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암보암] 오글거리는 사람끼리, 오글거리게

글 입력 2017.05.30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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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글거리다’는 말이 싫는다. 초록창은 그것의 뜻이 ‘어떤 말이나 행동에 민망함을 느끼다’라고 친절히도 설명해준다. 사실 ‘오글거리다’는 뜻 자체에는 불만이 없다. ‘민망하다, 느글거린다, 역겹다’와 같이 그것을 대체할 수 있는 말들에 부정적인 느낌을 받은 적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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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오그라드는 걸까? 개인적으로는 어떤 감정이나 행동에 진정성이 결여되었을 때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는다. ‘드라마든 영화든 결국 가짜잖아!’라고 주장한다면 할 말 없지만 자신이 맡은 역할에 빙의해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는 훌륭한 배우들이 있지 않은가. 최소한 스크린 속에서 그들은 그들이 아니다. 다 같이 가짜를 연기하는데도 불구하고 대중들은 자기 일처럼 공감하기도 하고, ‘오글거린다, 발연기다’라며 혹평을 쏟아내기도 한다. 그들의 반응을 결정하는 건 배우와 배역 사이의 간극이 얼마나 되느냐 하는 것이다. 그 간극이 클 때, 다시 말해 진실해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민망한 것은 당연하며 이를 두고 ‘오글거린다’고 말한다고 해서 불편하진 않다. 다만 나는 진지하고 솔직한 감정에까지 이 표현을 갖다 붙이는 행태가 거북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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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쿨하게’ 라는 말이 한창 유행했었다. 특히 실연당한 이에게 사람들은 ‘쿨하게 헤어져!’ 라는 말을 위로랍시고 뱉어내곤 했다. 글쎄, 쿨하게 헤어질 수가 있나? 이별한 사람의 눈에서 왈칵 터져 나온 눈물은 뜨겁다. 술을 진창 마셔 봐도 차갑기는커녕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질 것이다. 때로는 너무 뜨거운 나머지 데이기도 한다. 거기다 대고 ‘쿨’이라는 글자를 쏟아부어봤자 마음은 시커멓게, 그리고 빠르게 잿더미로 변할 뿐이다. 쿨하진 못해도 최소한 덤덤해질 순 있을지도 모른다. 사는 게 그렇지 않은가, 만나면 헤어지고 헤어지면 만나고. 작은 바람이 스치고 지나간 것처럼, 옆을 지나가는 사람의 어깨가 나를 살짝 치고 간 것처럼 덤덤해져 보는 것이다. 비단 연애뿐만이 아니라 삶 속에서 벌어지는 여러 일들에 대해서도 말이다. 예를 들면 국정농단 사태에 울분을 토하며 분노하기 보다는 ‘정치인들이 다 그렇지 뭐’ 해버리는 것이다. 동생 같은 아이들이 세월호에서 죽어갈 때도 ‘우연한 사고니까, 사람은 언젠가 죽어’해버리는 것이다. 그럼 좀 편해질까. 쿨한 거, 덤덤한 거, 확실히 에너지 소모는 덜 할 것 같다. 하지만 합리적인 선택이 언제나 나를 위한 선택인 건 아니다.
 

티브이

           임솔아


그렇게 슬퍼? 광복 70주년 기념 프로그램에서 숭례문이 불타고 있었다.

로션을 바르는 것처럼 그는 콧물을 손바닥으로 문지른다.

우리나라 국보 1호인데 가슴이 미어진다며 운다.

나는 키즈 과학체험을 보며 운다. 소의 위에 구멍을 뚫고 아이들에게

손을 넣게 한다. 소야. 커다란 눈을 껌뻑이는 소야.

아이들이 배에서 꺼낸 곤죽이 된 음식물을 허연침을 뚝뚝 흘리며 핥는 소야.

나는 콧물을 풀고 눈물을 닦으며 티브이를 본다.

지금은 긴급속보에서 카트만두가 무너지고 있다.

사망자가 8백명이라더니 이 시를 쓰는 동안 4천명으로 늘었다.

왜 울지 않아? 우리나라 이야기가 아니라서 그는 눈물은 안 난다고 한다.

티브이에서 본 비극을 모아 나는 지금 시를 방영한다.

뛰어난 인류를 상상한 독재자가 학살을 자행한 다큐를 보았고

머리채를 잡힌 여자가 중심가로 질질 끌려가며 죽어갔고

수백의 사람들이 구경만 했다는 뉴스를 감자칩을 먹으며 메모했다.

잔재 아래에서 울음소리가 올라온다. 이름이 뭐에요? 대답하세요, 구조대 올 거예요,

말을 해요, 그래야 살 수 있어요, 나는 티브이에게 말을 건다.

깜박깜박 졸음에 빠지는 티브이를 깨운다.

나는 티브이 속으로 들어간다. 차벽 너머의 그를 만난다.

우리는 마주 보고 있다. 이곳은 마주 보는 것을 대치 중이라 한다.

이 차벽 너머에서 그가 등을 돌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등을 돌려야만 같은 티브이를 볼 수 있다. 나는 뒤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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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와 함께 티브이를 보고 있다. 그는 숭례문이 불타는 것은 우리나라 일이라 눈물이 나지만 카트만두가 무너지는 건 그렇지 않다고 한다.

