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암보암] 이 영화는 감정의 영화다_플립Flipped

글 입력 2017.08.30 1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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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가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영화는 결말이 아니라 과정이 중요하기에, 스포가 문제될 건 없다고 생각해 글을 씁니다
ost와 함께 읽어내려가셔도 좋을 듯 합니다:)




 감독 로브 라이너의 2010년 작 <플립>이 2017년 7월, 국내에서 정식 개봉에 이르렀다. DVD로만 출간되었음에도 꾸준한 사랑을 받아온 <플립>은 돌고 돌아 결국 ‘관객이 개봉시킨 영화’라는 명예로운 타이틀을 달고 극장에 등장했다. 그리고 개봉 한 달 만에, 관객 35만 명을 돌파하며 7년이라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대단한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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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첫 눈에 반하다 : 예쁘고, 풋풋하고, 사랑스러운”  


 이런 일련의 사실들을 몰랐던 나는 영화가 스스로가 이렇다고 단도직입적으로 들고 나온 단어들만을 간식삼아 혼자만의 극장으로 빠져들었다.

 소녀가 소년을 사랑하고, 그랬다가 실망하고, 그러자 소년이 소녀를 사랑하기 시작하고, 결국 소녀도 다시 소년을 사랑하고. 영화 <플립>을 본다는 건 흔한 어린 시절의 로맨스를 그 단어들 이상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걸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첫사랑이 어떻게 예쁘지 않을 수 있으며 풋풋하지 않을 수 있고, 사랑스럽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이 영화가 특별한 건 ‘사랑을 모르는 어린 아이가 자기도 모르게 사랑에 젖어드는 감정'과 '자신에게 불어닥치는 모든 바람과 함께 성장해나가는 모습'을 탁월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애초에 이 영화는 ‘감정’의 영화가 아닐 수 없다. 사실상 줄리와 브라이스가 직접적으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찾아보기가 힘들다. 두 사람은 6살 때부터 13살이 될 때까지 줄곧 함께였는데도 말이다. 같은 학교, 바로 앞집이라는 이유로 그들은 일상 속에서 서로를 목격하거나 마주쳤을 뿐. 러닝타임을 채우는 두 사람의 발화는 80%가 ‘독백’에 가까운 내밀한 속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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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베이커(매들린 캐롤)


 생물학적으로 여자아이는 2차 성징이 빠르게 시작됨과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조숙해지기 마련이다. 열 세 살의 줄리는 바로 그 질풍노도의 시기를 따듯한 가족들과 함께 헤쳐 나가는 당차고 매력적인 소녀다. 브라이스의 외할아버지인 체트가 말했듯이,  열 살 이나 많은 나조차도 푹 빠져들 만큼 줄리는 무지개 같은 사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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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브라이스 로스키를 처음 봤을 때, 나는 첫눈에 반했다. 

 이 얼마나 솔직한가. 아무리 속마음이라고 하더라도 우린 누군가를 좋아하는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마음을 스스로 인정하기를 거부한다. 로브 라이너 감독의 또 다른 영화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에서 해리가 샐리를, 샐리가 해리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지난한 우여곡절을 겪어야 했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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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미안한 건가? 아니면 스스로 기분이 나아지려고 그냥 그렇게 말하는 건가?  
그러다가, 나는 그 애가 부분보다 합쳐진 게 낫다고 
내 스스로 생각하고 싶은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의 눈을, 그 눈부신 눈을 보는 순간, 
처음으로 나는 브라이스 로스키가 부분보다 합쳐진 게 못하다고 확신했다.

  
 줄리는 자신이 키운 닭들이 낳은 계란을 브라이스네 집에 수차례 갖다 주지만, 브라이스는 그것들을 몰래 버리기 바쁘다. 우연찮게 그 모습을 목격한 줄리는 크게 실망하고, 그러던 중 브라이스의 외할아버지 체트에게서 ‘부분보다 합쳐진 게 나은 사람이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듣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쭈뼛쭈뼛 사과를 하는 브라이스를, 그의 눈을 들여다보며 부분이 나은지 전체가 나은지를 가늠해보고 있는 것이다. 그가 정말 미안한지 그렇지 않은지, 더 나아가 자신의 마음을 떠올려본다. 그리곤 결국, 그녀는 ‘못하다’고 확신하기에 이른다. 그녀를 정신없이 첫사랑으로 몰아넣은 그 눈빛이 이제는 오히려 브라이스에가 과분해보였던 걸까. 몇 줄로 완벽하게 요약된 그녀의 속마음은, 사람 자체에 대한 통찰력과 사랑하는 사람에게 실망해버리는 순간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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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이전엔, 다니엘은 그냥 하나의 이름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분은 가족의 일부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렀을 때 그는 내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유명한 시 구절이 떠오른다. 정신지체가 있는 아빠의 동생 다니엘을 처음으로 대면하고 눈앞에서 목격했음에도 그녀는 덤덤하다. 그저 그녀는 다니엘이 이제 그녀의 삶 속으로 들어왔음을 표명함으로써 다니엘과의 첫만남을 기록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성장 영화였다. 엄마, 아빠, 형제가 아닌 친구, 연인, 혹은 다른 누군가를 받아들임으로써 사람은 성장한다. <플립>은 어쩌면 한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는 길목에 놓인 짤막하고도 보편적인 장면들을 그려내고 있는 건 아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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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라이스 로스키(캘런 맥오리피)

