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탐닉하고 싶어지는 그녀의 생각, 인생의 일요일들

글 입력 2017.09.01 14:26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얼마 전 <비포 선라이즈>에 관한 오피니언 한 편이 올라왔다. 그저 <비포 선라이즈>라는 이유로 그 글을 읽을 수밖에 없었고, 개인적으로 글 자체도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어슴푸레 난다. 오피니언의 필자는 <비포 선라이즈>를 ‘대화의 영화’라 평하고 있었다. 영화 자체가 끝없는 대화로 가득하니 당연한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그렇기에 무엇보다도 정확한 표현이었다. 더 나아가 생각해보면, 이 영화는 ‘생각의 영화’다. 셀린(줄리 델피)와 제시(에단 호크)가 밤이 새도록 쉬지 않고 대화를 할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언제나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엔나의 길목을, 다리를, 상점 앞을 지나갈 때 두 사람은 단순히 ‘아-예쁘다’ 하지 않았다. 몽상가처럼 셀린과 제시는 이방인으로 그 도시를 거닐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던 것이다.

 이병률 작가의 여행 산문집을 무척이나 좋아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의 책은 어디에 가서 무엇을 먹고 무엇을 봤다며 정보를 주절주절 늘어놓고 편협한 조언으로 마무리 짓지 않는다.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대한 기록이 그의 산문집이다. 글의 초점이 ‘생각’에 있어 산문집에 실린 사진들이 어디서 찍은 것들인지 대체로 알 수가 없다. 정혜윤 작가의 <인생의 일요일들>은 내가 이토록 찬양하는 ‘생각’에 기반을 두고 있다.
4.jpg
 그녀는 우연히 숲 이야기가 담긴 메일 한 통을 받았던 일에서 이 책이 시작되었다고 말한다.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이야기로 답장을 쓰고 싶었던 그녀는 2015년 여행했던 그리스에서의 기억을 편지로 써내려갔던 것. 편지는 주로 일요일에 쓰였기에 ‘일요일의 편지’가 되었고 그들이 모이고 모여 ‘인생의 일요일들’이라는 이름을 갖게 된 것이다.

 글에서 작가는 바쁘게 흘러가는 한국에서의 일상과 지칠 대로 지쳤을 때 방문했던 그리스의 기억 사이를 자유롭게 오간다.


“산토리니의 일몰보다는
교통사고로 쓰러진 당나귀를
더 오래 기억하고”


 그녀는 생각을 여행한다고 말한다. 일상에서 그리스로. 비행기도 배도 아닌 생각으로. 그런데 그렇게 도착한 그리스에서의 기억이란게, 생각이란게 이토록 따듯하고, 아기자기하고, 소박하고, 느릿느릿하다니.그녀의 일요일들을, 그녀의 생각들을 찬찬히 탐닉하고 싶어졌다. 나도 그리스 산토리니로, 그 당나귀 옆으로 쓸려가고만 싶어졌다.


달콤한 것도 같고
잘 마른 빨래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하고
낯익은 침대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하고. 이건 뭐지?
아, 이건 일요일의 냄새잖아!
p.18-19


매일매일이 일요일 같기를 바랐어요. 
좀 더 정확히 말하면 일상과는 조금 ‘다른 시간’, 
그 시간을 계속 넓혀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 ‘다른 시간’ 속에서라면 저는 이 세상에 있는 것이 덜 힘듭니다. 
힘들기는커녕 거의 편안해요.
우울한 날은 우울한 채로 편안해요.
p.132


 인생에 일요일이란 어떤 날일까. 휴식을 취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일상과는 조금 다른 시간 속에서 자신의 마음이 진정으로 추구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인생의 일요일이라고 작가는 말한다. 그건 결국 반드시 먼 외국으로 나가지 않아도, 하루 왠종일 쉴 수 있는 빨간날이 아니더라도 일요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린 너무 바쁘다. 빠르고, 벅차다. 하지만 이렇게 흘러가야만 한다면, 그게 이 시대의 인간군상이고 거기서 벗어날 수 없다면, 스스로 일요일을 찾는 것도 꽤 괜찮은 방법이 아니겠는가. 그녀가 말했듯이 늘 행복해야 할 필요도 없다. 우울한 날은 우울한 채로 편안하듯이, 그저 오로지 나 자신이면 되는 것이다. 나 자신의 생각에 집중하면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작가는 그리스에서의 추억을 일상 속에서 곱씹으며 생각 여행을 다니는 게 아닐런지. 이렇게 피상적인 문장으로는 감이 느낌이 안 온다면, 그녀의 에세이에, 그녀의 생각에 다같이 몸을 맡겨보는 것은 어떨까.
 