 숭례문에서 누군가의 콧물이 멈춘다면, 여기서부터는 화자의 눈물이 시작된다. 화자는 키즈 과학체험에서 배가 갈린 소 때문에 가슴 아파한다. 8백명에서 4천명으로 늘어난 사망자의 숫자에 귀 기울인다. 학살당한 사람들, 머리채 잡혀 끌려가 죽임을 당한 여자, 잔재에 깔린 희생자들로 시선이 차근차근 옮겨간다. 티브이가 낭랑하고 또박또박한 발음으로 읊어댄 사연들을 지그시 꾹꾹 눌러 위로한다. 화자는 왠지 아무리 깎아도 금세 뭉툭해지는 연필로 시를 쓰고 있을 것만 같다. 티브이에 말도 건다. 말을 하라고, 죽지 말고 살아남으라고. 그러다 티브이 속으로 들어가 버려서는 차벽 너머의 누군가와 마주본다. 차벽, 대치중과 같은 단어들 때문에 누군가는 자연스레 의경이 된다. 하지만 의경은 앞서 등장한 다양한 희생자들과 같다고 보기는 어렵다. 모두가 안타까워할 만한 상황에 처한 다른 이들과 달리 의경은 화자와 말 그대로 대치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등을 돌려 같은 티브이를 보길 바라던 화자는 결국 스스로 등을 돌린다.

 티브이는 어디 있을까? 그들의 오른편인가 왼편인가? 시에서는 명시하고 있지 않다. 때문에 의경이 움직이든 화자가 움직이든 두 사람이 한 방향으로 시선을 두는 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마도 화자는 차벽으로 둘러싸여 딱딱하게 굳어버린 의경에게 연민, 동정과 같은 부드럽고 말캉말캉한 감정을 전하고자 하는 듯 싶다.


티브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봐요, 우린 지금 싸울 때가 아닙니다. 슬퍼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어떤 면에서 화자는 참 피곤하게 사는 것 같다. 티브이는 좋은 소식보다 나쁜 소식을 훨씬 많이 전해주며, 매일 전 세계적으로 몇 백 명이 죽고 다치는 건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도 모자라 반대편에 선 사람까지도 자신과 같기를 바라다니 어리석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난 그래서 시인 자신일지도 모르는 화자가 꽤 마음에 든다. 그녀는 누군가의 진심에 오글거린다며 손발을 쥐었다 폈다 하지 않을 것만 같은 확신이 들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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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쓸데없는 눈물이 많다. 날이 좋다는 이유로 운적도 몇 번 있다. 이렇듯 틈만 나면 청승을 떠는 내게 얼마 전 목 놓아 울어도 이상하지 않을(적어도 나에게만큼은) 일이 생겼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줄곧 아르바이트를 해온 밥집 사장님이 다른 사람에게 가게를 넘기셨던 것이다. 원래 나이도 꽤 있으신 데다 몸도 안 좋으셨고 자유롭게 사시는 분이라 놀랄만한 일도 아니긴 했다. 하지만 이별은 언제나 갑작스러웠으며 시끌벅적한 축제의 마지막 날, 조용히 떠나버리셨다.

 가족과 떨어져 사는 내게 사장님은 엄마 같은 분이었다. 갈 때 마다 반가워하셨고, 음식을 더 먹이지 못해 안달이셨고, 알바생한테 용돈도 가끔 주셨다. 프린팅 하나 없는 흰 반팔티만 입고 가도 너무 예쁘다며 칭찬하셨고, 틈만 나면 고생한다고 안아주시곤 했다. 알바를 하러 가는 나를 안쓰러워하며 힘내라고 응원하는 친구들에게 ‘난 그냥 놀러 가는 건데?’ 라고 화답했던 건 치기어린 자존심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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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일 이후 몇 일내내 무기력하고 우울했다. 사실은 여전히 그렇다. 학교가 끝나면 꼭 들리던 놀이터가 사라졌을 때의 기분을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중이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뻥 뚫린 가슴을 내놓고 보여주기란 쉽지 않다. ‘난 제2의 엄마를 잃었어’, ‘놀이터가 사라져버렸어’ 라고 말한들 귀 기울여 들어줄 사람은 많지 않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오글거린다며 부들부들 거리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실제로 어떤 이가 과학체험에 나온 소를 보고 눈물을 흘린다면, 들리지도 않을 텐데 티브이에 대고 피해자들을 응원을 한다면, 가슴 아픈 사연들로 시까지 쓰고 있다면 누군가는 ‘지나치다, 오글거린다, 과하다, 예민하다’ 등의 단어들로 그를 폄하할 수 있을 것이다. 몇 주 째 알바 하는 식당 사장님을 잊지 못해 그리움 속에 사는 나 역시 그렇게 치부될 수도 있다. 언제부터 누군가의 진지함이, 진심이 이렇게 쉬워진건지, 언제부터 감정이 부끄러운 게 되어버린 건지. 가혹한 세상이라, 나는 이 시의 화자와 심심한 위로나 주고받으려 한다. 오글거리는 사람끼리, 오글거리게.



보암보암?   
: 이모저모 살펴보아 짐작할 수 있는 겉모양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

감정과 느낌의 응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문화예술로부터
감정과 느낌이 가진 모습들을 평범하게, 동시에 독특하게 풀어내어
보암보암이란 이름처럼 따듯하고 몽글몽글한 글을 써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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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구글


[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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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  
  • Lieb
    • 오글거린다는 말을 그다지 깊이 생각해 본적이 없는데, 인상 깊게 글을 읽고 갑니다.
      친구에게 많이 했던 말인데, 앞으로는 좀 더 생각해보고 말해야 할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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