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오늘이 유난히 길었을 아마추어를 위해 [문학]

글 입력 2017.07.19 1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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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규’라는 작가를 처음 접하게 됐던 것은 사회학과 수업을 통해서였다. 당시 나는 미디어니, 커뮤니케이션이니 하는 전공 이론들에 지쳐있었고, 종이로 배움을 얻는 것이 아니라 삶과 밀접하게 영향을 맺고 있는 실용적인 것들을 알고 싶었다. 머리가 아닌 직접적으로 생활에 적용시킬 수 있는, 그래서 생각의 폭을 넓힐 수 있는 그런 지식들. 물론 이상적이지만, 그 때는 그랬다.
 
익숙하지 않았던 타과 수업에서는 ‘사회학과’라는 학과명처럼 우리가 매 느끼면서도 깊이 고민해보지 못했던 문제들을 다루고 있었고, ‘문학예술사회사’라는 강의명에 걸맞게 ‘문학 속에 담긴 병폐적인 사회 구조’에 대해서 하나씩 짚어나갔다. 그리고 나는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매주 교수님이 언급한 소설들을 읽었고, 그러던 중 박민규의 소설을 알게 되었으며, 그리고 그와는 상관없게도, 또한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그의 문장들을 사랑하게 되었다. 분명히 암담한 현실을 이야기하면서도 묵직하지만은 않게 풀어내는 능력은 그만이 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처럼 여겨지기도 했다.
 
이를 시작으로 나는 학교 도서관에서 단편집을 찾아 읽고, 이효석문학상 작품집을 빌리곤 했지만, 정작 그의 데뷔작이자 대표작인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었다. 그 이유를 ‘야구에 관심이 없어서’라고 이야기하면 단지 얄팍한 핑계같지만, 여하튼 정말로 나는 그랬다. 운동신경이라면 애초부터 바닥을 기고 있었고, ‘야구’라고 하면 중학교 체육시간 때 했던 발야구가 마지막이었으며, 심지어 야구를 하는 방법조차 제대로 알지 못했다. 나와 달리 야구를 좋아하던 오빠는, 초등학생이던 내게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을 보여주겠다며 보러가자고 했었는데, 단칼에 거절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을 정도이다. 물론 네티즌 평점을 보아도, 리뷰를 보아도 어린 나에게 무시 받을 작품은 절대 아니지만, 그 때의 나는 영화의 작품성보다도 흥미를 제일 처음 따질 나이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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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이 길었다. 본론을 이야기하자면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은 야구에 대한 큰 전문 지식이 필요하지 않았고, 표절이라는 얼룩이 남긴 했지만 그럼에도 나를 웃고 울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더 엄밀하게 말하자면 이 작품은 오늘 하루도 버겁게 지냈을, 인생에서 1할 2푼 5리를 겨우 쳐내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메시지와 같았다.
 
작품 속에서 ‘삼미 야구팀’은 한국에서 프로야구가 시작되면서 위풍당당하게 프로의 세계에 뛰어든 인천의 야구팀이다. 그리고, 첫 포부는 누구나 그렇듯 승리를 향한 희망과 사람들의 전폭적인 관심으로 찬란하게 빛났지만, 끝에는 누구도 깨지 못할 처참한 연패로 3년 만에 씁쓸하게 마무리했던 팀이었다. 오죽하면 기록적인 패배로 소설 속 인물의 성격이 바뀌며, 그 팀을 응원한다는 이유로 다른 ‘짱짱한’ 팀의 팬들의 눈치를 봐야 했고, 중립을 요하는 해설자들도 온갖 조롱을 일삼을 정도였을까. 3년의 시간이 지나 팀의 해단식에서 선수들은 부족한 팀을 위해 와준 팬들의 손을 잡으며 ‘고맙다’, ‘마지막인 만큼 최선을 다 하겠다’고 이야기하지만 어김없이 상대팀에게 대패를 당한다. 결국 끝까지 ‘삼미다웠던’ 결말이었던 것이다.
 
프로의 세계에서 아마추어 ‘삼미 야구팀’이 겪어야 했던 시련을 통해 결국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는, 아마추어로 낙인찍히며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다. 실제로 프로야구를 시초로 흔히 쓰이기 시작했던 ‘프로’라는 말은 마력과도 같아서, 모든 일을 견디고 참아내야 하는 것을 당연시 만들었다. ‘우승’이 목표이던 프로야구의 세계에서는 몸을 혹사시킨다한들 공을 하나라도 더 잡는 것이 중요했고, 이에 ‘잡을 공은 잡고 아니면 말고’ 식의 삼미 야구팀은 당연하게도 사람들의 비웃음을 당했으며, 궁극적인 메시지는 ‘도태되기 싫다면 할 수 있는 것은 뭐든지 다 하는 것이 사회인이 가져야할 태도’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프로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삼미 슈퍼스타즈가 조롱거리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나는 자본주의를 사랑했다. 이유는 단순했다. 먹고 살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가진 것 없이도, 투자가 없이도 노력으로 먹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근사한 일인가. 누구에게나 사는 건 마찬가지다. 재미없고, 힘들다. 또 바보가 아니라면, 세상을 더 이상 재미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어른이 되면서 알게 된다. 자본주의를 비판하던 철부지들도, 물신 풍조를 우려하던 몽상가들도, 때가 되면 자신의 손으로
먹고
살아야 한다.
 
