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우리의 '난 미쳤어'

베티블루 37.2 너에게 겹쳐놓은 온도, 사랑 앞에 미친 베티에게
글 입력 2017.08.31 23:5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난 미쳤어
_ 베티블루 37.2 너에게 겹쳐놓은 온도,
사랑 앞에 미친 베티에게



광인.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이 미쳤다거나 미쳐 가고 있다는 생각에 자주 사로잡힌다.
 
1백년 전부터 광기(문학적인)는 랭보의 “나는 타자이다(Je est un autre)”라는 말에 근거한다고 생각되어져 왔다. 광기는 탈개성의 체험이다. 그러나 사랑의 주체인 나에게는 정반대이다. 주체가 되는 것, 주체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 바로 그 사실이 나를 미치게 한다. “나는 타자가 아니다.” 바로 그것이 내가 공포 속에 인지하는 것이다.
 
나는 한결같이 나 자신이다. 바로 그렇게 떄문에 나는 미치는 것이다. ‘변하지 않기’ 때문에 미치는 것이다.

 
“나는 사회화하지 않는다(je ne socialise pas)
(마치 우리가 누군가에 대해 상징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처럼)."
      
_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나는 미쳤어 부분
   
    
*
    
 
나는 그를 모른다. 나는 그의 속눈썹이 얼마나 길고 탐스러운지 알고, 속눈썹의 그늘이 꼭 흑백영화 속 여자의 속눈썹을 떠올리게 한다는 걸 안다. 그의 둥그런 엄지손톱이 얼마나 커다란지 알고, 그가 가장 즐겨 입는 셔츠가 무엇인지 안다. 난 그가 씻고 난 뒤 등의 물기를 덜 닦아 침대를 축축하게 젖힌다는 걸 알고 자고 일어난 그의 뒷머리가 바짝 눌려 올라간다는 걸 안다.  
 
난 그의 속눈썹을 쓰다듬을 수 있고, 그의 손톱과 내 손톱을 비교할 수 있다. 그가 허물처럼 벗어 놓은 셔츠를 입어볼 수 있고 그의 젖은 등을 닦아줄 수 있다. 그의 머리를 한참 쓰다듬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난 그의 속으로 파고들지 못하는 게 너무나 아쉬워서 그의 뒷모습을 종종 노려본다. 한 침대에 나란히 누워도 그와 나는 한 폭으로 포개어질 수 없다는 사실 앞에 뻐근하게 몸을 뒤척인다.
 
그는 나를 말하고 나를 위해 때때로 증언하며 나를 설명하겠지만 (나또한 그러하겠지만) 그럴수록 우리의 몸이 쪼개어져있듯이 그와 내가 서로에게 객관화되어있다는 사실에 섬뜩하다. 나는 타자가 아니다. 난 공포 속에 인지하는 것이다. 아무리 오래도록 그를 바라보고 쓰다듬는다 해도 그를 완전히 알아낼 수는 없음에, 그의 삶의 문법과 태도를 완전히 해석할 수는 없음에, 그 사실들을. 공포 속에 인지한다.
      



너에게 온통 다 내어주고 너의 모든 것에 나를 겹쳐 두고 싶다는 욕망 앞에 우린 때로 침울하고 때로 미치고야 만다.
 
나와 타자의 분리는 오래전 한 몸이었던 우리가 번개를 맞아 갈라졌던 그 때를 상기시키고 무서움 앞에 벌벌 떨면 광기인지 정열인지 모를 혼란스러움을 떨어뜨린다.
 

KakaoTalk_20170831_234740207.jpg
 
KakaoTalk_20170831_234739939.jpg
 

너무나 사랑하고 지나칠 만큼 전부를 바쳐 정열을 태우고 태워도, 아무리 넓고 아늑한 곳에서도 숨 막혀 달아나는 베티처럼. 무슨 수를 써도 담을 수 없는 것을 박박 긁어모으려는 공허한 눈처럼. 더 없이 혼란스럽고 막막하게 사랑 앞에 우린 결국 타자, 한결같이 나 자신, 그렇게 미치는 것이다.
 
집 밖으로 뛰쳐나가 도망하고, 얼굴을 망치고, 머리카락을 잘라내고, 유리창을 맨 손으로 내리치면서. 저 문 너머 나와 다른 공간에 앉아 있는 그를 보는 일은 바르르 떨리는 입술에서 요동치는 몸까지. 주체할 수 없는 미침을 선사한다.
 
흘러내리는 까만 화장을 한 베티의 얼굴을 마주한 조그. 조그가 아무리 제 얼굴을 망치려 온통 더러운 것을 끼얹어도 베티의 미침을 잠재울 수 없듯이, 조그는 여전히 베티의 맞은 편이라는 물리적 공간처럼. 주체가 되는 것, 주체가 되는 것을 막을 수 없는 것, 바로 그 사실이 베티를 미치게 한다. (위의 인용구 재인용) “나는 타자가 아니다.” 바로 그것 때문에.
 
삶을 바쳐도 나는 한결같이 나 자신, 바로 그렇게 떄문에 미치는 나. ‘변하지 않기’ 때문에 미치는 나. 사랑 앞에 미치는 베티. 나와 베티. 그와 조그.


KakaoTalk_20170831_232955803.jpg
 
KakaoTalk_20170831_232955063.jpg





- 사진, 영화 장면


[양나래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