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혼자에 대한 고찰, 고독한 미식가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8.20 23:3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혼자 들어간 식당에서 눈치를 보며 밥을 먹는 건 이제 옛날이야기 이다. 혼밥, 혼술 등 ‘혼자’라는 키워드가 하나의 트렌드로 자리 잡았다. 혼밥 난이도를 단계별로 구분해 놓은 혼밥 레벨 표 까지 등장했을 정도로 이제 이 사회에서 ‘혼밥’은 일상과도 같다. 덩달아 혼밥이라는 키워드를 다룬 미디어들 또한 다수 등장했다. 
 
그중 ‘고독한 미식가’는 가장 대표적인 ‘혼밥’ 드라마 이다. ‘혼밥’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기 훨씬 전인 1994년도부터 연재되기 시작한 원작 만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드라마는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며 얼마 전 시즌 6를 끝마쳤다. 이 드라마의 흐름은 아주 간단하다. 개인 잡화 회사를 운영하는 주인공 ‘이노가시라 고로’가 도시를 돌아다니며 자신의 눈에 띄인 맛집에 들어가 식사를 하는 것. 요리에 대한 정보는 일절 없이 오직 음식의 맛에 대한 평가가 주를 이룬다. 바로 이 점이 다른 요리 드라마와는 다른 점이자, 이 드라마가 사랑받는 이유일 것이다.

 
고독한 미식가.jpg
 

“누구에게도 방해 받지 않고,

신경 쓰지 않으며 음식을 먹는다는 포상의 행위,
 
이 행위야 말로 현대인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라고 말할 수 있다!”


고독한 미식가가 시작하기 전 항상 나오는 대사이다. 저 대사 그대로 고로는 드라마에 나오는 모든 장면에서 ‘혼자’ 식사 한다. 고로가 입 밖으로 내는 대사 또한 별로 없다. 모든 대사는 고로가 마음속으로 말하는 독백으로 진행된다. 그리고 그 중 대부분이 음식에 대한 맛 표현이다. 고로가 식사하는 장면을 보고 있자면 이게 드라마인지, 음식 다큐멘터리인지 구분이 안 갈 때도 있다. 그런 걸 무슨 재미로 보냐고? 한 편만 보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고로상이 먹고 있는 모습을 보자면 나도 모르게 군침이 돈다. 혼자 밥을 먹는다고 해서 메뉴를 한 가지만 시키는 것도 아니다. 고로상은 어떤 음식점을 가더라도 적어도 세 가지의 메뉴를 시키고 그 모든 메뉴들을 성심성의껏 다 먹는다. 마치 음식과 대화하듯이 말이다.

음식의 종류 또한 다양하다. 일본 도시 곳곳의 요리들 뿐만 아니라 인도 요리, 동남아 요리, 등 다양한 나라의 요리들이 소개되었다. 당연히 한식 또한 드라마에 등장했다. 또 주 메뉴가 아니더라도 디저트부터 에피타이저까지 고로상은 다양한 요리들을 폭 넓게 맛보는데, 하다하다 병원에 입원한 고로상이 병원 밥에 대한 맛 표현을 하는 회차 까지 존재할 정도이다.


고독한 미식가1.jpg

 
원래 나는 ‘혼자’가 되는 것을 무서워하는 사람이었다. 밥을 먹을 때는 물론이고 어딘가에 가야 할 때나, 여행을 할 때, 새로운 상황에 놓여질 때 누군가가 나와 함께 해 주어야만 마음이 놓였다. 하지만 나이를 먹어 갈수록 상황이 달라졌다. 사실상 새내기 때는 동기들과 대부분의 수업들이 겹치고, 함께 움직였기 때문에 혼자 밥을 먹을 일은 거의 없었다. 워낙에 외로움을 타는 성격 때문에 혼자 밥을 먹을 일이 생기면 밥을 굶기도 했다. 하지만 학년이 올라가자 동기들 끼리 듣는 수업도 달라지고, 밥 시간대도 달라지면서 새내기 때보다 혼자만의 시간이 늘어났다. 혼자 먹는 밥이 무서워 끼니를 걸렀던 건 새내기 때 이야기. 그때의 나는 너무 배가 고팠다. 아직도 처음 혼자 먹었던 밥이 생각이 난다. 생각한 것보다 뻘쭘하지도, 맛없지도 않았던 그때 그 점심식사. 그 시기를 기점으로 혼자서 무언가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조금이나마 사라졌다.


고독한 미식가 2.jpg
 

‘혼자’ 무언가를 한다는 게 무서운 이유는 어쩌면 혼자가 되는 것 자체보다 혼자가 된 나를 바라보는 주변의 시선들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관점을 바꿔 생각해보면 혼자 무언가를 한다는 것은 그 시간에 온전히 나 자신만의 시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혼자 밥먹는 것 조차 무서워 했던 나는 어느새 프로 혼밥러가 되어 언제 어디서든 혼밥을 즐기고, 혼자 여행하거나 혼자 쇼핑을 하고, 혼자 영화를 본다. 물론 친구들과 함께 할 때도 즐겁지만 가끔은 나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 위해 하루 동안 아무런 약속을 잡지 않고, 오직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곤 한다. 고독한 미식가의 고로처럼,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신경쓰지 않으며 나만의 시간을 갖는 다는 것, 그것이 바로 현대인에게 주어진 가장 큰 치유 아닐까?




명함.jpg
 
  
[이가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3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