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펜팔에 대하여 [문화 전반]

글 입력 2017.09.10 2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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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팔(Pen pal). 이메일은 물론 메신저가 발달한 요즘은 듣기 어려운 말이다. 지금 시대는 다양한 커뮤니티와 빠른 채팅을 통해 원하면 언제든지 새로운 친구를 사귈 수 있으니까. 그러나 가끔은 기다림이 필요했던 아날로그가 그립다. 필름을 꼬박 채우며 인화를 기다리던, 삐삐로 호출한 후 전화를 기다리던 그 때. 지금은 펜팔이 e펜팔이라는 이름으로 바뀌며 조금 더 빠르고 편해졌지만, 예전에는 편지를 보내고 또 편지를 기다리던 그 그리움이 있었다. 물론 나 역시도 디지털이 발전하며 성장한 세대이기 때문에 또렷하진 않지만, 내 어릴적 기억, 추억, 더 뚜렷하게는 교과서나 잡지에서 펜팔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예전에는 잡지 같은 곳에서 펜팔 친구를 구하는 곳을 통해 펜팔을 시작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고 한다. 상대의 이름도 모른 채 주소를 받으면, 무턱대고 편지 한 통을 보낸다. 펜팔 친구를 기다리던 상대에서는 편지를 받고 기쁘게 답장을 한다. 그렇게 펜팔 인연이 시작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이 방식은 펜팔이 시작되기까지 짧더라도 1주일 이상이 소비된다. 뭐든지 빨리 빨리 진행되는 요즘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기다림이다.


펜팔의 가장 큰 장점이자 단점은 상대를 만날 수 없다는 것에 있다. 서로 멀리 떨어져 있고, 고작 접점이라고는 한 달에 한 번쯤이나 만날 수 있는 편지뿐. 서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궁금해 하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친구이기 때문에 펜팔은 더 솔직하게 내 얘기를 털어놓을 수 있다. 외국에 있는 친구와 펜팔을 할 때는 저절로 영어나 친구의 언어가 늘기도 한다. 사진을 주고받기도 하고, 상대 문화에 대해 배우기도 하며, 사소한 기념품을 편지봉투 속에 나누는 것도 일종의 재미였다. 펜팔의 연이 닿으면 서로의 나라에 놀러가기도 하는데, 사실 이 경우는 보기 드물었다. 아무리 기다림이 두근거리던 때라 해도, 한 달에 한 두 번 주고 받는 편지로 진-한 우정을 쌓기는 어려웠으니까. 그 나라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한 것이면 몰라도.


2002년에 나온 이나영 조승우 주연 영화 ‘후아유’에서는 펜팔의 디지털화를 보여준다. 바로 랜덤 채팅이다. 두 사람은 채팅 게임에서 서로 만나 파트너가 된다.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을 때면 둘도 없는 좋은 친구지만, 사실 모니터 너머에는 어떤 사람이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서로에 대해서 잘 알지만, 사실 서로에 대해서 전혀 모르는 판이다. 사실 펜팔도 마찬가지다. 잘 모르기 때문에 솔직하기도 하지만, 잘 모르기 때문에 환상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어디든 뻗어있는 인터넷 덕분에 이제는 상상이나 환상조차 쉽지 않아졌다. 그렇기 때문에 아날로그의 펜팔이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요즘도 펜팔이 존재한다. 위에서 말했던 e펜팔이다. 요즘에는 인터넷에서, 사이트나 커뮤니티를 통해 e펜팔을 서로 구한다. 요즘 같은 경우에는 대부분 언어를 배우는 것이 목적이다. 언어를 배우면서도 친구네 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이따금 선물도 주고받고 하는 것이 재미다. 과거의 펜팔보다 편해졌고, 또 쉬워졌고, 또 더 빨라졌지만 과거의 기다림이나 신비로움은 이제 더 이상 없다. 기다림이라고 해봤자 서로의 시차에 따른 기다림뿐이다. 물론 최대 12시간이 될 수도 있는 그 시차가 이제는 제법 재미가 되기도 한다.


편지를 쓰는 것이 요즘 세대는 익숙하지 않다고 한다. 이제는 이메일이 편하니 편지가 익숙하지 않은 것이 당연하다. 그러나 한 자 한 자 편지지에 눌러 담은 정성이, 또 우체부 아저씨의 땀방울 섞인 노력이, 편지가 이메일보다 더 소중하게 다가오는 이유 아닐까. 이제는 부산에서 서울까지 몇 시간 내로 올 수 있으니 주소를 공개하고 펜팔친구를 찾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도 모르니 말이다. 이렇게 쉬워진 요즘 세상에서, 누군가에게 마음 놓고 얘기를 터놓는 것은 더 어려워졌다는 것, 참 아이러니다.


[이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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