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리스 드 블라맹크 展

거장에게 직접 듣는 예술관
글 입력 2017.08.08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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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가를 보다 깊이 알기 위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그 작가를 다루고 있는 책을 읽는 것이고, 또 다른 하나는 개인전을 찾는 것이다. 두 방법을 누리는 데 있어서 비용은 거의 비슷하다. 책을 읽는다면 소소한 텍스트 기반의 정보들과 관련된 심화 문헌들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길잡이를 얻게 되는 것이고, 개인전을 찾는다면 정보적 접근 보다는 감성적 접근, 즉 제한된 시간 안에 함축적으로 그 작가의 작품 세계에 몰입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다.

이번 블라맹크 전은 이러한 두 가지 방법의 장점을 취합하고자 노력하였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기에서 고작(?) 140년 전 쯤의 이야기이다 보니 인상주의 이후 작가들에 대해서는 그 선배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많은 문헌들이 남아 있다. 그리고 그 시대는 ‘평론의 시대’로 접어드는 시기이기도 하다. 화가 본인이 한 이야기, 화가에 대하여 한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시대였다는 것이다. 거기다 블라맹크는 본인 스스로가 다수의 에세이와 소설을 집필한 작가이기도 하다 .자신의 이야기를 가장 많이 남겨 놓은 화가 중 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는 블라맹크의 작품들 뿐만 아니라 그 작품들과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그가 남긴 이야기들을 병치하면서 별도의 큐레이터가 필요없이 작가가 스스로의 이야기를 관람객에게 전하는 듯한 구성을 취하고 있다.

대가가 100년의 시간을 뛰어 넘어 우리에게 자신의 진솔한 내면의 이야기들을 털어 놓는 듯한 구성은 이번 전시의 가장 독특한 성취였고, 충분한 차별화 요소가 되었다. 이번 전시에 파편화되어 배치된 그의 글들은 불가피한 번역에 의하여, 그리고 전후 사정이 거세됨에 따라 진짜 ‘글 맛’을 느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지만,  그가 얼마나 섬세한 사람이었는지, 얼마나 자연과 주변 환경에서 촘촘한 감동을 느끼는 사람이었는지, 그리고 얼마나 예술가로서의 사명감과 고고한 자의식을 바탕으로 전념을 다해 숭고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는지를 보여주기는 부족함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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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글과 작품들을 함께 보면서 그가 만약 현 시대, 즉 ‘인스타그램의 시대’에 살고 있다면, 얼마나 많은 자연 사진 혹은 초라한 어느 골목 사진에 얼마나 풍부한 자의식과 감성을 쏟아내는 피드를 올렸을까, 라는 다소 엉뚱한 생각도 하게 되었다. 아마 정말 그랬을 것이다.

미술사 교과서의 한 페이지를 단독으로 담당하지는 못하고 계시지만, 그래도 마티스를 언급하면서 반 페이지 이상은 충분히 언급되실 분이기에 부분적으로 추출된 그의 대표작들을 여러 책에서 드문드문 보긴 했었다. 그러나 그러한 대표작들은 이번 전시에 출품되지 않았다. 이번 전시에서는 1910년대 이후, 야수파의 격정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해 나가던 과도기에서부터 마지막 시기까지를 다루었다. 그에게 있어 이 시기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성을 쌓아가던 중요한 시기였지만, 애석하게도 미술사는 언제나 블라맹크 개인 보다는 불꽃같이 찬란하게 타오르고 스러져간 야수파의 일원으로서만 그를 기억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이 시기는 간과되어 왔을지 모른다. 오히려 이번 전시는 그런 시기를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도 볼 수 있다.

첫 쳅터에서는 세잔의 영향을 받았던 시기라는 소제목이 무색하지 않게 정말로 견고한 윤곽선에 둘러쌓인 뚜렷한 구체로서의 사과를 발견할 수 있었다. 원경에서 바라본 마을의 집들 또한 세잔의 생빅투아르 산 그림에서 보던 바로 그것이었다.

뒤로 갈 수록 그가 천착했던 주제에 해당하는 비슷한 작품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어스름한 저녁의 마을 풍경, 특히 어둠 속에서도 새하얀 빛을 잃지 않는 눈에 뒤덮힌 마을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눈 덮인 마을들을 계속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눈이 어떤 표면에 덮여 있는 상태, 그리고 하얗고 두터운 유화 물감이 캔버스 표면에 덮여 있는 상태, 이 두 상태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상태 아닐까? 그의 두텁고 거친 붓은 하얀 눈이 시지각을 통해 인식된 외형적 상태를 모사하는 것이 아니라, 눈이 덮여 있는 물리적인 상태 자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결국 그가 쌓아 올린 것은 하얀 눈을 표현해 줄 안료가 아니라 눈 자체의 대체제였던 것 같다는 느낌이었다. 이 두 차이가 별 것 아닌 것일 수도 있겠지만, 분명 관점에 차이가 있는 것 같다.

지붕도 마찬가지다. 큰 집들은 아니었지만 어떤 작은 집들은 단 한 번의  두터운 붓질로 지붕이 그려져 있다. 그런 집이 한 두 집이 아닌 것으로 보아서는 그가 그런 방식의 작업을 꽤 즐겼던 것으로 보인다. 그에게 지붕을 그리는 것은 단순히 지붕의 색깔을 물감으로 표현한 것이 아니라 마치 레고로 집을 만들고 최종적으로 지붕을 덮듯이 실제로 지붕을 얹는 행위를 모사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동어반복 같지만 눈 덮인 마을 길에서 그런 느낌은 더욱 확고해졌다. 그는 당시의 비포장길에 눈이 덮여 있는 풍경들을 그렸지만, 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쌓여 있는 모습은 없었다. 눈은 약간 녹은 듯, 혹은 내리는 과정에 많은 차량과 사람들의 왕래가 있었던 듯 눈과 흙이 뒤섞여 진창이 된 상태를 그리는 것을 즐겨했다. 그가 뒤섞은 흑갈색의 물감과 흰 물감은 실제로 흙과 눈이 뒤섞여 있는 물리적 상태와 전혀 다를 바가 없이 보였다.

전시장을 나오면서 또 한 분의 대가와 개인적인 관계를 맺은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 수 있어서 좋았다. 그의 앞선 시기를 다룬 전시도 기획되면 좋겠다. 이왕이면 다른 야수파 대가들도 함께!

요즘 미술과 관련한 명언들을 수집하고 있다. 언젠가 하나의 글에 모아서 정리할 것이다. 이번 블라맹크 전에서도 하나 건졌다.


“예술가의 작품은 그 삶의 꽃이다.”
– 모리스 드 블라맹크



[김주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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