 
 <플립>을 성장영화로 본다면, 사실상 극 중에서 가장 많은 변화를 겪는 건 줄리보다 브라이스라고 할 수 있다. 줄리는 처음부터 생각이 깊은 데가 있지만 브라이스는 전혀 그렇지 않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쉬는 시간이며 수업 시간이며 가리지 않고 장난을 걸던 남자애들, 딱 그 느낌의 소년이다. 하지만 그는 줄리를 사랑하게 되면서 보다 용감해지고, 보다 성숙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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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이상한 기분이 내 위장을 채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난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내가 실수를 했다. 
뭔가 태도를 바꿔야 할 시기다. 

 사랑이 무엇이라고 정의하기란 세상이 내로라하는 천재나 철학자도 감히 시도하기 어려운 과제가 아닐까 싶다. 하지만 최소한 묘사는 할 수 있지 않겠는가. < ‘숨이 멎는 듯했다’나 ‘머리에서 종이 울렸다’와 같이 처음 사랑이라는 게 꿈틀거리며 싹을 틔우기 시작할 때 어떤 느낌인지를 말이다. 위장을 그득하게 메우는 불쾌하지만 나쁘지 않다는 이 말도 꽤 괜찮은 묘사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거다. 나도 모르게, 부인하고 싶은 사람으로부터 이미 시작하는 사랑도 있는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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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걔한테 넌 나만큼 줄리를 모른다고 말해!) 그렇지
 걘 선을 넘었다. 
그리고 걔가 넘어선 곳 바로 옆에 있는 건 우리 아빠였다. 

 친구인 게트가 줄리의 작은 아버지를 욕되게 했을 때, 브라이스의 입에서는 ‘그렇지’라는 말이 튀어나와 버린다. 하지만 난 브라이스에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줄리의 솔직함이 훌쩍 커버린 내가 봐도 멋있었다면, 브라이스의 위선은 부끄럽지만 여전히 이해가 됐다. 분위기를 맞추고 상대의 기분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가끔은 가시 돋힌 말들을 아무렇지 않은 척 삼켜버린다. 그게 잘못된 의견이라는 걸, 언짢은 발언이라는 걸 몰라서가 아니라, 너무나도 잘 알아서 그렇다. 줄리가 겁쟁이라고 말하기 훨씬 전부터 스스로가 겁쟁이라는 걸 브라이스 자신은 알고 있었으리라. 그렇게 <플립>은 어린 아이의 묘한 죄책감과 가식을 포장하지 않고 투명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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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 베이커는 내 삶에서 밀려났다.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내가 걔한테 밀려났다.

 줄리가 다니엘을 자신의 원 안으로 들여놓던 시기에, 브라이스는 줄리의 원 밖으로 떠밀렸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사랑하는 사람의 삶에 자신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어떤 영향도 미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란 쉽지 않다. 브라이스는 은연중에 그 사실을 인지했으며, 줄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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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눈은 뒤집혔다, 완전히 

 Fliipped으로 시작한 이 영화는 브라이스가 넘어진 줄리의 자전거를 보며 그녀를 향한 자신의 마음을 확인하면서 결국 Flipped으로 이어진다. 두 소년소녀가 만들어내는 아기자기한 수미상관 구조에 미소가 절로 새어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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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녀노소 불문하고 사랑은 그것이 최악이었던 최고였든지 간에 사람을 더욱 깊어지게 하는 건 사실인 듯하다. 메이필드 후원자 클럽 경매에서 줄리에게 상처를 줘버린 브라이스는 미안함과 당혹감에 전화도 걸어보고, 대문을 두드려보기도 한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모든 걸 그만둔 채, 줄리가 사랑했으나 브라이스는 싫어했던 잘려나간 플라타너스 나무를 그녀의 마당에 심어주기로 한다.
 

 이 영화는 부분보다 전체가 나은가, 그렇지 않은가? 비록 대사 하나하나를 뜯어 글을 써내려왔지만, 사실 <플립>은 부분보다 전체가 나은 영화다. 그건 아마 두 사람이 미숙해서 일거다. 그래서 예쁘고, 그래서 성장하며 앞으로도 성장할 것이다. 줄리의 마당에 심어진 플라타너스 나무와 함께.





보암보암?   
: 이모저모 살펴보아 짐작할 수 있는 겉모양이라는 뜻의 순 우리말

감정과 느낌의 응축이라고도 할 수 있는 문화예술로부터
감정과 느낌이 가진 모습들을 평범하게, 동시에 독특하게 풀어내어
보암보암이란 이름처럼 따듯하고 몽글몽글한 글을 써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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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채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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