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Audinos, 우리는 듣는다 -1

1- Story in Jeju
글 입력 2017.08.21 00:49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14.jpg


  지난 13일 일요일 저녁, '금호아트홀 연세'에서 아우디노스 기타 듀오 콘서트를 보고 왔습니다.
  개인적으로 느끼기에 이번 공연은 1,2,3부의 매력이 각자 다른 것 같아서 리뷰도 세 파트로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1부 - Story in Jeju


  1부는 최 인 기타리스트님의 솔로였습니다. 그의 자작곡 네 편은 한국의 자연과 한국의 문화에서 영향을 많이 받아서인지, 연습곡 '공간'을 제외하고는 더없이 한국적인 느낌이었습니다. 특히 여러가지 시도를 통해 국악기의 소리나, 바람 소리를 내시는 덕분에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첫곡이었던 '서'는 서예에 깃는 정신과, 그 붓놀림에서 영감을 받아 쓰신 곡입니다. 그리고 또한, 작곡가의 선조 중 한 분이신 신라시대 문장가 고운 최치원의 삶도 곡 안에 녹여내셨다고 합니다. 당나라에서 유학생활을 하고 돌아와 뛰어난 문장가로 이름을 떨치고, 여러 분야에서 활약하였으나 망해가는 신라의 상황에 절망한 나머지 관직을 버리고 은거했다는 최치원. 그의 사망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없으며, 속설에 따르면 신선이 되었다고도 합니다. 연주가 끝난 후, 그의 삶을 조금이나마 떠올려볼 만했는지 물어보셨는데, 그것들이 처음 작곡 의도대로 제게 전달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가야금을 뜯는 듯 과감하게 현을 튕기는 소리에서는 거친 필치의 붓놀림이 떠올랐고, 대금의 끝음처럼 휘리릭 떨리는 음에서는 오소소 불어오며 나뭇가지를 스치는 밤바람이 떠올랐습니다. 세찬 물보라가 바위를 때리는 이미지, 물이끼가 낀 바위를 밟는 정갈한 가죽신 같은 것들이 계소해서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클래식 기타 콘서트에서 들을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던 국악기의 음색들이 섞여들어 더욱 그랬던 것 같습니다. 또 한 편으로는, 고등학생 시절 가장 좋아했던 시가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험한 바위 만날수록 파도는 아름답다
세찬 바람 등 몰아칠수록
파도는 더욱 힘차게 소멸한다
보이는가 파도치는 날들을 안개꽃의
터져오르는 박수로 바꾸어놓은 겨울 동해바다
암초와 격랑이 많았던 당신의 삶을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운 파도로
바꾸어놓았는가
-도종환 '산맥과 파도' 중


  역사에 기록된 것을 보면 최치원의 인생도 이처럼 암초와 격랑이 많았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 인 연주자의 삶도 그랬을까요? 알 수 없지만, 만약 그랬다면 그는 그 험한 파도를 이 아름다운 곡으로 다듬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음악을 듣고 있는 나의 삶도 그러한지, 그러할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게 됩니다.





  두 번째 순서는 '산-바다' 연작이었습니다. 어쩐지 제목이 산이고 바다인 곡들에서보다, 첫곡에서 더 거대한 산과, 더 넓은 바다의 풍광을 본 것 같았습니다. 곡이 조금 더 잔잔해서인지, 기타가 들려주는 국악기 소리에 대한 놀람이 가라앉아서인지, 이 음악은 조금 더 차분하게 들을 수 있었습니다. 드 번째 곡은 산등성이를 타고 오르며 나무를 가볍게 쓰다듬는 산바람,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녹색 나뭇잎, 규칙적인 듯 불규칙하게 밀려오며 모래사장을 위로하듯 감싸는 파도 같은 잔잔한 자연이 떠오르는 잔잔한 음악이었습니다.

  최 인 연주자는 조용하게 웃으시며, 바다에 가면 늘 '힐링'이 되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그 말에 깊이 공감하고 마음속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올해 늦봄, 살면서 가장 충격적인 상실을 겪어 죄책감과 슬픔에 잠 못 이루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 마음을 안고 찾았던 초여름의 속초 바닷가에서, 잔잔하게 밀려오는 파도 소리에 큰 위안을 받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최 인 연주자는 음악이 그저 앨범을 판매하고 돈을 벌기 위한 것만은 아니라고 하셨습니다. 음악에는 그 음악을 하는 사람의 이야기가 들어 있어야 하는 것 같다고, 작곡가의 이야기이든 연주자의 이야기이든. 그래요, 그 곡을 만들 때나 연주할 때, 최 인 연주자님의 마음속을 차지하는 이야기가 있을 것입니다. 청자인 저로서는 그 이야기를 다 알 수 없지만,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 내 마음에 자리한 이야기에 이 음악을 입혀볼 수는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이야기에서 이야기로, 통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13.jpg
 
14.jpg
 (속초 바닷가에서)

 



  세 번째 연주곡은 직접 작곡한 연습곡 '공간'이었습니다. 아직까지 이 연습곡으로 연습하는 사람이 본인 뿐이라며 허허롭게 웃으시는 모습이 아직도 생각납니다. 연습을 위해 만든 곡이기 때문인지 다른 곡들과는 다르게 많은 이야기가 떠오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기타를 잘 모르는 청취자의 입장에서 듣기에도 좋은 모던한 느낌의 곡이면서도, 연습을 위해 필요한 다양한 표현법이 들어있다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기타를 배우게 된다면 플라멩코 스타일을 가장 배워보고 싶은데, 만약 클래식 기타를 배우게 된다면 연습곡으로 청해 배우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네 번째 곡은, 전체 공연 구성 중에서도 Story in Jeju 라는 공연 타이틀에 가장 걸맞은 곡, '석풍수'였습니다. 건축가 고 유동룡(이타미 준)의 작품인 수풍석 미술관에 갔을 때 받은 영감으로 작곡한 곡인데요, 최 인 연주자는 '수풍석' 보다는 '석풍수'가 낫다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고 하셨습니다. 작가의 손을 떠난 작품이니 그 순서야 받아들이는 사람 마음 아니겠습니까. 바위 안에서 바위의 시선으로 하늘을 바라보는 석 미술관, 나뭇결 사이사이로 오가는 바람을 느낄 수 있는 풍 미술관, 하늘을 그대로 비춰내는 수 미술관.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 천원지방을 담은 이 작품은 인간의 손으로 자연을 담은 공간입니다. 이곳에서 영감을 받았다는 음악 '석풍수' 역시도, 인간의 손으로 써내고 인간이 손으로 연주하는 자연의 소리를 들려주는 것만 같았습니다.

  한 시간이 채 안 되는 1부 내내 참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한곡 한곡에 담긴 이야기들이 많아서 그랬을까요. 기대했던 북유럽의 선율보다도 더 마음속에 많이 남은 1부였던 것 같습니다.




류소현 (1).jpg
 



[류소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