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 빈 집 > : 진정한 자아의 부재 [문학]

글 입력 2017.07.23 2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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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빈 집 >
-진정한 자아의 부재


  ‘집’은 비어있었다. 그녀와 남편 모두 집에 있었지만 ‘집’은 비어있었다. 보편적이지도 정상적이지도 않은 두 인물을 이해하고, 또 제목이 함의하고 있는 바를 찾아내는 것에 골머리를 앓고 있던 필자가 소설을 두 번 읽고 나서야 내릴 수 있었던 나름대로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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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 빈 집 >


  ‘생의 모든 고난들이, 사소한 말썽들이, 해소되지 못한 불만과 욕구들이 차근차근 집으로들 돌아오고 있었다. 그리하여 방과 거실과 욕실과 옷장과 신발장과 찬장 속에 재활용 박스와 쓰레기봉투 속에 차곡차곡 쌓여지거나 쟁여지기 위해, 그러니까 모든 사람들의 스위트 홈으로.’(빈집 본문 중)

  소설 속 주인공인 ‘그녀’가 밤의 전경을 보며 깨달은 것은 집은 외부로부터 받은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내려놓고 자신 본연의 모습을 드러낼 수 있는 ‘심신상의 보호처’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소설의 서사 속에서 그녀와 남편의 공간인 집은 진정한 의미의 ‘집’이 되지 못하였다. 두 사람은 물리적으로는 한 공간에서 27년간을 함께했으나, 심리적으론 다른 세계 안에서 비밀을 간직한 채 살아왔다.

  아내의 비밀은 남편에 대한 ‘경멸’이다. 그녀는 지금까지의 남편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고 심지어 경멸했음에도 그녀의 심리를 남편에게 단 한 번도 들키지 않았다. 그저 보통의 부부처럼 일상적인 생활을 영위했을 뿐이었다. 그녀에게 집은 그녀 자아의 진정한 모습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는 공간이었던 것이다. 그녀에게 진정한 의미의 집은 ‘화물차’가 대신해 주었다. 그녀는 화물차에 앉아 자신이 남편을 경멸함과 동시에 사랑했다는 것을 깨닫는데, 물리적인 집에서는 27년 동안 깨닫지 못했던 그녀의 진심이 ‘세상 전체의 비밀이라도 너끈히 실을 수 있을 것 같은’ 화물트럭 안에서 드러나게 된 것이다.

  반면, 남편에게 진정한 의미의 집은 영천집이다. 그는 아내의 시선으론, 돈도 취미도 없는 ‘좀생이’같은 인물이며, 비밀 따윈 없는 범인(凡人)이었다. 하지만 물리적인 집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남편의 비밀은 그의 고모부가 남겨주신 영천집에서 드러난다. 그는 이사 고객들의 열쇠를 은밀하게 모으고 있었고, 현실의 제약으로 쓰레기통에 묻어야만 했던 그의 개도 영천집에서 그의 비밀을 지키고 있었다. 영천집 안에서의 남편은 아내의 생각과는 달리 폭력적이고 비정상적인 모습을 보였으며 한마디로 영천집은 ‘신이 존재하지 않는 그만의 세계’였다.


  즉, 두 사람이 그들의 물리적인 집에서 보여주는 모습은 진정한 의미의 자아가 아니었으며 그들은 비밀을 간직한 채 각자의 세계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기에 그 두 사람은 서로의 비밀은 깨닫지 못한 채, 두 사람의 공간인 집에서는 평범한 배우자로 가장하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제목의 의미는 실제론 부부의 거주공간이지만, 그들의 진정한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 ‘빈 집’을 뜻하는 게 아닐까. 그렇기에 그녀와 남편 모두 집에 거주하고 있음에도 집은 필연적으로 '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진정한 모습으로 집으로 돌아갈 수 없는 두 인물에 연민을 느끼기도 했지만, ‘비밀이 사랑을 키웠다’고 확신하는 두 사람의 진정한 자아가 만나는 것에는 낙관적인 기대를 하기 힘들었다. 아마 계속해서 그녀와 남편은 각자의 세계를 간직한 채 다시 ‘빈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


[김나윤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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