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 '네더'가 던지는 세 가지 질문

연극 '네더' 리뷰
글 입력 2017.09.01 21:4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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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더_포스터_아이리스.jpg
 

이 오피니언에는 연극 <네더>의
강력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연극 < 네더 >는 조금 어렵고 무거운 연극이다. < 네더 >는 관객들에게 90분 내내 끝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들은 우리가 오래 전부터 당연하다고 믿어온 것들이 정말 그런가 연극 제목처럼 '밑바닥'부터 고민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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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상 세계에서의 검열은 타당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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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더>가 던지는 가장 핵심적인 질문일 것이다. 현실세계에서는 윤리적으로 용납될 수 없는 일들을 마음껏 행할 수 있는 가상세계 '네더'. 숲을 산책하며 또는 어린 아이를 죽이며 느껴지는 감각은 생생하지만 그것은 뇌의 착각일 뿐, 실제로는 숲도 죽는 아이도 없다. 실제처럼 느껴지지만 실재하는 공간이 아니라는 점에서 네더는 우리의 머릿속과 비슷하다. 조금 더 감각이 생생하게 살아있는 머릿속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이미지, 감각 이런 건 덧없는 거요.
중요한 것은 관계요, 관계!"

"감각은 우리의 입구입니다.
세상의 규칙을 이해하는 입구."


누구나 머릿속에서는 한번 쯤 금지된 상상을 하지 않냐며 네더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그것과 다를 바 없기 때문에 규제가 일절 불필요할 뿐만 아니라 타당하지도 않다고 말하는 심즈. 그런 심즈에게 형사 모리스는 세상에 일어난 모든 끔찍한 일들은 실제로 일어나기에 앞서 누군가의 머릿속에 있던 것들이라 반박한다. 두 인물이 하는 이야기는 마치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논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는 이 문제에 대해 '진짜같은 거짓말'을 생각해 보았다. 진실이 아닐지라도 진실만큼 위력을 행사하는 거짓말이 있다면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가 더 이상 중요할까? '네더'의 세상은 물리적인 형태가 있는 건 아니다. 하지만 거기에 접속한 사람들이 모든 감각을 현실과 구별하기 힘들만큼 생생하게 느낀다면, 그 감각이 너무 진짜같아서 현실을 대체할 정도의 수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네더'의 실재 여부와 상관없이 그 세계가 너무나 생생해서 현실세계를 대체하기 시작했다면 네더에서도 나름대로의 규범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게 내 생각이다. 물론 그 규범이 현실세계의 기준과는 다르게 만들어질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2. 가상현실은 실제 현실을 대체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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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네더> 속 현실 세계는 디스토피아에 가깝다. 미루나무의 묘목이 희귀할만큼 환경이 파괴되었고 사람들은 의식주를 비롯한 많은 것들을 가상세계 속에서 해결한다. 이런 세상에서 가장 해결하기 힘든 부분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문제인 것 같다.

연극의 주요 등장인물 세 명(심즈, 도일, 모리스)이 '네더'에 접속하게 된 계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공통적으로 네더에서 그들은 육체적 조건이나 사회적 지위 등 현실에서 주어진 껍데기를 버리고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모습으로 타인과 진실한 관계를 맺으려 한다. 그러나 실제 현실 속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감추는게 과연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모습'이 될 수 있는 방법인지 의문이다. 익명성을 얻어야만 솔직해질 수 있는 모순 속에서 그들은 서로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현실세계에서의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현실세계 속 자신의 모습은 숨기고 싶은 동시에 드러내 보이고 싶은 달콤한 비밀이다. 신으로부터 주어진 현실의 모습을 극복하고 가상현실에서 맺으려 했던 진실한 관계에 대한 욕망. 그래서 그 욕망은 채워지는가? 아니다. 결론적으로 셋은 모두 그 욕망을 충족시키지 못했으며 '네더'에서 맺었던 관계는 또 다른 상처로 남았다. 그들은 현실에서의 모습이 진실된 모습이 되기 위해 벗어던져야 할 껍데기가 아닌 오히려 진실의 일부분일 수도 있다는 점을 간과했다. 인류가 물리적 형태 없이 아예 디지털화 된 상태로 존재하게 된다면 몰라도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상 가상현실이 실제 현실을 완전히 대체하기에는 한계가 있을 것이다.



