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한국과 서양의 두 신파가극을 감상하며 떠오른 단상들

글 입력 2017.06.12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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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서양의 두 신파가극을
감상하며 떠오른 단상들


글 -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지난 5월 19일과 6월 9일 3주 터울로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희귀 오페라 두 편을 감상했다. 김달성(1921-2010)의 1969년작 오페라 ‘자명고’와 푸치니(1858-1924)의 최초 성공작인 ‘마농 레스코’(1893)! 이 둘 사이의 접점이라면 완연한 신파조/감상조의 멜로디라인과 스토리라인을 들 수 있다. 고구려왕자 호동의 낙랑입성을 위해 자명고를 찢고 피살당하는 낙랑공주의 자기희생과 지고지순한 애인 데 그리외의 품에서 죽어가는 마농 레스코의 비참한 최후야말로 오페라란 장르가 그로 인해 비판받아온 전형적인 신파조의 피날레였다. 이 같은 퇴물조의 스토리라인에 부응하듯 두 오페라가 그려낸 음악문법 또한 구태의연한 눈물과 설탕버무림 일색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그처럼 눈물을 쥐어짜내는 구태의연한 감상조의 멜로디라인과 스토리라인이야말로 오페라란 장르만이 표백해낼 수 있는 극예술의 전형이란 생각도 들었다. 동서양의 시공간을 초월해서 흡사 한 편의 빈티지 영화를 보는 듯한 고전적 우미함을 이 두 편의 오페라는 관객 앞에 풀어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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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농 레스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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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명고



‘자명고’와 ‘마농 레스코’의 희귀성

1950년작인 현제명의 ‘춘향전’ 이래로 작곡된 수다한 한국의 창작오페라를 실연으로 만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김달성의 ‘자명고’ 또한 1969년 초연된 이래로 1985년의 재공연 이후로 이번이 세 번째 무대였다. 그만큼 희귀한 무대였다. 흡사 1960년대의 흑백 한국영화 한 편을 보는 듯한 당대만의 가사/대사 딕션과 애수조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 이색적인 체험이었다. 문득 이보다 3년 후에 뮌헨에서 초연된 윤이상의 ‘심청’ 독일어원전이 아직 한국초연도 되지 못한 기막힌 현실을 떠올리고 보니 이번 ‘자명고’의 32년 만의 귀환무대는 더욱 진귀하게 다가오는 감이 있었다.

같은 맥락에서 7년 만에 국내무대에 오른 푸치니의 출세작 ‘마농 레스코’ 또한 그 값어치를 헤아릴 수 없는 귀한 무대였다. 창단 26주년을 맞이한 글로리아 오페라단이 이탈리아 루카 시립 극장의 프로덕션을 들여와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무대에 올린 이번 ‘마농 레스코’는 필자의 유럽 체류 당시에도 구경한 적이 없는 희귀걸작 오페라였다. 남자주인공인 데 그리외를 부른 테너 다리오 디 비에트리의 기량이 함량미달인 감이 옥의 티였지만, 다른 캐스팅의 수준은 기대이상이었다. 이탈리아 오페라지휘의 대가 마르코 발데리의 비팅 또한 뉴서울 필과 훌륭한 조합을 이뤘다. 이번 글로리아 오페라단의 ‘마농 레스코’를 통해 나는 ‘라 보엠’과 ‘토스카’, ‘나비부인’, ‘일 트리티코’, ‘투란도트’를 뛰어넘는 푸치니 오페라예술의 선구적인 진취성이 무엇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것은 이전의 로시니와 도니체티, 벨리니, 베르디에게서는 도무지 보이지 않던 이탈리아 오페라만의 감상적인 신파성이었다. 그것은 같은 소재로 이 작품보다 9년 앞서 작곡된 마스네의 ‘마농’에서도 감지할 수 없는 푸치니만의 전매특허였다.

2021년을 개관목표로 지금 대한민국에서는 두 개의 오페라하우스가 건립예정에 있다. 부산오페라하우스와 춘천국제수상오페라하우스가 그것이다. 예정대로 이 두 개 오페라하우스가 완공된다면 대한민국의 오페라지형도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막강한 인프라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이 오페라전성기를 구가하게 되는 신천지가 열리게 될 그 날을 고대한다. 그 때에도 나는 이번의 ‘자명고’와 ‘마농 레스코’ 같은 희귀걸작 오페라들을 다수 부산과 춘천에서 대면할 수 있기를 염원한다.





김승열 (음악칼럼니스트)

-고전음악칼럼니스트.

월간 클래식음악잡지 <코다>,<안단테>,<프리뷰+>,<아이무지카>,<월간 음악세계> 및
예술의전당 월간지 [Beautiful Life], 인천종합문화예술회관 계간지 <아트인천>,
무크지 <아르스비테> 등에 기고했다.

파리에 5년 남짓 유학하면서 클래식/오페라 거장들의 무대를 수백편 관람한 고전음악 마니아다.

저서로는 <거장들의 유럽 클래식 무대>(2013/투티)가 있다.
현재 공공기관과 음악관련기관, 백화점 등지에서 클래식/오페라 강사로 활동 중이다. 




[ARTINSIGHT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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