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불길 속의 너와 나 : 내 눈 안의 너 [문학]

글 입력 2017.07.19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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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아직 사랑에 대해 잘 모른다. 숱한 노래 가사들과 문학이, 혹은 드라마와 영화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나는 아직 사랑에 대해 정의내릴 수 없다. 사랑이란 무엇일까, 종일 머릿속에 맴돌기도,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우게 만들기도, 지독히 아프게 찌르기도 하는, 그것.

 프랑스의 철학자 롤랑 바르트는 ‘사랑의 단상’이라는 책에서 무려 342페이지에 걸쳐 사랑에 대해 논했다고 한다. 그만큼 사랑은 쉽게 정의내릴 수 없다. 하지만 단 한 가지 명확한 것이 있다. 사랑에 빠진 나의 눈은 너로 가득 차 있다.



Bastien Vives, 바스티앙 비베스


  바스티앙 비베스는 프랑스의 작가 겸 일러스트레이터이다. 22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그녀(들)’로 데뷔를 한 이후, ‘염소의 맛’, ‘폴리나’, ‘사랑은 혈투’ 등 다양한 작품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그의 작품에는 많은 대사가 등장하지 않지만, 세밀한 묘사를 통해 미묘한 감정변화를 보여준다. 특히나 여성의 감정과 심리를 굉장히 세밀하게 표현하는데, 이는 평소 여성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멀리서 관찰하던 그의 과거에 근간을 두고 있다. 그는 열다섯이 되도록 여성과 말 한 번 섞어보지 못했다고 한다. 대신 멀리서 여성의 제스처와 태도를 관찰했다고 하는데, 그를 통해 섬세하고 미묘한 감정표현이 가능하게 되었다.

 수영장 염소의 맛처럼 쌉싸름한 사랑의 맛을 깨달아가는 소년을 그려낸 ‘염소의 맛’, 6살  발레 소녀의 정신적 고통을 다룬 ‘폴리나’, 인간 내면의 다양한 심리를 드러낸 ‘라스트 맨’등, 그의 작품은 감정을 섬세하게 표현했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는 곧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 냈다. SNS상에서도 이따금씩 그의 작품을 만나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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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앙 비베스, 사랑은 혈투 中

  
 그의 그림 스타일은 한 곳에 한정되어 있지 않다. 색연필을 통해 거친 느낌의 그림을 그리기도, 깔끔한 일러스트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기도 하며, 색채의 사용에 있어서도 다양한 방식을 구현한다. 주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작품 ‘라스트 맨’에서는 일본 망가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그는 대중의 사랑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안전한 선택을 하는 대신, 자신이 그리고 싶은 소재와 이야기로 새로운 도전을 이어나간다. 또한 그는 소통하는 작가가 되기 위해, 작품을 출판하는 것 외에 개인 블로그에 작품을 기고하기도 한다. 바스티앙 비베스는 이렇듯 도전하고 소통하는 젊은 작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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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앙 비베스, 바스티앙 비베스 블로그 中



In My Eyes, 내 눈 안의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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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스티앙 비베스 - 내 눈안의 너 , 2013


 ‘내 눈 안의 너’는 다소 실험적인 도전을 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내 시선 속에 담긴 '너'만 등장한다. 대학교 시험기간, 도서관 앞자리에 앉은 너는, 나의 시선을 느끼곤 '왜 자꾸 쳐다보세요?'라 물어왔다. 그 질문이 있은 후로 우리는 급격하게 가까워졌고, 함께 공부를 하기도, 함께 밥을 먹기도 했다. 어느 날 나는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무작정 너의 강의실 앞으로 향했고, 그날 함께 갔던 영화관에서 키스를 나눈 후 우리는 사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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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우리는 평생 사랑했을까? 아니다. 미성숙한 너와 나는 서로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헤어지게 되었다. 함께 밤을 보낸 후 헤어지자며 떠나가는 너에게, 나는 고작 '좀 더 있다가 첫차 타고 가.'라는 말밖에 건네지 못했다. 서툴고 미숙한 우리는 그렇게 헤어지게 되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오롯이 내 눈에 담긴 '너'만 등장한다는 것이다. 1인칭 시점을 통해, 오로지 나의 시선을 통해서만 이야기가 전개된다. 나의 얼굴이며 대사, 생각, 심지어 성별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녀의 말과 행동, 미세한 표정 변화를 보고 있노라면 사랑에 빠진 나의 감정이 고스란히 느껴질 것이다. 책에는 나와 너의 이름조차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누구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지금의, 혹은 그 시절의 '나'이고 '너'였기 때문이다.



