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의 기억]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나의 옆구리를 쿡 찌른다.

2017.09.10 5.
글 입력 2017.09.10 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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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약속

나에게
첫 약속의 기억은
한 친구와 새끼 손가락을 걸고
꼭꼭 약속해 라고 했던 것.

무엇을 약속했을까?

친구의 얼굴도 이름도 사라져버리고
약속의 노래를 부르던 내 목소리와
서로의 새끼 손가락을 걸은
작은 손 한 쌍을 흔들던
약속의 순간만이 남아,

가장 중요한 것을 잊어버린 나의
옆구리를 쿡 찌른다.

계속 친구하자는 약속만은 아니었기를.







#22 토순이

아직도 남아있는
어린 날의 인형 중 한 친구는
토순이라는 토끼인형이다.

아직도 처음 만난 날을 기억하는데,
엄마 손을 잡고 지나던
백화점의 한 진열대에 잔뜩 쌓여있던
하얀 토끼인형들과 곰인형들.

우연히 고개를 돌린 그곳에
높게 쌓여있는 하얀 덩어리들 중
눈이 마주친 토순이가
나를 불렀다.

무언가를 사달라고 떼쓴 적이 별로 없는 내가
결국 엄마의 손을 끌고가서는
토순이를 품에 안았다.


방정리라는 순간의 핑계로
오랜 친구를 버리려 한적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이별의 순간에
첫 만남 때처럼 눈을 마주쳐오는 토순이에
마음이 약해져 몇 번을 다시금 가져오곤 했다.

지금은 내 방 한 켠에 언제나 있는
그 토끼인형이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친한 친구 같아서
따뜻하고 단단한 마음이 든다.

계속 함께 해야지.






#23 샤프

성격이 줄곧 차분했던 어린 나는
조그만 들뜨는 날엔
꼭 무언가를 잃어버리는 지금의 나와는 다르게
물건을 잃어버린 일이 한번도 없었다.

하루는
수업 시간에만 해도 있었던 샤프가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다녀오니 사라져 있었다.

생일날에 선물 받은 첫 샤프였기에
너무나 큰 상실감에 슬퍼하니
내 자리 주변에 앉는 아이들이
샤프의 행방을 열심히 찾아주었다.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샤프가 발견되었다.

내 이름이 쓰여진 채로
다른 아이의 필통 속에 들어있었다.

낯을 가리는 내가
친구라고 정의하며 좋아했던 그 아이였다.

선생님을 통해
아이에게 사과를 받고 샤프를 돌려받았다.
잃어버렸던 샤프가 돌아왔지만
어쩐지 상실감은 여전했다.


이제와 생각해보면
샤프를 잃었던 상실감이
친구를 잃은 상실감으로 변해 마음에 박혔었나 보다.

더욱이 이 상실감은
그때가 처음이었지만 마지막은 아니었기에
더 깊게 박혔었나 보다.






#24 벌

그날은 토요일.
참 좋아하던 친구와
하교를 하던 길이었다.

쏜살같이 집에 갈 시간에 된 것이
너무나 마음을 가볍게 하여
쏟아지는 정오 즈음의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집에 가고 있었다.

뭐가 그리 재미있었던지
꺄르륵 웃으며 골목 골목을
한참을 돌아가는데

친구의 말.

‘너 뒤에 벌 있다!’

그 말을 한 친구도,
그 말을 들은 나도
서로 정한 것도 아닌데
손을 잡고 마구 뛰었다.


달리기를 정말 못하는 나와
달리기를 정말 잘했던 너의 합은
각자의 크기보다도 더 컸다.

그렇게 빨리 달려본 건 처음이었다.

한참을 달리다 멈춰
손을 놓고 헐떡이다
서로를 쳐다보며 한참을 웃었다.

정오 즈음의 따가운 햇살과
우리의 웃음 소리와
한껏 뛰어 얼굴로 올라오는 열기가
어우러져
노란 빛으로 가득 찬 기억.









전문필진 명함.jpg
 

이미지 출처: 구글 이미지


[정연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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