인생의일요일들_입체(띠지).jpg
 
| 지은이 |  정혜윤
 CBS 라디오 프로듀서, 에세이스트

 2007년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침대와 책》을 시작으로 독서 에세이 《삶을 바꾸는 책 읽기》, 《세계가 두 번 진행되길 원한다면》을, 동시대 사람들에게 배운 삶의 지혜를 담은 《그들은 한 권의 책에서 시작되었다》, 《사생활의 천재들》, 《여행, 혹은 여행처럼》, 《마술 라디오》를, 쌍용차 해고 노동자의 내적인 삶을 담은 르포르타주 에세이 《그의 슬픔과 기쁨》, 여행의 기억과 생각들을 모은 《런던을 속삭여줄게》, 《스페인 야간비행》을 펴냈다. <김어준의 저공비행>, <공지영의 아주 특별한 인터뷰>, <김미화의 여러분>,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세월호 유족들의 목소리를 담은 팟캐스트 <416의 목소리 시즌 1>, 정치 팟캐스트 <파라다이스 조선 정치 옹알이> 등과 비정규직 문제 등 사회성 짙은 국내외 라디오 다큐멘터리를 제작했다.
 CBS 특집 다큐멘터리 <불안>으로 제40회 한국방송대상 다큐멘터리 부문 작품상,  CBS 세월호 참사 2주기 특집 다큐멘터리 <새벽 4시의 궁전>으로 제 43회 한국방송대상 다큐멘터리 부문 작품상, 2012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우수상, 2013 방송통신위원회 방송대상 우수상, 제10회 한국 방송프로듀서상 작품상, 제18회 한국 방송프로듀서상 작품상 외에 다수의 직품상을 수상했다.


1.jpg

ㅣ차례ㅣ

서문
일요일의 편지 1 이건 일요일의 냄새잖아!
일요일의 편지 2 낡은 자아를 새로운 자아로 바꿀 준비
일요일의 편지 3 산토리니의 당나귀야, 다시 살아볼 기회를 얻었니?
일요일의 편지 4 이 거친 세상에 파피루스의 자리가 있을까
일요일의 편지 5 무엇을 믿어야 가장 좋은 것을 얻을까요
일요일의 편지 6 에피다우로스는 닮고 싶은 곳이에요
일요일의 편지 7 중요한 개념들로 나만의 사전 만들기
일요일의 편지 8 이마와 눈에 별이 부딪히는 방
일요일의 편지 9 아름다움은 해법이 아닌 힘을 줘요
일요일의 편지 10 그저 과거로만 돌아가는 회복은 원치 않아요
일요일의 편지 11 죽음이란 새싹을 위해 떨어진 낙엽에 불과해
일요일의 편지 12 테살로니키의 쇠똥구리에 대해 물으신다면
일요일의 편지 13 이야기가 선물이 될 때
일요일의 편지 14 자기 치유의 신이 내게 최선을 다하라고 했어 
일요일의 편지 15 많이 찾아다녔어요, 그 하늘 같은 얼굴을 
일요일의 편지 16 기쁠 때 기뻐하고 슬플 때 슬퍼하세요
일요일의 편지 17 신이여, 더 강한 적을 보내줘요
일요일의 편지 18 에게 해를 못 봤다고? 천국에 들어올 자격이 없어
일요일의 편지 19 하데스의 입구를 보고 싶었어요
일요일의 편지 20 그 애들은 그렇게 죽어서는 안 되는 거였어

2.jpg

일요일의 편지 21 세상의 끝에서 수줍은 불멸을 만났어요
일요일의 편지 22 존 할아버지, 묻고 싶은 게 많아요
일요일의 편지 23 네 안의 빛이 어두워지면 그 어둠은 얼마나 크겠니
일요일의 편지 24 햇빛을 가리지 말아줘요
일요일의 편지 25 디오게네스처럼 선을 긋겠어요
일요일의 편지 26 영혼을 찾고 싶을 때 산을 바라봐요
일요일의 편지 27 숲은 말이 없고 그냥 나와 같이 있어요
일요일의 편지 28 여자들은 모두 헬레네예요
일요일의 편지 29 세상에 봐야 할 것은 왜 이리 많나요
일요일의 편지 30 외치고 나니 눈물이 조금 흘렀어요
일요일의 편지 31 두려운 것의 등에 올라타요
일요일의 편지 32 세 가지 단어를 말해주면 그 집에 묵을게요
일요일의 편지 33 그곳에서 어둠은 낮을 품고 있어요
일요일의 편지 34 내 마음이 내 몸을 보내고 싶어 하는 곳으로 
일요일의 편지 35 막다른 길에서는 오이디푸스를 생각했어요
일요일의 편지 36 길 같지도 않은 좁은 길을 계속 가봐요
일요일의 편지 37 ‘당신은 여행 끝에 아주 멋진 선물을 받을 것이다’
일요일의 편지 38 제 미래에 대해서 한 가지 알게 되었어요
일요일의 편지 39 일요일에는 놀라운 이야기를 듣기로 해요

3.jpg
 





아트인사이트 tag.jpg
 

[반채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