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대 초반의 어린 생각들_ 관계에 대해서 [문화전반]

글 입력 2017.08.16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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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개월 동안 못 만났던 친한 언니를 만났다. 우리는 1년 전 베이징의 한 대학교에서 만났었다. 나는 교환학생이었고, 언니는 유학생이었다. 처음엔 이렇게까지 가까워질 생각이 없었다. 내가 간 학교는 유독 한국인이 많았고 학기가 시작함과 동시에 한국인 유학생들의 행동과 태도가 좋지 않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동기와 같은 학교로 배정을 받아서 그 친구와 함께 외국인이나 중국인 친구들을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우연히 동기와 다른 수업을 듣게 되면서 나는 이번에 처음 중국에서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는 그 언니를 알게 되었다.

 처음 만났을 때를 기억한다. 함께 학식을 먹으며 신경전 아닌 신경전을 벌였다. 나는 언니를 경계했고 그 언니도 나를 경계했다. 그때 당시의 나는 마음 속 자물쇠가 걸려있었다.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고, 마음 속 감정은 바로 얼굴에 나타났다. 언니는 그런 모습의 나를 어려워했고 친해지기 힘들 것이란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언니 또한 중국에서 대학교 다니는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굳이 시간을 들이며 한국인들과 친해지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러나 같이 수업을 들으며 자주 얘기한 결과, 언니는 내가 경계해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내가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던 한국 유학생들과는 다르다는 것을 곧 느끼게 되었고 우리는 결국 친한 사이가 되어버렸다. 상대방을 경제적인 가치로 평가하던 것에서부터 조금씩 해방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때를 돌이켜 생각해보면 나는 나만의 인식틀에 갇혔던 것 같다. 마치 우리의 마음이 인과의 관계에 갇히고 패권을 선호하는 것처럼, 나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계속 내가 만든 유리벽에 머리를 부딪쳤다. 고 신영복 교수님의 ‘담론’ 책을 보며 나는 아직도 갈 길이 멀었구나 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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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초반에 인상 깊었던 구절이 있었다. ‘오토 포이에시스(auto poiesis).' 생명은 DNA의 절대적인 영향 하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포함하는 생명체 자체가 자기 생성을 계속해 나가는 존재라는 뜻이다. 이를 주장한 움베르토 마투라나는 생명이란 ’방랑하는 예술가‘라고 표현했다. ’방랑하는 예술가‘라, 우리의 생명은 이렇게 방랑하며 스스로 더 나아지려고 하는데 나는 나의 인식틀에 갇혀 발전하지 못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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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자는 일생 동안 ‘화화(和化)’정책을 내세우며 춘추전국시대를 떠돌았다고 한다. 그러나 그의 ‘화화정책’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직 집단을 주도할 수 있는 권력과 지위를 내세우는 패권정책만이 인기를 끌었다. ‘화(和)’는 서로 다른 존재가 부딪혔을 경우 다양성과 차이를 존중하는 논리로 자기중심적으로 증식하는 자본의 사회와 달리 굉장히 이상적인 패러다임이었다. 그래서 ‘화화’는 자신의 존재론적 한계를 자각하고 스스로를 바꾸어 가기를 결심하는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때부터 시작되었던 패권주의는 국가 간의 전쟁을 불러일으켰고 심지어 현대 사회에 이르러서도 패권주의로 인해 반복적인 경제불황, 금융 위기 등의 사건들이 일어나고 있었다. 우리나라의 분단문제를 보아도 패권주의로 인해 우리나라의 힘이 미국이나 중국으로부터 밀리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패권주의 영향으로 인해 선과 악이나 유와 무를 나누며 상대방을 평가한다. 그러나 고 신영복 교수님은 대비 개념을 보완 관계로 읽어야지 대립 관계로 읽으면 안 된다고 언급한다. 두 개의 대비되는 개념은 원인이 될 수도 있고 결과가 될 수도 있으며 서로 영향을 주는 관계로 나아갈 수 있다. 세상의 모든 존재는 고립된 불변의 존재가 아니라 수많은 관계 속에 놓여 있고 그러한 관계 속에서 비로소 정체성을 갖게 된다. (pg.198) 내가 속해 있는 그 어떤 관계라도 나는 영향을 받고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라고 한정지으며 객관적으로 평가하게 되면 나에 대한 정체성을 잃게 될 수 있다.

 그 동안 나는 ‘관계’가 무엇이었는지 잘 몰랐던 것 같다. 앞으로 내가 살아가는 데에 있어 도움이 될 사람, 계속 연락을 할 사람 이렇게 한정지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나는 꾸준히 그들과 함께 관계망을 구축하면서 더 나은 사람으로 알게 모르게 발전하고 있었다. 그리고 우연히 만난 사람들, 다시 연락하지 못할 사람들, 혹은 고정관념이 부정적이었던 사람들한테도 영향을 주고받으며 나의 정체성을 만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교수님은 죄수들의 인생에서도 배울 것이 있다고 했다. 아직 20대 초반이지만, 이제부터 조금씩 변화하려고 한다. ‘관계’라는 것은 평생의 숙제이기 때문에 아마 시간이 흐름에 따라 그 생각이 변화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어린 생각들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담론’ 책에서 언급한 것처럼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로 가는 긴 여정을 떠나며 앞으로 내가 보기에 더 나은 사람으로 나아가야겠다. 다른 존재들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면서 그렇게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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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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