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術紀行] 작품과의 인터뷰(5) - 제프 월 ‘이야기꾼’

글 입력 2017.08.30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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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과 친해질 수 있는 질문
작품과의 인터뷰
다섯 번째, Jeff Wall < Storyteller >



 여름의 무더위가 바람에 모두 쓸려간 듯, 앞머리를 헝클어뜨리지 않을 정도의 선선한 바람이 부는 계절이 찾아왔다. 저번 만남에 자신이 모델들과 함께 작업하는 장소로 나를 초대하겠다는 약속을 한 제프 월과 만나기로 한 날이다.


크기변환_A-view-of-the-south-side-of-Queens-Quay-showing-the-Simcoe-Wave-Deck-pedestrian-promenade-Martin-Goodman-Trail-and-TTC-right-of-way-2.jpg
 

 차가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회색 다리 아래는 같은 회색빛을 가진 돌바닥이 있고 청바지를 입은 한 남성이 사색에 잠긴 듯한 모습으로 앉아있다. 그 옆으로 풀밭이 이어지는데, 봄기운이 묻어나는 풀밭이라기보다 다 죽어가는 풀을 보는 듯하다. 사람의 흔적이 드문 곳에 군데군데 사람들이 무리지어 앉아있는걸 보니 저 사람들이 모델인 것 같은데…. 체력이 약한 나는 이 언덕을 오르는 것조차 너무도 숨이 찬다. 나는 제프 월을 찾는다.


 (헉헉) 여기서 뭐하세요!

 오, 마침 잘 오셨어요. 이제 막 모델의 위치를 잡고 있는 중이었어요.

 대체 이런 곳에서 어떤 작업을 하고 계신건가요. 올라오는데 너무 힘들었어요.


 제프 월은 나의 말을 듣긴 한 건지, 자신의 일에 다시 열중하기 시작했다.

 삐질삐질 흐르는 땀을 손등으로 닦으며 모델들에게 지시를 내리고 있는 제프 월의 옆으로 가 그의 시선이 향하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메마른 풀밭 구석에 앉아있는 세 사람.


크기변환_2_wall_the-storyteller_1986-web.jpg
Jeff Wall, < Storyteller >, 1991


 자, 갈색 자켓 입은 남성분. 오른쪽 다리를 세워주시고 그 다리에 오른쪽 팔을 올려서 턱을 괴어주세요. 아, 지금 자세 좋아요.


 뭐지… 어디서 많이 보던 그림인데….

 제프 월이 지시를 내리고 있는 모델 세 명의 포즈가 어딘지 익숙하다. 내가 저 모델을 만난 적이 있는 건 아닐 테고, 대체 뭘까.


 무슨 혼잣말을 하시는 건가요. (허허)

 어디서 본 그림 같아서요. 뭔가 미술책에서? 에두아르 마네가 그린….

 예리하시네요. 프랑스 화가 에두아르 마네의 그림 중 < 풀밭 위의 점심 식사 >의 이미지를 빌려왔어요.


크기변환_untitled.jpg
Edouard Manet, < Le Déjeuner sur l'herbe >, 1863


 지난번 만남에 봤던 작품도 그렇고, 과거 그림에서 이미지를 많이 빌려오시네요.

 당신이 살고있는 시대의 사람들은 나에게 포스트 모더니즘 작가라고 말하지 않나요? 포스트 모더니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음, 글쎄요.

 한마디로 말하면, 전통을 무시하던 모더니즘에 대한 반기로 과거의 다양한 사조들을 재조합/결합해 작품을 만드는 게 포스트 모더니즘이에요. 이런 개념을 ‘차용’이라고 하지만, 뭐 용어에 연연하지 않아도 괜찮아요. 모더니즘은 과거의 미술 전통을 의지해야 한다는 생각을 거부했어요. 그게 자기의 신념이 아니라 강제로 거부해야 한다는 생각이 심어진 것일 수 있죠. 나는 원본성이라는 관념 자체나 문명이 계속해서 진보해야 한다는 개념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실례되는 질문일지도 모르겠지만, 남의 작품을 가져와서 이용하는 건 창조적이라고 볼 수 없지 않나요?

 당신은 예술가의 창조성이 타고난 산물이라고 생각하나 보군요. 하지만 타고난 천재는 없어요. 다들 이렇게 자신이 사용하고 싶은 이미지를 빌려 오거나 그 기법을 이용해 작품을 만들 자유가 있죠. 때론 개인의 창조력보다는 과거의 유산에 의존해도 돼요. 언제까지 사람들이 예술가에게 천재성을 부여할지, 유일한 작품을 만들기를 원할지 모르겠네요.

 나는 주로 명작을 재현해요. 저번과 마찬가지로 오늘의 작업 또한 명작의 재현이죠. 물론 마네의 작품이 주는 인물의 거리감이나 배경은 제 작업하고 달라요. 하지만 등장인물 사이의 관계가 닮아있어서 이걸 볼 때 두 작품이 서로 닮았다라고 생각하게 되죠.


