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과거와 사랑에 빠지다 [음악]

글 입력 2017.07.06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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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 야마구치 모모에 와 이상은의 무대를 보면서, 일찍 자려던 잠은 이미 늦어버리게 되었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의 무대이지만 나는 어느새 그들의 카리스마에 매료되고 있었다.

TV에서나 가끔 보았던 그들의 나이 든 모습 때문에, 나는 그들이 '옛날 사람'이라는 편견에 둘러싸여 있었다. 당연히 촌스러울 것으로 생각했고, 그때의 문화는 찾아보려 하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우연히, TV에 나오는 80년대 후와 90년대 초에 활동했던 (그때는 그렇게 부르지 않았지만) '아이돌'의 모습을 본 순간 작은 충격을 받았다. 지금 활동하고 있는 아이돌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외모와 분위기, 지금에도 촌스럽지 않은 노래와 무대. 어느새 편견에 둘러싸여서 지금 시대의 문화가 제일 발전한 것이라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더 관심을 두고 찾아보면 볼수록 나는 그들에게 빠지게 되었고, 어느새 그들은 나의 '아이돌'이 되었다.

내가 가졌던 생각과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특히 내 나잇대(90년대 후반에 태어난 세대)와 그 이후로는 말이다. 그때의 문화 속에 살았던 사람들이 본다면 우습겠지만, 그러한 '아이돌'들을 조금이나마 소개하면서 그러한 생각들, 편견들에 대한 조금이나마 새로운 경험, 넓은 시야를 제공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 이지연

대표적 히트곡인 2집의 '바람아 멈추어다오'


대한민국 여자 아이돌 솔로 가수의 시조 격이라고 할 수 있는 분이다. 지금 아이돌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을 가창력이지만, 당시에는 외모만을 앞세웠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한민국에서 최초로 여자 아이돌 팬덤의 형태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3집 활동 중에 쉴 틈 없는 스케줄과 각종 루머들로 힘들어하던 그녀는 미국 활동 중에 그대로 결혼을 하고 잠적하고 만다. 1992년에 다시 한국에 귀국하여, 4집 활동을 발표했지만 남자 팬들은 이지연을 '남자와 야반도주해서 미국에서 결혼하고 돌아왔다'고 보았고, 결국 4집은 완전히 실패하고 말았다. 대중의 싸늘한 반응에 염증을 내면서 그녀는 그대로 연예계를 은퇴하였다.




* 강수지

대표곡 중 하나이자 데뷔곡인 '보라빛 향기'


아직도 청순의 대명사로 불리는 분. 최근에는 방송 출연과 김국진과의 열애로 인해 다시 매체에 등장하고 있다. 1981년 미국 뉴욕에 이민을 갔었고, 1988년에 대학가요제 미국 동부지역 금상을 받았다. 그 후 1년 뒤에 윤상의 프로듀싱 하에 '보라빛 향기'라는 앨범으로 데뷔한다. 그 후 90년대 초반 청순가련함의 대명사로 불리며, '아이돌'이라 하기에 부족함이 없을 인기를 가진다. 3집부터는 이전의 인기만큼은 아니지만, 나쁘지 않은 반응으로 활동을 계속 이어나간다. 2002년 10집 발표 이후 2009년까지는 잠시 사업을 시작했으나, 현재는 다시 가수 겸 방송인이다.




* 하수빈

데뷔곡이자 리즈시절의 곡이라 할 수 있는 '노노노노노' 이 무대가 데뷔 무대이다.


강수지, 이지연과 더불어 90년대 초반 청순가련형의 여자 아이돌이며, 정점을 찍었던 분이라 할 수 있다. 청아한 목소리와 청순한 얼굴로 2년 주기마다 이어지던 선배 가수 이지연, 강수지의 계보를 잇는 청순 여가수로, 방송계와 언론으로부터 알프스 소녀, 무공해 소녀가수라는 별칭을 얻었다. 여가수가 많지 않던 1990년대 초 10대 소녀가수로 큰 주목을 받았는데, 10대 남학생 팬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얻었지만 반면 10대 여학생들에게는 절대적인 시기와 미움을 받았다. 1993년 2집을 내고, 이후 유학을 떠나 건축을 공부하고 발리에서 리조트 사업을 하기도 한다. 2010년에 3집을 발매했다.