이처럼 프로들이 뛰고 있는 야구는 현실적이었고, 더욱 냉정한 것은 인생도 야구와 비슷하다는 점이었다. 어린 ‘나’는 소속과 계급을 중시하는 사람들을 보며 아이러니함을 느꼈지만, 그토록 바라던 졸업을 하고 사회에 뛰어들었을 때는 결국 자신도 이해할 수 없던 세상 속으로 발을 디디게 된다. 삼미 슈퍼스타즈의 팬이 되었고, 다사다난한 팬질(?)을 통해 어린 나이에 삶의 교훈 같은 것들을 깨닫고, 아빠의 말처럼 일류대를 합격하고, 첫사랑을 만나 울고 웃고, 그랬던 첫사랑이 결혼을 하고, 자신도 결혼을 하고, 회사생활을 시작함과 동시에 완전한 어른이 되어버린다. 회사에 충성을 다하는 대신 정작 가정에 결근과 지각을 밥 먹듯이 했고, 아파도 몸보다 회사를 먼저 생각하는. 즉, 어린 시절 자신이 의아하게 생각했던 ‘프로’가 되기 위해서, 다른 사람보다 못한 삶을 살지 않기 위해 이혼을 당하면서까지 일에 빠져 살았던 것이다. 하지만 이미 다른 사람들도 아마추어가 되지 않기 위해 매일을 발버둥치고 있었고, 국가적으로 혼란한 경제위기가 닥치면서 그는 모든 것이라고 생각했던 회사를 그만두게 된다. 점 하나에 완전히 다른 글자가 되는 것처럼, 그리고 누구든 간에 친해지는 데 걸리는 시간에 비해 멀어지는 일은 훨씬 쉬운 것처럼, 회사에 바친 모든 노고에 비해 남이 되는 일은 필요 이상으로 간단하고 허탈하다.
 
모든 시간을 일에 매달렸으니,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과도 같았던 그에게 하나의 구원이 되어주었던 것이 뜬금없고 놀랍게도 또 다시 ‘삼미 슈퍼스타즈’였다. 함께 삼미를 응원했던 친구 성훈과 다시 재회하고, 삼미가 추구하고자 했던 야구의 의미를 이해하고, 공통분모라곤 없는 사람들을 만나 그런 삼미의 마지막 팬클럽을 만들고, 큰 고민 없이 좋은 사람들과 웃으며 좋아하는 일을 하며 보내는 시간들을 통해 ‘나’는 행복에 관해 놓치고 있던 진리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열등하고 부족했던 ‘삼미 슈퍼스타즈’는 단순히 야구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에게는 상처이자, 돌파구이자, 모든 삶을 아우르는 하나의 매개체 자체가 되어주었다.
 
사실 작품에서 나타난 것처럼, 세기말부터 시작된 치열함은 지금까지도 진행되고 있다. 여전히 죽을 둥 살 둥 노력해야만 겨우 평범해질 수 있고, 개인주의는 극대화되고 있으며, 사실 앞으로 이러한 흐름이 더 완화될지, 심화될지조차 확신할 수 없다. 그리고 이러한 세상 속에서 나는 과연 프로인가, 아마추어인가, 그리고 중산층이냐, 서민층이냐, 아니면 그 축에도 끼지 못하는 화석층이냐에 대해서 고민해보면 여전히 쉽게 답할 수 없다는 것은 암담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하지만 소설은 어두운 현실이 아니라, 어두운 현실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바라볼 줄 아는 올바른 시선을 이야기하고 있다. 모두가 다른 모습으로, 각기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지만 작가는 그전에 앞서 스스로에게 ‘왜?’라는 물음을 던져볼 것을 권한다. 무엇을 위해서 열심히 살고, 그렇게 산다면 앞으로의 자신은 행복할 수 있을 것인지와 같은 것들은 역시나 이상적이지만, 그럼에도 빼먹어서는 안 될 근본적인 질문들이다. 우리는 모두 발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지만, 속도에 갇혀 정작 중요한 풍경들은 망각하기가 쉽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싶어 별 다른 대책 없이 회사에 사표를 내고 빚을 내어 노트북을 샀다던 작가처럼, 다른 팀과 달리 오롯이 ‘마이 웨이’를 고집했던 삼미 슈퍼스타즈처럼, 우리에게는 온전한 나의 행복을 위한 용기와 여유가 필요하다. 작가는 작가의 말에서 ‘관건은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 뛰지 않는 것. 속지 않는 것. 찬찬히 들여다보고, 행동하는 것. 피곤하게 살기는, 놈들도 마찬가지다. 속지 않고 즐겁게 사는 일만이, 우리의 관건이다. 어차피, 지구도 멸망한다.’ 고 이야기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할까.
 
이처럼 우리는 사람에 치이고, 일에 치이고, 공부에 치이기 이전에 스스로가 행복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멀리서 찾을 것이 아니라 물론 나부터도. 매일 매일이 휴일이고 알고 보면 시간은 넘쳐흐르는 것이니, 소설 속 “지면 어때?”하는 명확하고도 간결한 성훈의 말 한마디가 큰 위로로 다가와줄 것이다.
 

[나예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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