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귀로 듣는 가을 [음악]

글 입력 2017.09.0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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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이 변하는 걸 알아차린 건 몸이 먼저였다. 며칠 전 코가 막히는 느낌에 새벽에 눈을 떴다. 비몽사몽 바라본 푸르스름한 창문 틈 사이로 쌀쌀한 바람이 불어왔다. 강렬하기만 하던 햇살의 색이 바랜 것을 느끼며, 길거리에 가득해진 가을 옷과 시즌오프 세일 중인 여름 옷을 보면서, 매미소리를 누르고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를 들으면서 새로운 계절로 가고 있음을 실감한다. 계절이 바뀌니 듣는 음악도 바뀐다. 여름 내내 잘 들었던 댄스곡들은 여름 옷과 함께 잠깐 서랍에 넣어둘 때가 없다. 느린 템포의 통기타소리가 어울리는 계절이다.

가을이면 바뀌는 나뭇잎의 색들이 모두 미묘하게 다른 것처럼 가을에는 수많은 색이 있다. 누군가에게 가을은 한 해가 끝나간다는 걸 알려주는 알람일 것이고 다른 누군가에게는 뜨거운 계절을 견딘 후 받는 선물일 것이다. 물론 '천고마비' 라는 말이 있듯이 독서를 하기에도, 맛있는 걸 먹기에도 좋은 계절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을 하면 쓸쓸하고 그리운 정서가 먼저 떠오른다. 겨울로 가는 길목에서 낮은 점점 짧아지고 푸르던 나뭇잎도 하나 둘씩 낙엽이 되어 가기 때문에 더 쓸쓸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가을에 어울리는 수많은 음악들 중 유난히 쓸쓸함이 배어 나오는 노래 열 곡을 소개하려고 한다.





1. 가을방학-가을방학



넌 어렸을 때만큼
가을이 좋진 않다고 말했지
싫은 걸 참아내는 것만큼
좋아할 수 있는 마음을
맞바꾼 건 아닐까 싶다며


 가을 하면 역시 가을방학이다. 팀 이름부터가 '가을'방학인 이들의 노래는 가을에 잘 어울린다. 수많은 곡들 중에서도 가을방학 멤버인 정바비와 계피가 팀으로 처음 작업한 노래이자 팀 결성의 계기가 되었던 곡, '가을방학'을 첫번째 곡으로 들고 왔다. '가을만 방학이 없어 그게 너무 이상했었다며 어린 맘에 분했었다며 웃었지' 라는 대목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끄덕이면서 가을에도 방학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방학 없이 지나기에 가을은 너무 아름다운 계절이므로.



2.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장필순



그늘진 너의 얼굴이
다시 내게 돌아올 수 없는 걸 알고 있지만
가끔씩 오늘 같은 날
외로움이 널 부를 땐
내 마음속에 조용히 찾아와 줘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는 장필순 5집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의 타이틀곡으로 장필순의 대표곡이다. 장필순의 음색과 잔잔한 기타 소리가 어우러져 가을에 무척 잘 어울린다.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면 지금은 볼 수 없어도 마음 속으로 떠오르는 사람이 한 명쯤은 있는 법. 추억에 잠기기 좋은 노래다.



3. 두 계절-윤덕원



하루가 다르게
차가워지는데
꿈같던 여름날은 지나고
마지막까지
다정했던 그대는
이젠 멀어져가네


 밴드 '브로콜리너마저'의 멤버인 윤덕원의 솔로곡이다. 같이 봄을 지내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혼자만 봄이었다는 씁쓸한 가사를 가지고 있다. 같은 자리에 누워 자면서도 다른 꿈을 꾸고, 같은 시간을 살아가면서도 계절이 다를 때가 있다. '햇살이 따듯해도 속지마라 그늘에 서면 서늘해지는 계절'은 딱 요즘 얘기다. 같은 시간 안에서도 두 계절이 공존하는데 나는 여름을 살고 있는 걸까, 가을을 살고 있는 걸까.
 


4. 환절기-브로콜리 너마저



난 마음이 작지만
그런 마음으로
그런 자리에서 항상 걸쳐있을 뿐
이런 다음에도
또 다른 계절에도
이제는 내가 있을 곳을 찾을 때

 
 앞서 소개한 윤덕원이 있는 팀 '브로콜리너마저'의 2집 [졸업] 수록곡이다. 드럼 소리가 크게 들려서 소개하는 열 곡 중에 가장 역동적인 곡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어디엔가 속하기를, 또 어디엔가 정착하기를 끊임없이 요구받지만 실제 삶의 상당 부분은 이쪽과 저쪽 사이에 걸쳐 있는 게 아닐까. 끊임없이 안착할 계절을 찾아 헤매는 환절기의 우리들의 모습을 노래에서 만나볼 수 있다.



