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세일즈맨의 죽음 > : 어른이 되지 못한 노인의 비극 [문학]

글 입력 2017.07.06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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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일즈맨의 죽음 >
-어른이 되지 못한 노인의 비극


  흔히들 말한다. 어른이 된다는 건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라고. 그리고 내가 중심이 아닌 세상은 나와는 무관하게 그 궤도를 따라 흘러갈 뿐이라고. 자의식을 가지고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겐 인정하기 쉽지 않은 명제이지만, 어쩌면 가장 냉철한 현실이기도 하다. (사람에 따라 저 명제에 동의하지 않기도 하겠지만) 위 명제에 따라, 우리는 세상의 중심은 여전히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어른이 되지 못한 노인을 하나 만날 수 있다.


세일즈맨의 죽음.jpg
  
 아서 밀러 < 세일즈맨의 죽음 >


  인기 있고 유능했던 외판원 ‘윌리 로오먼(이하 윌리)’은 과거의 명성과는 달리 수입도 없는 초라한 모습의 60대 노인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재기에 대한 꿈을 꾸고 있고, 잘나고 인기 있는 두 아들의 청사진을 그리며 낙관적인 미래가 도래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이미 외판원으로 그를 인정해주던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으며, 예전에 자신이 이름을 지어주었던 하워드 와그너마저도 그를 해고하기에 이른다. 또한, 그가 자랑스럽게 여겼던 큰아들 비프는 수학 시험 낙제 이후 이곳저곳을 전전하며 제대로 된 직업 없이 살다가, 빌 올리버에 돈을 빌려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보고자 했지만, 그에게 무시당하고 만다. 윌리의 둘째 아들 해피는 여색을 밝히며 한심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건달이다. 심지어 윌리가 저급하게 여겼던 친구 차알리와 그의 아들 버너드 보다 윌리 부자의 삶은 초라하다. 극의 후반부, 자신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던 아들을 향한 윌리의 청사진이 무너지자, 그는 항상 본받고자 했던 그의 형 벤의 환상을 좇다가 자살하게 되고, 그의 죽음의 값은 2만 3천 달러로 매겨지게 된다. 그리고 그의 예상과는 달리 그의 장례식은 조촐하고 쓸쓸하게 치러지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윌리는 세상이 자신을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그는 과거에는 실적을 올려 회사에서도 인정받았고, 자신을 반가워해 주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충만한 삶을 살았었다. 또한, 서사시의 영웅들처럼 수려한 외모와 훌륭한 능력을 갖춘 자식들은 그의 자랑거리였고, 그는 자식들이 자신 못지않게 크게 성공한 삶을 살아가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평범한 부자(父子)였던 친구 차알리와 그의 아들 버나드를 무시하며 윌리는 그와 그의 아들들은 비범인(非凡人)이라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고, 그는 능력 있는 외판원이 아닌 월급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소시민일 뿐이었고, 자랑스러워했던 자식들 또한 그의 기대와는 달리 한심한 삶을 이어나가고 있었다. 차알리의 부자는 윌리의 부자보다 훨씬 성공한 삶을 살고 있었으며 윌리의 삶은 궁핍했다. 하지만 윌리는 과거의 영광에 사로잡혀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여전히 윌리에겐 세상의 중심이 자신이라는 확신이 있기 때문에 그는 객관적으로 가망이 없어 보이는 일들(그 일례로, 하워드를 통해 본사에서 일할 수 있게 되는 것)에 큰 희망을 품으며 낙관적인 미래를 그린다. 그리고 그가 그의 삶에 의문을 품을 때마다 그가 설정한 역할모델인 윌리의 형 벤의 환상이 그의 자의식을 고취한다. 그의 아들들 또한 마찬가지다. 그런 윌리에게 길러진 비프와 해피 모두 자신들에게 성공의 잠재력이 있다고 과신하며 단꿈에 젖어 현실을 직시하지 못한다. 하지만 비프는 빌 올리버에게 무시당한 이후, 하늘을 보며 자신은 ‘열두 개에 1달러짜리 싸구려’라는 것을, 즉 소시민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비프와 달리 해피의 경우는 결말부에서도 꿈에 사로잡혀있다.)
 
  하지만 윌리는 허황된 꿈을 버리지 못하며 여전히 자신과 제 아들들이 세상의 중심이며 주인공이라 여기며,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래서 그의 죽음은 가족을 위해 희생하려는 가장의 모습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그의 역할모델인 벤의 목소리에 따라 자살한 것으로 보아 세상의 주인공으로서의 자신을 끝까지 인정받으려는 윌리의 집착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어른이 된다는 건 세상의 중심이 ‘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 과정이라고 할 때, 윌리는 생물학적으로는 노인이지만 ‘진정한 어른’이 되지는 못한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자넨 언제 어른이 되려나?”라는 윌리를 향한 차알리의 물음도 이해할 수 있다.


  윌리가 심는 씨앗은 그의 자의식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씨앗은 아직 발아되지 않은 가능성으로 ‘희망’이라는 원형적 이미지를 지닌다. 즉 윌리는 그 자신과 두 아들이 아직 발아되지 않은 씨앗이며 이후 씨앗을 뿌린 땅에서 홍당무와 사탕무우가 자라기를 기대하듯, 자신과 아들들의 인생도 아름답게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이미 세상의 중심은 내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나에겐, 그리고 많은 어른들에겐 60대 노인이지만 어른이 되지 못한 윌리는 미련하고 현실감 없어 보이는 인물이다. 하지만 차알리의 말대로 아무도 그를 나무랄 수는 없다. ‘반짝거리는 구두에다 미소를 지으며 저 멀리 푸른 하늘 밑을 달리는, 외판원으로서의 꿈을 평생토록 간직한 그’는 그저 희망찬 내일을 꿈꾼 그리고 그 꿈으로 인해 행복을 맛보았던, 순수한 인간이다. 또한, 그의 자의식은 지나치게 이상적이지만, 본인에 대한 충만한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낙관적 전망은 현실을 살아가는 나와 같은 ‘어른’들에게 큰 귀감이 될 것이다.


“ 난 그런 싸구려는 아니다. 난 윌리 로오먼야.”


[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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