크기변환_13_Sudden.jpg
Jeff Wall, < A sudden Gust of Wind, after Hokusai >, 1993


13.jpg
Katsushika Hokusai, < A Sudden Gust of Wind >, 1833


 나는 제프 월이 나에게 한 말을 다시 생각하며 그가 작업하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이렇게 보고 있자니 저번 만남에서 제프 월이 나에게 ‘사진은 현실적이기 보다는 회화만큼이나 아니면 회화보다 더 의도되고 연출된 것이라는 사실’이라고 한 말이 조금은 와 닿는 것 같다.


 저번에 저에게 하신 말씀이 이제야 이해가 되는 것 같아요.

 하하, 그렇다면 다행이네요. 나는 언제나 ‘보이는 것’과 ‘보여지는 것’사이의 차이를 고민해요. 보이는 것은 ‘실재하는 것’이고 보여지는 것은 ‘재현되는 것’으로 볼 수 있겠죠.

 당신이 나의 이야기에 흥미를 갖고 들어줘서 해주는 이야기인데, 난 70~80년대 백인사회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나에게 보이는 것은 백인들의 부유한 삶이라면 내가 재구성하고 싶은 것은 백인 소시민과 중산층들의 사회에요. 결론적으로, 나는 현대인의 삶을 그려내는 회화적인 작가이고 싶어요.


 제프 월이 말을 마치자, 찰칵 소리와 함께 거센 바람이 불었다.



제프 월은 언제나 현대인의 삶을 그려내는 회화적인 작가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전문 필진_ 박이슬

보고, 듣고, 느끼다 : 美術紀行


전문 필진_박이슬.jpg
 



[박이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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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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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adyJ
    • 안녕하세요, 이번 8차 두레에 참여하게 된 11기 에디터 주유신입니다. 이번 두레 리스트를 보면서 에디터님을 알게 되었고, 9기 에디터로서 활동하셨을 때부터 문화 리뷰단으로, 그리고 전문 필진이 되시기까지 쓰셨던 몇몇 글들을 읽어보았습니다. 초창기부터 전시에 지속적인 관심을 두고 그에 대한 애정을 보여오신 것 같아요. 저도 그렇습니다. 아직 아트인사이트 활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저 또한 전시와 전시에서 보여주는 미술작품에 가장 큰 매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박이슬 에디터님의 글들은 이해가 편했습니다. 미술사를 따로 공부한 적은 없지만, 이 글을 포함해서 에디터님이 쓰신 글들을 보면서 이해가 잘 안됐거나, 어렵게 받아들여진 부분은 없었습니다. 아마 에디터님의 글을 보시는 다른 분들도 그렇게 느끼시지 않을까 하고 생각해봅니다. 전시예술은 감상자에 따라 작품을 감상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다르고, 그 감상의 폭이 무한히 달라진다는 데 큰 매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전시를 더 어려워하고 꺼려하는 사람들도 분명 존재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디터님의 글은 친숙한 대화형식을 통해 처음 예술을 접하는 사람이 쉽고 재밌게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는 듯 합니다. 앞으로도 현재 연재하고 계시는 '작품기행'을 비롯해 에디터님이 쓰시는 글들을 관심 있게 보겠습니다. 이번 기회에 에디터님을 알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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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유인
    • 안녕하세요. 두레 참가 중인 11기 최지은입니다. 글을 굉장히 재밋게 읽었어요. 흡입력이 있어서 스토리 속에 빠져있다 왔네요. 저도 글 내용과 같이 순도 100%의 창조성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의 이미지는 이미 차고 넘치기 때문에, 그 이미지를 어떻게 '자신만의 방법으로 이용'하느냐에 따라 개성이 드러나고 강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차용하는 부분이 너무 재밌었어요. 저도 사진과 회화의 관계성을 흥미롭게 생각했었는데, 보이는 것과 보여지는 것에 관한 부분도 참 재밋는 것 같습니다. 덕분에 사진작가를 알게되어 기쁩니다. 완벽한 재현에 대한 의미도 생각하게 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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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깥
    • 안녕하세요. 11기 에디터 김나윤입니다. 저는 미술사에 대해 상식이 전무한 편인데도 글이 쉽게 잘 읽혔어요. 특히 칼럼을 담화 방식으로 구성하셔서 이론을 풀어내도 쉽게 느껴집니다. 무엇보다 재미있습니다. 읽으면서, 독자들이 참 쉽게,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회화가 '재현된 것'이고, 사진은 회화보다 '실재하는 것'에 가깝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이 글을 읽으면서, ‘사진은 현실적이기 보다는 회화만큼이나 아니면 회화보다 더 의도되고 연출된 것이라는 사실’이라는 제프 웰의 말을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재현'이 '좋은 재현'인가하는 생각도 드네요. 많이 배워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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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EONBEULLI
    • 안녕하세요 이번 두레에 참여하게 된 11기 에디터 이채연입니다!
      글 정말 잘 읽었습니다. 항상 모든 작품 속에서 주목받는 것은 창조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조성이 있는 작품을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전환시켜 주고 더 재미있는 삶을 살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때로는 우울감 해소에 도움이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저 또한 모방 없이 창조는 일어날 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을 읽고서 더욱 뚜렷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모방을 할 수 없는 사람은 창조도 불가능하다는 고등학교 때 미술 선생님께서 하시는 말이 떠올랐습니다. 에디터님 덕분에 다시금 좋은 생각 갖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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