5. 오리발나무-이랑



가을이 되면 노랗게 물들어
더욱 더 오리발 같은 모습으로
겨울이 될 때까지 한층 더 맹렬히
발뺌을 하겠지 너는
내 방 창문 앞에 있는 오리발 나무
오히려 믿음이 안가
오히려 신용이 떨어져
내 것을 훔쳤을 것만 같아
너를 못 믿겠어
내 방 창문앞에 있는 오리발 나무

 
 이랑의 '오리발나무' 는 아쉽게도 공식 영상이 없어서 2절 가사를 통째로 첨부했다. '오리발나무'는 이랑의 첫 정규앨범 [욘욘슨]에 실려 있는 곡이다.  이랑의 노래들은 들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정말 기발하고 재치있다. '오리발나무' 역시 창가의 오리발나무 잎사귀가 정말 오리발처럼 생겨서 '오리발을 내밀듯' 발뺌을 하는 것 같다는 독특한 발상의 노래이다. 곡을 듣다보면 노랗게 물들어 바람에 흔들리는 오리발나무의 잎사귀가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6. 몰린(with 이규호)-윤종신



마른 잎 떨어지며
차츰 앙상해지다가
땅 속 깊이 뿌리내린 니 모습
시린 가을 하늘 구름 따라 끝도 없이 높아지다가
그러다 우주 밖으로 몰린
아름다운 내 첫사랑


 윤종신은 2010년대 들어서 가수보다는 예능인으로 더 유명해졌지만 음악을 들으면 그가 예능인이기 이전에 훌륭한 싱어송라이터라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다. 단, '월간 윤종신' 시리즈 중 2012년 9월호의 노래인 '몰린'은 윤종신이 작사 작곡한 노래는 아니다. 첫사랑, 코스모스, 마른 잎, 찬 바람 등등 노래는 가을을 연상시키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거기다 기타연주까지 있으니 가을의 정석 같은 곡이다.



7. 텅 빈 거리에서-015B



너를 사랑해
눈물을 흘리며 말해도
아무도 대답하지 않고
야윈 두 손에 외로운 동전 두 개 뿐


 015B의 1집 [공일오비]의 타이틀곡이다. 제목이 비슷해 헷갈릴 수 있지만 성시경의 '거리에서', 동물원이 '거리에서'와는 다른 곡이다. 015B는 90년대를 대표하는 뮤지션 팀들 중 하나로 수많은 명곡을 남겼다. 1집 타이틀곡인 '텅 빈 거리에서'는 그 시작점이라 봐도 좋을 것 같다. 1990년에 발표된 노래인만큼 노래에서 90년대의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노래 가사처럼 이제 더 이상 공중전화기에 동전을 넣고 수화기를 들어 전화를 거는 시대는 아니지만 가사에 담겨 있는 쓸쓸한 느낌은 시대를 초월해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을 것이다.



8. 눈물바람-9와 숫자들



언제부턴가 내 등뒤론
자꾸 시린 바람이 따라붙어
도망쳐봐도 이미
내 눈은 함빡히도 젖어 있었네


 '눈물바람'은 9와 숫자들의 EP앨범 [유예]의 타이틀곡이다. 바람은 쌀쌀하고 세상도 내게 쌀쌀한 것만 같아 괜히 더 힘들고 숨고만 싶은 날 들으면 위로가 된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는 나태주의 시 한구절이 떠오르기도 한다.



10.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동물원



난 책을 접어놓으며 창문을 열어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잊혀져간 꿈들을 다시 만나고파


 1988년 동물원의 2집 [흐린 가을 하늘에 편지를 써] 에 수록된 곡이다. 첫번째 곡인 '가을방학'과 마찬가지로 앨범명과 같은 제목의 곡이기도 하고 오랜 시간동안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았던 곡이라 마지막 순서로 넣어 보았다. 원곡자는 동물원이지만 김광석이 부른 버전도 유명해서 나 역시 그랬지만 원래 김광석의 노래인 줄 아는 사람도 꽤 많다. 세상에 나온 지 무려 30년 가까이 되었지만 리메이크도 여러 번 되었고 지금까지도 가을이 되면 라디오에서 자주 흘러나오는 곡들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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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열 곡의 노래를 쭉 듣다보면 아무 생각이 없던 사람도 옛 추억에 잠겨서 기분이 가라앉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개한 곡들 외에도 가을의 음악 플레이리스트는 무궁무진하다. 가을이라고 꼭 쓸쓸한 노래를 들으라는 법도 없다. 모두가 본인이 듣는 음악에 따라 각자 다른 모습의 가을을 맞이할 것이다. 새로운 계절을 맞이할 때 당신의 플레이리스트에는 어떤 음악들이 들어 있을지 궁금하다.


[김소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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