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의 낭만을 찾아, 여수 [여행]

글 입력 2017.09.06 13:24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모든 것을 녹여버릴 듯이 뜨겁게 타오르던 여름, 나는 무기력증에 빠져있었다. 이상한 불안감 속에 빠져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무기력한 나는 그저 하루하루를 침대에 누워 지내고 있었다. 그 날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침대에 누워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의미 없이 음악이 재생되고 있던 이어폰에서 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버스커버스커의 ‘여수밤바다’였다.


▲ 버스커 버스커 - 여수밤바다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오빠와 관련된 추억이 떠오른다. 입대하는 오빠를 바래다주고 돌아오던 길, 라디오에서 흐르는 ‘여수밤바다’를 듣고 한참동안 생각에 잠겨있었다. 이 거리를 너와 함께 걷고 싶다니, 나도 우리 가족도 오빠와 몇 달간은 함께 걸을 수 없겠구나, 따위의 생각을 하니 마음 한구석이 아려왔다. 잔잔하게 흐르는 선율자체만으로 눈시울을 붉어지게 만들었다.

 여수의 어떤 모습이 이토록 낭만적인 영감을 주었을까, 침대에 드러누워 이 노래를 듣던 나는 문득 그곳으로 떠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에 여행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떠나보고 싶었다. 그렇게 영감을 찾아, 낭만을 찾아 여수로 떠났다.

 함께 떠난 친구와 나는 모두 계획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여행 자체도 즉흥적인 것이었으니까. 딱 일주일 후에 떠나자고 결정하자마자 기차표를 예매하고, 숙박할 곳을 예약했다. 그 외에는 그 무엇도 준비하지 않았다. 우스갯소리로 ‘이것이 낭만이다!’라고 말하면서.


ㄴㅁ.jpg
여수에는 공사를 하고 있는 곳이 많았다.


 처음 마주한 여수의 모습은 상상과는 사뭇 달랐다. 새로운 아파트들이 곳곳에 세워지고 있었으며, 길거리에는 인적이 드물었다. 버스를 타고 찾아간 바다의 모습도 상상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모래사장이 드리워진 해변을 상상하고 있었다. 나에게 낭만적인 바다란 그런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여수의 바다는 부둣가, 항구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그래도 묘하게 설레기 시작했다. 아, 이곳이 여수의 바다구나.

 (후에 알게 되었는데, 여수에는 검은색 모래가 드리워진 ‘검은 모래해변’이 있다고 한다. 친구와 사전에 알아보지 않고 떠나서 미처 가보지 못했다. 다음엔 꼭 한번 들러봐야겠다.)

 
ㅂㅎ.jpg
지나가다 잠시 들린 벽화마을. 생각보다 세련되지는 않았지만 소소한 구경거리가 많았다.


 한쪽에는 주택가가, 다른 한쪽에는 바닷가가 보이는 게스트하우스에 짐을 놓고 우리는 바닷가에 위치한 한 루프탑 카페에 갔다. 계획이 없던 터라 여기저기 걷다가 즉흥적으로 들어간 곳이었다.


ㅎㄴ.jpg

 
 가는 길에 마주했던 한 상황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한 가게에서 갑자기 여자 아르바이트생 두 명이 문을 열고 나오더니, 노을 지는 하늘이 보이는 언덕 위로 뛰어올라갔다.


“내가 말했잖아, 엄청 예쁘다고!
매일 저 하늘을 보려고 이 시간에 나온다니까!”


 우연히 그 말을 들은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정말 아름다웠다. 매일 그 모습을 보는데도 항상 아름답게 느껴지는구나, 매일같이 찾아올 여수의 하늘은 소녀들의 싱그러움을 닮아있었다. 일상 속에서 쉬이 바라볼 그 아름다운 하늘이 부러워 샘이 나기도, 그 순간을 그저 추억 속 한편에 남겨두고 싶기도 한 마음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렇게 한참동안 하늘을 보다 한 루프탑 카페로 들어갔다.


ㄹ.jpg
 
ㄴㄴ.jpg
 
ㅋㄴ.jpg
 

 그곳에서 우리는 여유를 만났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닷바람과 함께 그간 머릿속을 어지럽혔던 생각들이 자취를 감춘 듯 느껴졌다. 친구와 나는 몇 마디 말도 없이 바닷가를 바라보며 몇 시간을 앉아 있었다. 확실히 여수는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 들려오는 모든 음악에 나의 감상을 맡기고 생각을 비운 채 몇 시간을 앉아있었다.


