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벼랑 끝으로 내몰려진 < 트로이의 여인들 > 리뷰 [공연예술]

고전의 재해석, 참신한 실험극
글 입력 2017.08.14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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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파르타 동맹과 트로이의 전쟁이 끝난 후. 폐허가 된 트로이에는 누군가의 아내이자 어머니, 혹은 그 자체로 트로이의 한 기둥이었던 여인들만이 남았다. 트로이의 공허한 무대 위로 13인의 맨발의 여인들이 올라선다. 뒤따라 그녀들에게 소식을 전하러 온 전령들이 입장한다.

 1시간의 짧고 강렬한 극. 트로이의 마지막 왕비 헤카베는 자신이 원수의 전리품 신세가 되었다는 사실에 절망한다.

 그녀를 시작으로 트로이에 남은 여인들이 승전국에 의해 어디로 가게 되어 어떻게 남은 생을 살게 되는지를 듣게 되면서 극은 진행된다. 헤카베의 딸 카산드라, 헤카베의 맏며느리인 안드로마케와 그 아들, 헬레네, 그리고 나머지 여인들.



헤카베의 딸, 저주받은 예언자 카산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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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중요하지 않겠지만!"


 소식을 전하러 온 전령 탈티비오스. 헤카베는 우선 그녀의 딸 카산드라의 처분에 대해 묻는다.

 카산드라의 예언, 혹은 저주를 무시해 비극적인 종말을 맞게 된 트로이. 카산드라는 신 아폴론의 사랑을 받아 언제나 맞는 예언을 하지만 신의 사랑을 저버려 그녀의 예언을 믿어줄 지지자를 얻지 못했다. 결국 그녀에게 내려진 가장 큰 축복은 가장 큰 저주가 되어 그녀를 괴롭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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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론이여, 아폴론이여.
길의 신이여, 나의 파괴자여.
당신은 나를 두 번이나 완전하게 죽이시는군요."

< 아가멤논 >



 아름다운 카산드라. 트로이가 멸한 후에도 어떤 끔찍한 미래를 보는 것인지 그녀는 끌려나가는 순간까지도 절망에 괴로워했다.



헤카베의 맏며느리, 안드로마케의 아들

 
 눈물조차 멎은 헤카베. 헤카베는 그녀의 맏며느리인 안드로마케와 그녀가 안고 있는 헤카베의 마지막 손자를 바라본다. 여인들은 마지막 남자인 안드로마케의 아들을 트로이의 마지막 희망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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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정하게 소식을 전하던 전령들도 이 처분에 대해서는 망설이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패전국에게는 한 줄기의 빛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트로이의 여인들은 회생의 여지없이 패전국의 그림자로만 남아있어야만 했다.



마지막. 헬레네와 트로이의 여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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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이 장면 때문에 연극을 다시 보고 싶다. 트로이 전쟁 신화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헬레네는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를 배반하고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와 사랑에 빠졌지만 파리스가 죽고 트로이가 패하자 다시 메넬라오스에게로 돌아온다. 
 
 승자의 편에 빌붙어 자신의 목숨을 구걸하는 모습으로 그려지는 헬레네. 이 부분에서 특히 자신의 속마음을 말하거나 극의 중심이 될 때 스탠드 마이크를 이용하는 연출이 돋보였다.

 운명과 파리스를 탓하며 메넬라오스에게 온갖 변명을 해보지만, 오히려 남은 여인들이 그녀의 이중성과 비겁함을 지적하며 그녀를 죽이라고 말한다. 헬레네의 감언이설에 흔들렸던 메넬라오스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 헬레네를 처형한다.

 헬레네가 끌려나가자 나머지 여인들도 한 명씩 호명되어 자신의 운명을 전해 듣는다. 여인들은 절망할지언정 울지 않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오직 죽음을 기다리며 묵묵히 살아가는 것 뿐이었다. 



감상. 연극과 '연극적인' 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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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난해한 극에 지루함을 덜기 위해, 혹은 풍자적 요소를 가미하기 위해 다소 익살스럽게 표현된 부분이 있다. 신화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가미된 부분도 있었다. 트로이 전쟁 신화의 시발점이 된 황금 사과 이야기와 그리스 영웅 아킬레우스 등에 대한 간단한 부연 설명에서 드러난 연출의 재치에 무릎을 쳤다.

 이런 부분 때문인지 같이 간 동료는 이 극이 웃긴 극인지 슬프고 진지한 극인지 모호함을 느꼈고, 다같이 군무를 하는듯한 동작이나 갑자기 웃다가 정색하는 등 배우들의 과장되고 인위적인 표현들에서 어색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현대극을 선호하는 많은 이들이 그렇게 느꼈을 듯했다. 확실히 고전극이나 신화를 바탕으로 한 극에 비해 현대극이 무대에 많이 올라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와 같이 실제상황을 보는 것 같은 연극과는 달리 '시적이고' '과장되고' '인위적'인, 즉, '연극적인' 극이 주는 매력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무엇보다, 이런 '연극적인' 극은 영화도 드라마도 아닌 연극에서만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이를테면 이 극에서는 헬레네가 등장하는 부분에 그런 요소가 가장 잘 드러났다.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승자의 편에 빌붙는 헬레네의 모습은 우스꽝스럽고 과장되게 표현된다. 그런 인물이 있을수록 다른 여인들의 죽음 앞에서의 담대함이 더 돋보이는 효과가 나타난다. 어떻게 보면 이 극에서는 헬레네가 가장 인간적인 인물이지만 그 익살스러운 연기 때문에 존엄을 포기한 자의 최후가 더 강렬한 대비로 다가왔다. 그 과장성 때문에 헬레네의 조마조마한 심정이 이해되면서도 그녀를 용서할 수 없는 이유가 분명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그 외, 한 두개의 악기로만 연주되는 극의 배경음과 효과음, 자신의 부분에서 다급하게 잡는 마이크, 슬픔을 표현하는 춤과 노래와 같은 연출들은 모두 어딘가에서 본 듯한 연출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고전과 만나면 늘 새롭고 참신한 충격이 된다.
 
 개인적으로는 이런 극이 더 대중화되었으면 한다. 통속극도 좋지만, 연극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을 나는 < 트로이의 여인들 >에서 느끼고 왔다. 시적인 대사, 과장된 표현의 '연극적인' 극은 다채로운 연출로 그 어느 창작극보다도 새롭고 참신한 실험극으로 재탄생한다. 새로운 극을 찾아 고민을 하고 있다면 강력히 추천한다. 내 동료도 이 극을 어색하게 받아들였을지언정 참신한 충격을 받았음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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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유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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