* 이상은



데뷔곡이자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담다디'. 첫번째 동영상이 1988년 강변가요제 데뷔영상이다.


1988년 강변가요제에서 '담다디'로 대상을 수상하며 데뷔하였고, 엄청난 인기를 얻게 된다. 이상은의 등장과 동시에 전국에는 담다디 열풍이 불었다. 아직까지도 누구나 들으면 바로 알 정도이기에, 당시의 인기는 엄청났다는 것을 알 수 잇다. 또한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톰보이, 선머슴과 캐릭터는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원조 걸 크러시라고도 불리며, 당시 178cm의 큰 키와 보이시한 매력으로 여학생들의 상당한 지지를 받았다. 가요제 출신이면서도 아이돌이라고 불리는 가수는 드물었는데, 이상은이 바로 그렇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후 회사들에 의해 '상품'이 된 것만 같은 자신의 모습에 공허함과 회의감을 느끼고 아이돌이라는 것을 내려놓은 채 유학을 떠난다. 이후 자신이 직접 작사, 작곡한 곡들을 발표하며 자신만의 음악 세계를 구축해나간다. 현재는 아이돌 스타에서 오로지 자신의 의지만으로 아티스트로 등극한 모범적인 사례로 꼽힌다. 아티스트 이상은으로 낸 노래 중 '언젠가는'과 '비밀의 화원'은 누구나 한번 쯤 들어봤을 정도로 대중적으로도 성공하였다.




* 김완선


인기를 끌었던 '리듬속에 그 춤을'



김완선의 대표곡이라고 할 수 있는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아이돌 댄스 가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90년대 초반에는 장르를 넘어 한국 여성가요계를 완전히 평정한 '인기 원톱 여가수'라고 할 수 있다. 1986년 데뷔를 하면서, 그녀의 춤과 퍼포먼스는 당시에 파격적이었고 '한국의 마돈나'라는 수식어를 얻게 된다. 이후 90년대 초반에 최전성기를 누리게 된다. 그러나 1992년 6집 이후 은퇴 선언을 한 후 대만에서 활동하였다. 한국으로 컴백 선언 후 1996년 말에 7집을 발표하였고 이후 활동을 이어나갔지만 빚과 소송 문제를 겪었으며 2005년에 9집을 발표하였지만 이전과는 너무 간격이 큰 음악에 성공하지 못하였다. 2006년 유학하였으며, 2011년 이후 음악 활동을 재개하였다.






'한국 아이돌'이라 하면, 연예 기획사에 소속되어 솔로 혹은 그룹으로 활동하는 이들을 말한다. 그렇지만 '아이돌'의 사전적 의미는 "우상"이다. 껄끄럽게 들릴지는 몰라도, 아이돌이라는 것은 선망의 대상이자 경배의 대상인 것이다.

현시대에서는 기획사들이 소비자의 입맛에 맞게 공장처럼 아이돌을 '찍어낸다'. 이와 다르게, 그 한 사람의 매력에 빠져들고 그 카리스마에 매료되는 이전 시대의 '아이돌'들을 보면서, 나는 그들이 아이돌이라는 의미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전 시대가 좋다, 지금 시대가 좋다 라고 따질 것 없이 연예계의 아이돌은 어디까지나 소비의 대상이고, 그저 시대마다 나타나는 특징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양산형으로 우후죽순 생겨나는 현재의 아이돌 시장보다는 이전 시대의 그 개개인의 매력들에 가끔 더 빠지게 되고는 한다.


[이현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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