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도그지어 : 대학시절 [문학]

글 입력 2017.08.10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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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그지어 : 책장의 한쪽 귀퉁이를 삼각형으로 접어놓는 일을 뜻한다. 순간을 기록하는 표시인 셈이다.





 -나 유학 가.

 이건 눈물 대신이고. 피어싱을 건네는 손을 보며 차마 떨구지 못한 고개를 돌렸다. 우린 항상 타이밍이 맞지 않았지. 입 밖으로 꺼내기엔 모호한 말이어서 천천히 침과 함께 삼켰다. 해맑게 웃으며 뒤를 도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면서 어쩌면 영영 이별하는지도 모르겠구나 생각했다. 영영 이별이라. 때때로 생각했던 것이지만 막상 겪게 되자 조금 정신이 없었다.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방금 버스를 탔다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으며 뜻 없는 말들을 던졌다. 그녀는 언제나 그렇듯 최선을 다해서 답했다.

 -어디로 가?
 -아 그걸 말 안 했네. 영국으로 가. 가서 공부할게 많아.

 그녀는 천천히, 하지만 쉽지는 않게 결심을 털어놓았다. 그래 그렇구나. 내가 할 수 있는 대답이란 이런 것뿐이어서 아쉬웠다. 전화를 마치고 버스 정류장으로 걸음을 옮겼다. 그녀의 집과는 반대로 가는 버스에 오르면서 나는 이 허무한 이별에 대해 고민했다.
 
 그녀의 출국 날짜가 다가오면서, 나는 그녀에게 선물할 여러 말들을 고르느라 바빴다. 여러 장의 편지지를 사고, 담아둘 말들을 쓰고, 쓴 것들을 다시 지우는 일련의 과정들은 지루하지도 조급하지도 않게 흘러갔다. 그녀에게 다시 연락을 한 것은 편지가 얼추 완성된 새벽이었다. 메신저에 들어와 있는 그녀를 보며 넌지시 안부를 물었다. 준비는 끝났고 이제 떠나는 날만 기다린다는 그녀의 말에는 어떤 설렘과 공포가 느껴졌다. 나는 그녀에게 줄 것이 있으니 만나자고 했고 그녀는 언제든 괜찮다며 쪽지를 보냈다. 약속을 잡고 컴퓨터를 껐다. 이미 식어버린 커피를 마시고 침대에 누워 그녀와의 처음을 떠올렸다. 그때의 우린 갓 성인이 된 어린 아이들이었는데. 어느새 그녀는 훌쩍 떠나버릴 수 있는 어른이 되었구나. 그 변화가 섭섭하지는 않았다. 모두가 겪는 순간이고, 겪어야 하는 과정일 테니. 다만 영영 이별일 수도 있는 가능성은 조금 슬펐다. 어찌 됐든 이별이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니까.
 
 약속 장소에 먼저 도착해 그녀를 기다렸다. 사람들을 뱉어내는 버스를 보면서 곧 뱉어질 그녀를 상상했다. 그녀는 그녀만큼 큰 미소를 띠고 손을 크게 흔들며 큰 목소리로 나를 부를 것이다. 그녀를 맞이할 준비를 하며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 이내 그녀가 탄 버스가 도착했고, 내 예상처럼 그녀는 큰 미소로 버스를 내렸다. 손을 흔들며 내 이름을 부르는 그녀에게 똑같이 손을 흔들어주었다. 그녀와 함께 걸음을 옮겼다. 날이 무척이나 더웠다.
 
 -한국에 다시 올 거야?
 -아예 안 오지는 않을 거야. 가끔씩은 오겠지.
 -이번에 가면, 한참 후에나 보겠네.
 -그렇지. 적응하고 공부하고 하려면, 아마 2년은 거기에만 있어야 할 거야.

 2년. 말로 뱉은 2년은 짧지만 지나야 할 시간은 길다는 것을 나와 그녀는 알고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편지와 준비한 선물을 건넸다. 그녀는 담담히 받아 들고 음료를 마신 후에 울었다. 그녀에게 축하와 함께 걱정을 말했다. 가고 싶어하던 곳에 가게 된 것을 축하한다고, 부디 다치지 말고 건강했으면 좋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와 함께 케이크를 먹었다. 너무 달아서, 또 너무 써서 맛이 없었다.
 
 그녀를 배웅하는 길은 함께 하지 않았다. 그녀는 잘 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편지는 아직 읽지 않았노라고, 긴 시간을 보내야 하는 비행기에서 읽으려고 보관하고 있다는 말에, 비행기에서 울지 말라는 농담 섞인 진심을 전했다. 그녀가 지상으로 떠났을 시간에 창에 기대서 하늘을 보았다. 그녀가 떠나기 너무 좋은 맑은 하늘이었다. 하얀 구름이 흩어지는 것을 보며 떠나는 그녀에게 혼자만의 작별을 고했다.

 어쩌면, 영영 이별이었다.
 




대학 시절 
-기형도

나무의자 밑에는 버려진 책들이 가득하였다 
은백양의 숲은 깊고 아름다웠지만 
그곳에서는 나뭇잎조차 무기로 사용되었다 
그 아름다운 숲에 이르면 청년들은 각오한 듯 
눈을 감고 지나갔다, 돌층계 위에서 
나는 플라폰을 읽었다, 그때마다 총성이 울렸다 
목련철이 오면 친구들은 감옥과 군대로 흩어졌고 
시를 쓰던 후배는 자신이 기관원이라고 털어놓았다 
존경하는 교수가 있었으나 그분은 원체 말이 없었다 
몇 번의 겨울이 지나자 나는 외톨이가 되었다 
그리고 졸업이었다, 대학을 떠나기가 두려웠다 




[김나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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