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하고, 탐구하다, 그리고 미치다 [문학]

김상미,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
글 입력 2017.08.21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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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직업이든 정상에 오른 사람이라면 비슷하겠지만, 나는 특히 예술가라면 무언가에 ‘미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 미치기 위해서는 먼저 ‘사랑’해야 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언제나 ‘탐구’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나무발전소 오늘은바람이좋아 살아야겠다 _ 입체.JPG
 

오랫동안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은 해왔지만 막상 펜을 들기 두려웠던 요즘,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라는 매력적인 제목의 책을 접하게 되었다. 이 책은 ‘글을 쓰는 사람이 쓴 글을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글을 좋아하는 사람에겐 최고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며칠 밤 새 단숨에 읽힌 책이었다.

이 책이 특별한 것은 지은이 김상미 시인 본인이 애정하는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했다는 점이다. 그 점에서부터 마음에 들었다. 문학사적으로 중요하거나, 혹은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작가의 목록이 아니라(물론 11명의 작가 중 그런 이들도 분명 포함되어 있었지만), 김상미 시인이 좋아하는 작가의 컬렉션이었기 때문에 그들에 대한 애정이 더욱 진하게 묻어나온 것 같다. 마치 그녀의 작은 책장을 몰래 들여다보는 느낌이랄까. 그녀의 시선에 몸을 맡기면 아이돌 그룹을 동경하는 여리고 예민한 소녀팬의 마음으로 작가들의 삶과 작품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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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인상 깊었던 작가를 고르자면 사도니 가브리엘 콜레트와 카렐 차페크이다. 둘 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접해보지 못했던 작가들이다. 하지만 그들의 삶의 이야기는 그들의 작품에까지 호기심을 갖게 하기에 충분했다. 프랑스 파리를 기반으로, ‘여성’이라든지 ‘성 정체성’이라든지 하는 것에 대한 사회적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은 채, “모든 것에 뜨거운 호응을 보이며 자유롭게(155쪽)” 살았던 콜레트의 이야기는 나 또한 몇 십 년 전 전혜린이 그랬던 것처럼 “아, 콜레트처럼 살고 싶어!”라 소리치게 한다. 그 자신의 삶처럼 역동적이고 과감한 소설, 그녀의 걸작이라 불리는 「바가봉드(방황하는 여인)」를 찾아내어 읽고 싶게 만든 것은 물론이다.

또한 평생을 정원 가꾸기에 힘쓰며 원예에 관한 소설, 그리고 판타지 소설을 쓴 체코 작가 카렐 차페크의 이야기도 눈길을 끌었다. 김상미 시인이 그에 대해 평한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물론 카렐 차페크 외에도 정원 가꾸기에 힘을 쏟은 작가들은 많다. 우리가 잘 아는 헤르만 헤세도 정원 가꾸기로 유명해 그에 관한 책을 출간했다. 하지만 나는 헤세가 바라보는 정원보다 차페크가 바라보는 정원이 훨씬 더 맘에 든다. 아무리 심오하고 현자인 사람도 나는 그 안에 천진과 유머가 없으면 재미가 없다. 하지만 차페크에겐 깊고 유쾌한 천진과 눈물을 쏙 빼게 만드는 유머가 있다. 그리고 그에게는 언제나 ‘인간’을 먼저 생각하는 아주 따뜻한 가슴이 있다.” 174쪽

이런 평을 받은 작가인데 어떻게 읽어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특히 책에서도 발췌된 「원예가의 열두 달」이라는 책의 글과, 형 요제프가 그린 삽화를 보면 입가에 슬며시 웃음이 지어진다. 차페크의 글과, 그를 평가한 김상미 시인의 글을 읽으며 눈이 번쩍 뜨이는 듯한 느낌이었다. 편안히 읽히지만 뼈가 있고, 은근한 해학이 있는 글. 그것이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이라는 걸 깨달았다. 김상미 시인에게 차페크와 같은 거장 작가들이 그랬듯, 나도 작가들의 삶과 작품세계를 통해 나 자신의 글과 삶을 조명하게 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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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트와 차페크의 삶과 작품은 얼핏 매우 달라 보일 수 있다. 편견과 억압 없이 ‘자유’ 그 자체였던 콜레트, 평생을 자신의 조그마한 정원 가꾸기에 몰두하며 살았던 차페크. 그러나 그들은 예술가라는 점에서 연결된다. 그들 모두 그들의 삶을 사랑했고, 그 자신과 그를 둘러싼 것들에 대한 치열한 탐구를 거듭했으며, 결국에는 어떤 면에서 그들은 미쳐있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비범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한 개인으로서 세상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영향을 미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책을 쓴 김상미 시인마저도 열한 명의 작가들을 진심으로 사랑했고, 또 그들에 대해 연구했고, 조금은 미쳐있었기 때문에 독자들에게 자그마한 울림을 줄 수 있었던 것 같다.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는, 무언가를 사랑하고, 그것에 미치고픈 사람들에게 좋은 촉진제가 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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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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