 그렇게 밤이 되었고 드디어 여수밤바다를 마주하게 되었다.


여슈밤바다.jpg
 

 여수밤바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생각한 낭만과는 거리가 멀어보였다. 어둠 한복판에서 빛나는 형형색색의 조명, 낭만적이라기보다는 친근한 느낌이었다. 친구들과 거리가 가깝다는 이유로 종종 떠났던 4호선 끝자락 오이도의, 횟집이 길게 늘어선 풍경이 떠올랐다. 여수의 야경을 관람하기 위해 올라간 케이블카의 정류장에서는 흔히 말하는 뽕짝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여수밤바다'의 노래 가사처럼 사랑하는 연인과 함께 걷기보다는, 가족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가 어찌 되었든, 그곳은 사랑하는 사람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이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바닷가에 포차가 길게 늘어진 '낭만포차'가 있다고 하더라. 애주가인 친구와 나는 낭만이라는 이름에 매료되어 그곳으로 떠났다.


“낭만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니?”


 낭만포차에 가기 위해 택시에 올라탔을 때, 택시 기사 아저씨가 물어왔다. 낭만을 찾아 떠나온 여수였지만, 선뜻 대답할 수 없었다. 아저씨는 50대가 된 지금에도 잘 모르겠다고 하셨다. 팍팍한 현실 속에서 20대인 지금 그 의미를 알게 된다면, 그 낭만을 만나보게 된다면 대단한 것이라고. 그 짧은 대화에서 많은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정확히 낭만에 대해서 어떻게 정의 내려야할지 모르겠다. 막연히 나는 ‘꿈’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왔다. 현실을 떠나 찾아온 꿈같은 것. 짧은 대화를 끝내고 우리는 그곳에 도착해 바닷가를 바라보며 술잔을 기울였다.


ㅋㄴㄴㅋ.jpg
 
ㅋㅇㅇ.jpg
게스트하우스의 옥상에서 보이는 바닷가와 주택가의 모습. 아쉽게도 밤에는 사진을 찍지 못했다.


 술을 먹다 지친 우리는 게스트하우스로 돌아갔다. 게스트하우스의 옥상에는 투숙객들을 위한 휴식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밤이 짙게 내려앉은 시간, 우리는 맥주 한 캔과 함께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는 일에 대해, 전공에 대해, 이번 여행에 대해, 지나온 여행에 대해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나는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해지는 기분을 견디지 못해 ‘나’에 관한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안했다. 여수는 나에게 그렇게 현실에 얽매이지 않는 여유를 선물해 주었다. 그리고 그것이 나의 낭만이라는 것도, 알게 해주었다.





 여수로 떠나기 전 이리저리 벌여놓은 일이 많았다.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 쌓여가는 불안감, 그 때문에 끝내지 못할 많은 일을 시작해놓고 있었다. 어딜 가나 가방 속에 항상 자리 잡고 있는 노트북이 그것을 나타내는 흔적이었다. 이번 여행에도 당연히 노트북을 들고 가려 했으나, 왜인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여러 가지로 머릿속이 복잡했던 나에게 여수는 여유를 만나게 해주었다. 나를 가장 힘들게 만들었던 생각은 ‘스물 두 해 동안 이뤄낸 것이 없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 나에게 이번 여행은 ‘괜찮다.’는 위안의 말을 건네주었다. 조금 더 늦어도 괜찮다고, 느려도 괜찮다고.

 사람을 감성적으로 만드는 곳, 그곳은 상상과는 달랐지만 확실히 낭만적인 공간이었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버스커버스커의 ‘여수밤바다’의 느낌은 갖지 못했다. 어디서나 각자의 낭만이 존재하겠구나, 싶었다. 원래 귀찮다는 이유로 여행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이번 여행을 통해 현실을 떠나 새로운 날들을 선사하는 여행의 묘미를 맛보게 되었다. 나의 낭만과 영감을 찾아 여행을 다녀보아야겠다. 다음번에는 부산의 바다로 떠나보고 싶다.


[김수민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