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바람을 타고 떠나는 여행, "모든 예술은 타임머신이다." [문학]

글 입력 2017.08.21 01: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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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예술은 타임머신이다.”

김상미 지음  | 펴낸곳 나무발전소
발행일 2017년 7월 26일 | 문학에세이
판형 신국판 변형(128*182) | 신국판 무선 | 200페이지
정가 12,000원 | ISBN 979-11-86536-49-0 03810
연락처 02-333-1962, 333-1967



▶ PROLOGUE


 모든 예술은 타임머신이다. 그걸 타고 우리는 어디든 어느 시대든 갈 수 있다. 아주 먼먼 고대에도 그들이 남긴 예술을 통해 우리는 그들에게로 갈 수 있고, 그들을 만나 그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고, 그들의 손을 잡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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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디가 하늘이고, 어디가 바다일까. 청량한 하늘색과 싱그러운 초록색이 어우러진 이 곳은 남프랑스의 어느 마을. 평화로운 하루만 지속될 것만 같은 이 곳에서 나는 오늘 한 남성을 만났다. 나이가 지긋이 든 그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다른 손으로 지팡이를 짚은 채 비스듬히 의자에 기대어 앉아 나를 쳐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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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르네 샤르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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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나라는 오직 정신의 결연한 맹서,
무덤의 반대일 뿐이다.

나의 나라에선, 드높은 이상보다
부드러운 봄의 징후들과
초라한 차림의 새들을 더 좋아한다.

진리는 양초 옆에서 다가올 새벽을 기다리고
유리창문은 허술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주의한들 무슨 소용이 있나.

나의 나라에선 감격에 차 있는 사람에게
그 이유를 묻지 않는다.
뒤집힌 배 위에 사악한 그림자 있을 리 없다.

고통한테 안부를 전하는 일,
그것은 나의 나라에선 생소한 일이다.

사람들은 증식될 가능성이 있는 것만을 차용한다.
내 나라에 자라는 나무들은 잎이 무성하고도, 무성하다.
가지들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는 구속으로부터 자유롭다.
아무도 정복자의 선의 같은 것은 믿지 않는다.
나의 나라에선, 사람들은 늘 감사한다.

Rene Char, 「영원한 나라」



 자신의 시를 한 구절 들려준 그는 나에게 여러 이야기를 건넨다. 그는 나에게 ‘시’의 역할에 대해서 말한다. “시는 지금 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50년을 내다볼 수 있어야해. 세계의 흔들림에 집중하고 날카롭게 바라봐야한단 말이지.” 시에 대해 아직 아무것도 모르는 나에게 조금은 어려운 이야기를 남긴 채, 그는 자신의 말을 다 마친 것인지 아니면 새로운 시에 대한 영감이 떠오른 것인지 조심히 돌아가라는 따뜻한 말을 한 뒤 자신의 방으로 들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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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Midnight in Paris >  中   * 책의 내용과는 무관합니다.)


 역시 프랑스에 오면 파리에 가야지! 어둑해질 무렵 파리에 도착한 나는 소설 어린왕자 속 가로등 켜는 남자의 등불이 일렬로 늘어진 거리를 혼자 걸었다. 뤽상부르 공원과 몽파르나스의 중간 지점 즈음 도착했을 때에, 어디선가 남녀가 뒤섞인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플뢰뤼스 가 27번지, 그곳에는 라울 뒤피, 마르셀 뒤샹, 피카소, 피카비아, 이사도라 덩컨, 헤밍웨이, 세잔, 막스 쟈코브, 앙리 마티스, 만 레이 등 수많은 예술가와 시인, 작가, 예술애호가들로 가득한 공간이었다. 그리고 그 무리 안에 있는 한 여인, 거트루드 스타인을 발견했다. 널리 알려진 컬렉터이자 극작가임과 동시에 시인이었던 그녀.

