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로잔의 밤 하늘 아래, 다시 스위스 [여행]

루시드 폴 '국경의 밤'과 함께, 편안하고 편안한 로잔의 밤
글 입력 2017.09.05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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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스위스를 찾은 건 엄마의 일정 속 한 나라였기 때문이다.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난생 처음 유럽 여행을 떠났다. 열흘의 시간 동안 이탈리아, 프랑스, 스위스를 돌아보는 일정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도 안되게 짧은 일정이었지만 엄마의 주도 아래 모든 것은 착착 진행되었고, 엄마는 경력을 살려 적절한 투어와 도보 여행의 배분으로 완벽한 여행을 만들어냈다. 물론 그땐 너무 많이 걸어서 힘들었던 것 같지만 지나고 나니 흐릿하다.

 그때 루체른을 갔다. 묵었던 호텔의 새우피자가 맛있어서, 리기산에서 동생과 눈싸움하며 찍은 영상이 내내 기억에 남아서, 빙빙 돌며 이브지옵-프를 외쳤던 리기산 아래 푸른 들판이 잊히지 않아서, 나는 스위스를 계속 그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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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게 그리던 스위스를 작년 여행에서 다시 만났다. 이번엔 취리히, 루체른, 인터라켄. 마땅히 볼거리도 많지 않은 루체른에서 3일을 있었다. 그 호텔의 새우피자는 어쩐지 더 작아졌고 부실해졌으며 8월의 리기산에 눈은 없었지만 그래도 정말 좋았다. 발길 닿는 대로 걸어 내려왔던 리기산에서는 카우벨 소리가 평화롭게 울렸고 노랗게 핀 들꽃과 파란 하늘은 아름다웠다. 햇살엔 세금이 붙지 않아 참 다행이라고, 세상은 넓고 노래는 정말 아름답다고. 좋아하는 노래를 흥얼거리며 만났던 2016년의 스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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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이번이 세 번째 스위스다.

 이쯤 되면 스위스에 꿀단지라도 숨긴건지 의심이 들 정도로, 다시 스위스다. 학기가 시작하기 전 4박 5일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 나는 로잔에 가고 싶었다. 지난 학기에 책을 꽤 열심히 읽었는데, 그중 하나가 마종기 시인과 뮤지션 루시드 폴의 서간집인 '아주 사적인, 긴만남'이었다. 루시드 폴은 스위스에서, 마종기 시인은 미국에서 이메일을 주고 받았다.

 루시드 폴은 로잔연방공과대학원에서 화공학 박사과정을 밟고 있었고, 마종기 시인은 국내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으로건너가 의사로서의 삶을 산 뒤 은퇴한 뒤였다. 타국에서는 화학자, 의사로서의 삶이 더 유망할지 모르지만 또 다른 꿈을 가진 두 사람의 이야기였다. 당시 폴은 뮤지션과 화학자 사이의 삶에서 고민하던 끝에 한국으로 돌아와 전업 뮤지션의 삶을 살기로 결심하고 있었다.

 그때 그는 로잔에 있었다. 그는 마종기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 자신의 집 근처에 있는 호숫가 잔디밭에 누워서 별을 본 이야기를 썼다. 그 부분을 읽는 순간, 나는 반드시 로잔 호숫가 잔디밭에 누워 별을 보리라 다짐했다. 그렇게 제네바부터 로잔, 몽트뢰, 베른, 바젤. 자연스럽게 암스테르담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나의 여행 일정은 정해졌다.


 제네바에서 한 시간 정도 기차를 탄 뒤, 로잔 역에 내렸다. 그가 머물렀던 그 도시에 결국 도착했다.

"LAUSANNE"

 기어이 이곳에 오고야 말았구나, 스스로의 의지에 감탄하며 짧게 웃었다. 8월 말이지만 암스테르담과는 비교도 안되게 따가운 햇살 탓에 잠시 호스텔에서 쉰 뒤 로잔 구시가지를 돌아보았다. 역시나 많지 않은사람들. 구시가지를 돌아보는 데에는 채 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메트로를 타고 호숫가 우시 지구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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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펼쳐둔 매대에서 적당한 선글라스를 집어 들고 2프랑을 깎아 구매했다. 8프랑, 나쁘지 않은 모양의 선글라스. 주인은 프랑스어, 나는 영어. 서로 의사소통도 잘 되지 않았지만 그 와중에 흥정하는 내가 재미있었는지 주인은 흔쾌히 제시한 가격에서 2프랑을 제했다. 선글라스인지, 선플라스틱인지 알 수 없지만 모양이 마음에 들고 가격이 마음에 드니 됐다. 일행과 만나 간단히 저녁을 먹고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보았다. 호수 너머의 산으로 숨은 해는 뒤늦게 붉은 빛으로 타올라서 우리를 의아하게 만들었다. 산불일까 잠시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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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로등과 식당 불빛으로 아주 어둡지는 않은 저녁 9시 반, 하늘에는 조금씩 별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로 옆 가로등을 손으로 가리면 좀 더 많은 별빛이 보였다. 분명 폴이 별을 보았다던 잔디밭은 아니었지만, 그리고 별이 쏟아질 것처럼 많지도 않았지만 나는 '로잔'에서 별을 본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문명의 이기를 활용해 저 별은 어떤 별인지, 각 성(星)의 호구조사를 마치고 우리는 다시 숙소로 향했다.

 숙소에서 발코니에 앉아 루시드 폴 3집 '국경의 밤'을 재생했다. 루시드 폴은 스위스까지 찾아온 친구와 함께 차로 국경을 넘던 밤, 이 노래를 만들었다. 베토벤의 월광처럼 반복되는 피아노 선율 때문일까, 노래를 듣다 보면 내 주위에는 조용한 달빛이 비춘다. 로잔의 달빛, 별빛을 받으며 이런 저런 메모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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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드디어 밤이다. 따가운 태양도, 귀를 괴롭히는 소음도 없다. 대신 별빛이 드문드문 빛나는 밤이다. 로잔에서 마종기 시인에게 보낸 폴의 편지에는 이방인의 삶, 자신과 미래에 대한 고민이 담겨있다. 그 외로움과 쓸쓸함은 루시드폴의 담담한 어투로 마음에 스며든다.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걸어왔던 길, 그리고 앞으로 펼쳐져 있는 길을 포기하고 음악으로 완전히 돌아섰던 고민과 결정의 여정. 그는 로잔의 별빛 아래에서 수많은 고민들을 거듭했으리라. 희미한 별빛들 속 부끄럽지 않도록 나만의 빛을 내는 별이 되기 위해.

 그리고 나는, 잔디밭은 아니지만 레만 호의 호숫가에서 여전히 눈에 띄게 반짝이는 베가도 만났고, 오렌지빛의 아르쿠투르스도 만났다. 10여년 전 중미산 천문대에 서보았던 친구들, 이게 몇 년 만이야. 다들 잘 지냈니.

 같은 별빛 아래 나는, 아직 어떤 사람이 될지 모르겠다. '전투하듯 달려온' 삶을 조금 내려놓고 좋아하는 음악, 좋아하는 장소, 좋아하는 글, 좋아하는 책과 함께 지내고 있다. 즐겁다. 어느 때보다도 많이 쓰고 듣고 이야기하며 지낸다. '앞으로 돌진하는 내 현실', 로잔에서는 호숫가의 물처럼 천천히 머무는 것은 아닐까. 편안하고 편안한 로잔의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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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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