한다. 뭔가 디즈니랜드처럼,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모른 척 한 번쯤 꿈꿔봤을 법한 이야기를 보여줄 거라 확신했다.재즈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배우가 되기 위해 쉴 새 없이 노력하는 미아(엠마 스톤)은 여느 러브스토리 주인공들이 그렇듯 우연의 연속으로 만남을 시작한다. 그들에겐 각자 간절히 이루고자 하는 꿈이 있었으며 힘들 땐 서로에게 의지하고 기쁜 일엔 함께 기뻐하는 동안, 사랑은 마치 성장기의 어린아이처럼 무럭무럭 자란다.하지만 결국 두 사람에겐 각자의 꿈이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미아는 자신의 연극을 보러 온 한 캐스팅 디렉터에 오디션 제안을 받았고 계획대로라면 촬영을 위해 프랑스 파리로 떠나야했다. 세바스찬 역시 그녀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말한다. 이런 상황 속에서 미아는 세바스찬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말한다.언제나 당신을 사랑할거야I'm always gonna love you그녀의 발언이 경솔했다고 말하고 싶었던 걸까. 곧바로 이어지는 5년 후의 시간 속에서 두 사람은 각자의 인생을 살아간다. 특히나, 둘은 더 이상 사랑하지 않는다. 이는 많은 이들의 기대와 예상을 산산조각 내버린 결말이었을지도 모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인공들이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당황했던 건 영화 전반에 걸쳐 보는 이의 환상을 완벽하게 충족시켜준 <라라랜드>가 갑자기 흐름에 맞지 않는 결말을 떡하니 내놓았기 때문이었다.다른 이들은 라라랜드의 어떤 장면에서 환상적이라는 단어를 떠올렸을까. 세바스찬과 미아가 노을 앞에서 탭댄스를 추는 장면이 환상적이었을 수도 있고 우주의 바다 속에서 그림자가 되어 사랑을 나누는 장면이 그랬을지도 모른다. 많은 이들이 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영화의 맨 첫 부분, 보기만 해도 지루한 꽉 막힌 도로 위에서 음악, 춤, 그리고 사람들이 터져 나온 장면도 카타르시스를 느끼기에 충분했다. 세바스찬과 미아의 관계도 드라마틱했다. 우연한 만남, 운명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을 사랑, 꿈을 향한 발걸음. 두 사람이 헤피엔딩을 맞이했다 하더라도 진부하다는 이유로 비난받기보다는 대중들이 가진 고전적인 환상에 업혀 자연스럽게 흘러갔을 것이다.그런데 <라라랜드>는 ‘굳이’ 두 사람을 이별시켰다. 심지어 미아는 배우로써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결혼도 하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는데 반해 세바스찬은 원하던 재즈 바를 열긴 했지만 그 바의 이름은 Seb's(미아가 지어준 가게 이름)인데다 결혼을 하지도 않았다. 의심할 여지없이 환상적이고 완벽한 사랑이었는데, 끝에 가서 보니 가혹한 현실이었다. 영화가 끝이 났을 때, 꿈을 꾸는 듯했던 장면들이 찬물을 끼얹은 듯이 착 가라앉았다. 그러니까 결말 전까지만해도 환상을 그리는 데 치중했던 <라라랜드>는 환상을 만족시켜주고 싶었던 것이 아니었다.사실상 광고, 영화, 드라마 등 각종 대중매체는 사람들의 환상을 이용해 먹고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여자 연예인들처럼 마르고 볼륨감 있는 몸매를 얻을 수 있다는 환상, 어른이 되면 누구나 멋있는 전문직 종사자가 되어 휴가 때마다 호화롭게 해외여행을 다닐 수 있을 거라는 환상. 지금은 어렵고 힘들지만 착하고 성실하게 살면 성공할 수 있을 거라는 환상. 무엇보다도 영원한 사랑 혹은 운명적인 사랑에 있어서 대중들은 그것이 얼마나 실현하기 어려운가를 몸소 체험해봤거나 지켜봤음에도 절대 포기하지 못한다.형태가 변하든, 방법이 변하든, 대상이 변하든, 아니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리든 사랑은 고정될 수 있는 감정이 아니며 이는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세상에 환상적인, 영원한, 그리고 완벽한 사랑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런 사랑을 끊임없이 갈망하고 추앙한다. 다수의 작품들은 이러한 허상을 더욱 다채롭게 채워주기 위해 다양한 설정을 통해 다양한 모습의 환상을 만들어왔다.하지만 <라라랜드>는 조금 달랐다. 눈에 잘 보이지 않는 환상의 막을 마구 펼쳐놓은 다음 그것을 한방에 걷어내 현실을 선명히 드러냈다. 영원한 사랑이라는 환상의 늪에 깊숙이 집어넣었다가 갑자기 끄집어내 버렸다. 