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공.감.대] 감각06. 연인과의 대화 2

글 입력 2017.06.24 2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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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과의 대화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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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이 있다. 
보려는 사람, 보여주면 보는 사람, 그래도 보지 않는 사람이다."

- 레오나르도 다빈치 -


  4월, 문화역서울 284에서 <다빈치 코덱스 전>을 관람하고 전시구간에서 인상 깊게 보았던 문장을 인스타그램에 기록한 적 있다. 그날 연인은 게시물에 이런 댓글을 달았다. “그럼 나는 보여주지 않아도 기어이 보는 사람이고 싶어.” 저 짧은 문장을 보고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나 그의 순발력과 재치가 놀랍기도 하고, 잠깐 사이에 나름 의미를 담아보려 고민했을 모습을 그려보자니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참, 그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한편 의문이 생긴다. 무엇을 그렇게 기어이 보려 하는 것일까? 왜 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대놓고 ‘날 좀 알아주시오’하며 세상을 향해 발라당 드러누워도 그 뜻을 정확하게 알아먹는 사람 찾기란 정말이지.... 희박하지 않나. 두 눈을 부릅뜨고 있어도 볼 수 없고, 놓치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데.

  뭐, 그땐 그 정도로만 생각하고 그냥 잊어버렸다. 정확히는 내 회의주의가 옳다고 생각하고 넘겼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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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아티스트 Kersti K의 작품
(https://www.flickr.com/people/kersti_k/)


  어느 날이다. 아니, 사실 며칠 전. 3년 동안 해결되지 않고 나를 붙들고 늘어지던 집안일 문제로 나는 거의 영혼 전체가 잠식된 상태였다. 그러나 짐짓 괜찮은 척 했다. 정신이 반쯤 나간 채로 갑자기 빨래를 개고, 책상 정리를 하고, 쓰레기를 비우려 하면서 좁은 방을 비정상적으로 분주하게 왔다갔다 거렸다. 당장 해야 할 일들을 닥치는 대로 찾았다. 언제나 똑같은 건조대였고, 똑같은 책상이었고, 똑같은 쓰레기통이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유난히 모든 게 거슬렸다. 숨이 막혔다. 쾌적하게 잘 마른 옷가지들, 시험공부로 사방에 펼쳐져 있는 책과 종이들, 분리수거 된 쓰레기봉투 따위를 만질 때마다 뱃가죽이 떨렸다. 꾹꾹 참으면서 손에 닿는 것들을 제거했다. 감정을 통제할 줄도 모르는 내 자신이 마치 나로부터 나온 쓰레기인 것만 같았다. 휙휙 손이 닿는 무엇이든 시야에서 없애면서 나는 계속 나를 억누른다. 무언가를 죽이는 심정이었다.
  
  한참을 그랬다. 다 정리가 되고 나서도 나는 어쩔 줄 몰랐다. 계속 주변을 두리번거려야 할 것만 같았다. 내일 할 일이 뭔지, 모레 할 일이 뭔지, 냉장고에 다 떨어진 것이 뭔지 분주하게 생각했다. 그때, 내내 옆에서 지켜보며 내가 하는 것들을 조금씩 돕던 연인이 우두커니 멈춰 머리를 굴리고 있던 나를 안아줬다. 수고했다고. 그러자, 그 많은 울음이 어디에 있었던 건지 나는 터진 호스마냥 갑자기 엉엉 울며 걷잡을 수 없는 내 울음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도 조금 울었던 것 같다. 끌어안는 몸들이 각자의 슬픔을 쏟아내고 있었다. 피부로 전해지는 슬픔의 리듬. 서로의 눈물을 듣는다. 한참 만에 품에서 고개를 뗐을 때, 그의 가슴에서 내 눈물 냄새가 났다.

  “참지 말아줘. 표현해주고. 많이 얘기해주고. 나도 그럴게.”

  그때서야 4월, 그가 남겨준 글의 의미를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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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보여주지 않아도 기어이 보는 사람이고 싶어."


  그가 원했던 것은 ‘보여주지 않아도 기필코 보고야 말겠다는 것’이 아니다. 무게중심은 ‘그러고 싶다’에 있었다. 싶은 마음. 그러니 도와달라는 마음. 보이지 않아도 곁에 있을 테니 어떻게든 보여주길 바라는 마음. 더 묻지 않고 순진하다 여겼던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는 이미 알고 있는 사람이다. 본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얼마나 먼가도 아는 사람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더 ‘보는 것’이다. 결과에 따라 그것이 황망한 시선이 될지언정 일단은 거기에 마음을 두는 것. 그럼에도 가닿고 싶으니까. 침묵과, 거절과, 뒷모습과, 한숨과, 외면 너머의 가려진 얼굴을 이리로 돌려서 눈빛이라도 확인하고 싶으니까.

  울음이 잦아들고 나는 콧물을 훌쩍이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따뜻한 물을 헤엄치는 기분이었다. 고통 속에 풍덩 잠겨 있던 몸이 상처의 수면 위로 올라와 둥둥 떠올랐다. 그리고 내 곁에 있는 남자의 손을 잡는다. 그랬을 뿐인데, 고맙다, 라는 말이 돌아온다. 일렁이는 따뜻한 파도. 내 눈은 거의 대부분, 생의 허무로 서늘해진 그늘 속에서만 머문다. 나무 그림자가 보인다는 것은 그 바로 옆에 나무가 있다는 것을 증명한다. 따라서 어두운 그늘을 직시하는 것이야 말로 존재를 자각하는 가장 유일한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연인은 조금 달랐다. 그는 조금 떨어져서 그늘과 나무와 햇빛 전부를 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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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만하다는 소리를 자주 들었을 만큼 유독 주변에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좀처럼 쉽게 뭘 지나치지 못한다. 명백하게 벌어진 어떤 일에 대해서 그가 입을 열지 않았다는 것은 눈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자신이 나설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 정도로 그의 눈은 넓게 열려있다. 이런 성격들을 대체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몰랐었다. 단지 따뜻하다? 뜨겁다? 관심이 많다? 음, 모든 살아있는 기척에 예민해지는 사람, 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지 않을까.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있다. 보여주지 않아도, 보는 사람이고 싶은 사람. 그림자를 좇아 땅에 고개를 박고 걷던 내 습관이 점점 연해진다. 기울었던 시선이 위로, 좀 더 위로, 조금씩 더 올라오고 있다. 천천히. 나도 모르게.


[김해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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