 그녀는 예술을 얼마나 사랑했던 것일까. 날이 어둑해진 것도 모른 채 플뢰뤼스 가 27번지를 예술 이야기로 가득 채우며 아침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낯설기도 하지만 문득 그 사이에 들어가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함께 와인잔을 기울이고 싶은 충동이 일기도 한다. 하지만 날이 너무 늦었는걸, 결국 스타인과의 다음 만남을 기약하며 발걸음을 돌린다.


**


 다음날 아침, 미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8시간의 긴 비행동안 미술서적을 가방에서 한 개 꺼내 펼쳤다. “Nevermore”. ‘더 이상은 없어. 이젠 끝이야.’라는 의미를 가진 고갱의 그림 < Nevermore >. 이 그림은 폴 고갱이 에드거 앨런 포의 시 「갈가마귀」를 읽고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미국 보스턴에서 태어나 힘든 인생의 여정 속에서 고통스럽게 생을 마감한 애드거 앨런 포, 이번 미국 여행에서는 그를 만나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어느 폭풍우 치는 겨울 밤, 창가로 갈가마귀 한 마리가 날아온다. 날아온 갈가마귀는 방문 앞에 있는 팔라스 흉상 위에 내려앉는다. 방 안 책상 앞에는 한 청년이 앉아 있다. 청년은 ‘레노어’라는 사랑하는 여자를 잃었다. 사랑의 상실은 세계 도처에 숨어 있던 온갖 절망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긴다. 하여 방안은 어둡고 침울하고 암울하다. 청년은 갈가마귀를 향해 사랑을 잃은 자신의 고통스런 번뇌와 절망을 호소한다. 그러나 아무리 호소하고 또 호소해도 갈가마귀의 대답은 한결같이 “네버모어”란 단 한마디뿐이다. 참다못한 청년은 갈가마귀를 향해 제발 사라지라며 오열한다. 하지만 갈가마귀는 그런 청년을 그저 바라만 볼 뿐 좀체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Edgar Allen Poe 「갈가마귀」의 내용
(도서 < 오늘은 바람이 좋아, 살아야겠다! >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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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ul Gauguin, < Nevermore >


 긴 여정 끝에 도착한 곳은, 미국 미국 메릴랜드주 볼티모어에 위치한 한 병원이었다. 병원 1층 로비에 위치한 카운터로 다가가 조심스럽게 에드거 앨런 포를 만나고 싶어 온 사람이라고, 그가 혹시 어느 병실에 누워있는지 알 수 있냐고 물었다. 환자의 정보는 외부인에게 알려줄 수 없다는 대답을 듣고 아쉬운 마음을 가득 안은 채 병원을 나가려 했는데 어깨 너머로 간호사들의 대화가 들려온다. “에드거 앨런 포, 그 사람 어제 혼자 쓸쓸하게 병실에서 죽었잖아.”

 나는 그가 병원에 남겨둔 작품으로 그를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가 쓴 책 『아서 고든 핌의 이야기』를 읽으며 미국에서의 하루를 마쳤다. 그는 어떤 고통을 느끼며 「갈가마귀」를 써내려간 것일까. 그토록 쓸쓸하게 남겨져 그의 말을 들어주고 대답해줄 이가 갈가마귀 뿐이었던 것일까. 그의 삶을 다시 한 번 되짚어보며 날이 저물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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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예술은 타임머신이다.” 우리가 시를 읽는 이유, 더 나아가 책을 읽는 이유라고 할 수 있겠다. 작가의 일생을 보며, 그 일생 속에서 탄생한 작품을 감상하고, 읽고, 느끼며, 우리는 짧지만 강렬한 여행을 시작한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날, 비가 쏟아져 밖에 나가고 싶지 않은 날, 방 안 침대에 누워 이 책을 펼쳐보라고 권하고 싶다. 아마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걷고 있는, 시인의 옆에 나란히 앉아 그가 시를 읊는 목소리를 들으며 잠이 드는 경험을 하게 될테니.



전문 필진_ 박이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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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이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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