사랑이 끝내 이루어지지 못했다고 해서 그것을 슬프거나 무기력한 무언가로 표현하지도 않았다. 물론 매순간 조금 다른 선택을 했더라면 어땠을지, 지금도 사랑하고 있다면 어땠을지를 파노라마처럼 쭉 보여주긴 하지만 배경음악은 꽤나 유쾌하다.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게 환상적인 사랑이었다면 결말이 이렇지도 않았겠지만 그들의 후회, 아쉬움 같은 것들이 담겨있었을 일련의 장면들을 신나고 즐겁게 그릴 수는 없었을 것이다.한때 서로를 열렬히 사랑했던 그들은 한 마디도 나누지 않는다. 다만 Seb's를 나서던 미아는 견딜 수 없다는 듯이 뒤를 돌아보고 세바스찬 역시 미아를 바라본다. 그저 조용히 눈빛만으로 상대를 어루만지던 그들은 살며시 웃어 보인다. 거기엔 ‘고생했어, 축하해, 여전히 아름답고 또 멋있구나, 고마워, 미안해, 괜찮아, 잘 지내, 반가웠어’ 와 같은 수많은 말들이 담겨있다. 그들도 깨달았을 것이다. 모든 시련과 난관을 극복할 만큼 우리의 사랑이 대단한 게 아니었다는 걸. 미아는 언제까지나 세바스찬을 사랑할 수 없었다.영원한 사랑이라는 환상을 깨뜨림으로써 영화는 과거 운명이라고 생각했던, 너무 사랑한 나머지 함께 우주를 날아다니는 것만 같았던 그들의 사랑도 사실은 현실이었음을 받아들이도록 한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들의 사랑이 지극히 현실적으로 막을 내렸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름답다는 것이다. 끝이 났다고 해서 누군가를 사랑했던 과거가 물거품이 되는 건 아니다. 그것은 각자의 기억 속에 온전히 어여쁜 환상으로 남으며, 그래서 세바스찬과 미아는 서로 다정한 침묵을 건네며 미소지을 수 있었다.<라라랜드>는 말도 안 되는 허상을 만족시켜주는 대신 훨씬 가능성이 높지만 사람들이 인정하고 싶지 않아하는 사랑의 끝을 보여준다. 그러면서 이야기한다. 행복에 취해 꿈속을 헤매는 기분이 드는 건 환상적인 사랑이어서가 아니라 사랑이 환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에요. 완벽하지 않은데도 영원하지 않은데도, 그 순간만큼은 완벽하고 또 영원한 건 그래서에요. 하지만 이루어지지 않아도 돌이켜보면 참 반짝이지 않나요. 아득한 옛날처럼, 흑백 영화처럼, 문득 액상 위로 떠오르는 필름 조각처럼, 어젯밤 희미함만 남은 꿈처럼. 그런게 사랑이에요. 환상을 걷어냈는데도 아름다운 이 영화가 나는 그래서 좋았다.보암보암?: 이모저모 살펴보아 짐작할 수 있는 겉모양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감정과 느낌의 응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문화예술로부터감정과 느낌이 가진 모습들을 평범하게, 동시에 독특하게 풀어내어보암보암이란 이름처럼 따듯하고 몽글몽글한 글을 써보려 합니다.[반채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라라랜드를 명성을 듣고 영화를 관람하러갔는데 저는 영화 중반부까지 참 진부하다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리고 남들이 느꼈던 감동과 환상적임을 못느끼고 있었는데 후반부에서 왜 이 영화가 찬사를 받았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반채은님께서 쓰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환상을 걷어버린 현실이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꿈이 더 중요했다기 보다 서로를 너무 사랑하다보니까 서로의 꿈을 저버리는걸 서로가 견디지 못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누구나 그렇듯이 사랑하는 사람의 꿈을 다 포기하고 나만을 바라봐주길 원하는 마음을 강요하지는 않으니까요. 그러나 영화를 보고 한참 있다 라라랜드에 대해 다시 생각 해보니 현실적이라고 생각했었던 결론은 사실 현실적이지 않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조금 슬픈 이야기지만 미아와 세바스찬은 꿈을 이루게 된 반면 현실에서는 사랑을 포기하고 꿈을 이루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하는 생각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마도 우리들은 사랑을 포기한 이 영화를 보고 환상적이다, 감동적이다 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싶었습니다. 하지만 라라랜드는 영화 하나만으로 다양한 생각과 의견을 공유할 수 있게 해준 멋진 영화임에는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
글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