3. 우리는 사랑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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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파와 아이리스의 관계는 현실에서는 절대 용납될 수 없다. 아이는 성적자기결정권이 없기 때문에 보호의 대상이지 성애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지만 네더에서 각 인물들의 모습은 실제가 아니고 도일의 경우 자신의 의지로 아이리스 역할을 맡았다. 이런 경우, 파파와 아이리스의 사랑은 성립될까? 생각할 여지가 많아진다.

연극을 보기 전 시놉시스를 읽을 때는 이 연극을 보며 사랑이라는 단어가 떠오를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연극을 보면서, 또 보고 나온 뒤에 생각하면 할수록 사랑이 떠올랐다. 파파와 아이리스, 심즈와 도일 그리고 우드넛과 아이리스, 모리스와 도일. 가상과 현실을 넘나드는 이들의 관계를 사랑이라는 말을 빼놓고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비록 그 사랑이 보기에 불편할지라도 말이다.

연극을 보면서 자꾸 도일에게 감정이 이입되어 그가 안쓰러웠다. 도일이 자살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자신의 또다른 모습(아이리스)이 타인에게 알려졌다는 수치심보다도 진정한 사랑이라고 믿었던 파파와의 관계가 사실 혼자만의 착각이었다는 깨달음 때문이었을 거다. 연극의 중반쯤 날 사랑하냐고 묻는 아이리스의 말에 귀찮은 듯한 표정을 짓는 파파의 모습과 연극의 마지막 장면에서 날 사랑하냐고 묻는 도일의 말에 웃으며 그렇다고 말하는 심즈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마지막 장면의 심즈의 모습이야말로 도일이 꿈꾸던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이리스가 첫사랑이었음을 고백하는 모리스 역시 그렇다. 그녀가 사랑한 사람은 '네더'의 아이리스지 현실의 도일이 아니다. 모리스는 아이리스를, 도일은 파파를, 그리고 심즈는 네더 속 아이리스의 이미지를 사랑했다. 이들은 껍데기를 벗어던지고자 네더로 갔지만 결국 서로의 껍데기만을 좇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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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더(nether)' 는 극 중에서 가상세계를 지칭하는 말인 동시에 '아래의, 밑의' 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 뜻대로 연극 속의 네더는 인간의 욕망을 밑바닥부터 조명하고 당연하게 여겨지는 윤리를 밑바닥부터 다시 고찰하게 만든다. 연극을 보며 수많은 질문들이 머릿속으로 쏟아졌지만 연극을 본 지 일주일이 지나도 나는 답을 내리지 못한 채 생각만 늘어났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의 논리에 나 스스로가 걸려 끝없이 넘어지고 있는 기분이다. 앞서 쓴 세 가지 질문에 대한 생각도 언제 바뀔지 모르겠다.

그러나 복잡하고 머리가 아프다고 해서 <네더>의 이야기를 먼나라 이야기처럼 가볍게 생각할 수는 없다. 점점 가상현실이 우리가 있는 실제 현실을 침범해 오는 상황 속에서 새롭게 논의되어야 할 내용 또한 넘쳐나기 때문이다. 답을 내리기가 쉽지 않다 해도 다양한 논의와 함께 미래를 맞이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경우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게 바로 연극 <네더>가 갖는 의미이자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이다. 우리는 새로운 세상을 대비하기 위해 건강한 논의가 좀 더 필요하다.





<공연 정보>

공연기간: 2017.8.24(목)~9.3(일)
장소: 동양예술극장 3관
러닝타임:90분
제작: 극단 적
기획:K아트플래닛
관람연령: 15세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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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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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  
  • Hoolo
    • 와.. 연극 리뷰를 보면서도 마음이 아프네요..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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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갈매나무
    • 2017.09.03 15:4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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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olo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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