사랑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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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상이 무엇이 되었든, 사랑에 빠진 나에겐 너밖에 보이지 않는다. 사랑에 눈이 멀었다 표현도 있지 않은가. 사랑할 때면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되고, 보고 있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를 나타내듯 작품 속에서는 너를 제외한 모든 것들이 초점을 잃은 듯 흐릿하게 보인다.

 사랑은 흔히 ‘콩깍지’라고 말하는 왜곡된 시각을 선사한다. 때문에 상대방의 모든 것이 아름답고 사랑스러워 보인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이면서 사적인 시각이다. 콩깍지가 벗겨지는 순간, 그토록 사랑스럽던 너의 모습이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 작품 속 너는 한결같이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이는 내가 사랑했던, 내 눈 안의 너이다. 실제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는 사랑에 빠진 나로서는 도통 알 수 없는 문제이다.

 사랑은 많은 것을 가능하게 한다. 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시작되는 사랑은 곧 너의 모든 것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진다. 작품 속 그녀는 나에게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어린이 책’을 선물한다. 나는 그 어린이 책에 푹 빠져, 지하철 속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느끼지도 못한 채 그 책을 읽고 또 읽었다. 정말 그 책이 좋았던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확실한 건 너가 좋아하기 때문에, 나도 좋아하게 됐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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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에게도 이러한 경험이 있었다. 힙합 노래만 주구장창 듣던 나는 너로 인해 발라드 음악을 듣기 시작했었다. 이렇듯 이 작품은 우리가 겪은 한 때의, 혹은 지금의 사랑을 떠올리게 한다. 곧 열병처럼 앓았던 한때의 사랑에 동화될 것이다. 언젠가 우리는 눈 속에 담긴 사랑스러운 너를 본 적이 있었을 것이며, 반대로 누군가의 눈에 담겨본 적이 있을 것이다. 사랑의 시작과 끝을 경험해보았기 때문에, 사랑에 빠진 나의 시선에, 그 감정에 동화될 것이다.

 지금의 나와 지나온 시간의 나는 다른 사랑을 하고, 다른 생각을 한다. 그 때문인지 이 작품을 접할 때마다 다른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어떠한 순간의, 그 모든 ‘너’와 ‘나’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작품에 이름이 등장하지 않는 것이 큰 의미를 갖지 않나 생각된다. 이 작품은 그렇게 그들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 우리의 사랑을 보여준다.

 사랑은 불길 속을 함께 걸어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 불은 담뱃불 마냥 아스라이 타오를 수도, 주변을 집어 삼킬 듯이 활활 타오를 수도 있을 것이다. 기분 좋은 따뜻함을 유지하며 오랜 시간 타오를 수도, 불어오는 바람에 꺼져버릴 수도, 주변을 다 태워 재만 남길 수도 있지만, 불길에 둘러싸인 동안 우리는 오롯이 서로만 보일 것이다. 언젠가 불이 꺼지고 연기가 걷히면 그 시선이 더 이상 서로를 향하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이 사랑하고 있는 동안, 내 눈 안의 너를 위해 매순간 최선을 다 해야 하는 이유이다.

 
바스티앙 비베스 블로그





이미지 출처 - 네이버 이미지, 미메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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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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